또 끼어들었다. 차가 아니라 말을 하는 중에...
scene1. 인터뷰 전
약속된 인터뷰가 있는 날이다. 상대에게 보냈던 10여 개의 질문이 담긴 A4지 두 장을 챙기고 추가 질문을 써놓은 패드와 노트북과 함께 챙긴다. 예정대로 인터뷰가 진행되고 내가 원했던 답변이 나온다면 추가 질문은 필요없을거다. 주어진 약속된 시간은 1시간. 미리 도착해서 다시 한번 질문지를 체크해본다. 1대1 인터뷰에서 1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직업상 종종 인터뷰를 할 때가 많다. 질문 대상은 다른 분야의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분들이다. 소속 직장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고 현재의 위치도 다르다. 그만큼 준비는 많이 필요했다. 내가 인터뷰 할 때 조심하는 것들은 대충 이렇다.
상대를 충분히 알고 가기
설령 커피 한잔을 마시거나 간단한 점심 식사 자리라도 반드시 참석자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간다. 조금만 검색하거나 노력하면 쉽게 알 수 있는데 전혀 준비없이 갔다가 이미 언론을 통해 나온 내용이나 인터넷에 공개된 내용으로 재확인하는 수준으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걸 피하기 위해서다. 직업상 내가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질문을 하는 시간이 더 많이 차지한다. 그래서 준비는 필수다.
말을 할 때 중간에 자르지 않기
집에서 아내와 대화할 때도 되도록이면 다 듣고 난 뒤에 말하려고 노력한다. 메시지보다는 감정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탓에 일단 들어주는게 중요한 걸 이제야 깨달았다. 하물며 일을 할 때나 인터뷰를 할 때는 더 그랬다. 과거에 프로그램을 만들 때도 사회자의 역할에 대해 종종 비슷한 주문을 하곤 했다. 대화를 절대 자르고 들어가지 말라고. 하지만 시간이 정해져 있는 방송 프로그램(생방송일 경우는 모든 대화를 다 자르고 들어가야 한다…)의 특성상 사회자의 개입, 상대방의 개입 등으로 대부분의 대화는 중간에 끊어지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상대에게 집중하기
대화를 하든, 발표를 하든, 회의를 하든, 말하는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이자 의무다. 더구나 1대1 인터뷰라면 상대에게 오롯이 집중해줘야 한다. 대화 내용이 내가 준비한 길이 아닌 상대에 의해 옆길로 새고 있더라도 굳이 내 길로 다시 인도해서는 안된다. 중요한 건 내 생각이 아니라 인터뷰 대상자의 답변이기 때문이다.
애매한 것은 다시 물어서 확인하기
예전에는 상대방이 말을 할 때 나의 다음 질문을 준비하기 바빴다. 그럴 경우 상대의 말을 놓칠 때가 많았다. 귀로는 듣고 있는데 머리로는 다른 생각을 하다보니 들어도 듣는게 아니었다. 주니어 시절에 방송 출연해서는 정반대였다. 내가 할 말을 준비하기 바빠 상대가 묻는 걸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다시 묻기 보다는 내가 준비한 답을 하기에 바빴다.
상대의 눈을 보고 말하기
최근에 주한 독일 문화원에서 근무하시는 분에게 들었다. 독일 사람들과 일을 하거나 식사 자리를 할 때 가장 어색했던게 상대의 시선이라고 했다. 독일 사람들은 말을 할 때 항상 상대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고 한다. 연인 관계가 아니라도. 눈을 보고 말하는게 최소한의 예의라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도 어색한 문화다. 하지만, 인터뷰에서는 다르다. 상대의 눈은 메시지의 일부분이다. 그만큼 아이컨택은 중요하다.
요즘 인터뷰는 비슷하거나 같은 질문을 가지고 여러 사람에게 묻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같은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대답은 개인과 조직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인터뷰할 때 반드시 들고 가는 것들
노트북 : 항상 들고 다니긴 하지만 1대1 인터뷰를 할 때는 볼 일이 없다.
패드 : 질문지를 보고, 관련 메모를 하기 위해
만년필 : 모나미 153 볼펜(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보다는 라미 만년필을 준비한다.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작은 수첩 : 패드에 질문지가 켜져 있을 때나 급한 메모를 위해 종이는 반드시 필요하다
디지털 녹음기 : 기술의 발전은 녹음기의 비약적인 축소로 이어졌다. 지우개 크기 정도로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기도 쉽다.
전화 녹음 :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이중으로 녹음을 하긴 하지만 정확도는 많이 떨어진다. 다만, 정확한 워딩의 확인이 필요할 때 녹음기와 전화기를 크로스 체크해서 확인할 수 있다. 꼭 특정 단어가 안 들릴 때가 종종 있다.
scene2. 인터뷰 후
그렇게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온 뒤 디지털 녹음기를 노트북에 연결했다. 일단 녹음된 대화를 처음부터 그냥 들어본다. 예전에는 녹음 내용을 풀어내느라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데, 요즘은 각종 네이버 클로바노트 등 앱의 도움을 받으면 대충의 내용을 파악하는 초기 시간은 엄청 줄어든다. 그렇게 인터뷰를 정리한다.
인터뷰 대상은 스타트업 대표였다. 대화는 물 흐르듯 잘 진행됐다고 생각했다. 돌아와서 녹음된 파일을 들어보고 몇가지 실수가 발견됐다. 안 그런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부분에서 내가 끼어 들고 있었다.
말을 중간에 잘랐고, 대화 주제가 바뀐 것이 종종 발견됐다. 말허리가 잘린 대화는 첫 질문과 다른 결론으로 끝나고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오늘 또 상대방의 말을 잘랐다.
요즘 유튜브를 자주 본다. 전문가를 출연시켜 인터뷰를 진행하는 콘텐츠가 부쩍 많아졌다. 딱 두가지다. 잘 묻고 잘 듣는 인플루언서와 잘 묻고 안 듣는 인플루언서. 박경리의 표현대로 말허리를 끊고 들어온 인플루언서는 그렇게 급해서였을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