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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라멜 Sep 02. 2023

말허리를 꺾고 알게된 것

스타일(style) 살리는 법 - Y : you

박경리의 토지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언제까지 얘기가 계속될지 권 서방은 답답하여 한숨을 내쉰다. 어찌어찌하다가 말허리를 꺾은 권 서방은 비로소 자신의 용건을 꺼낸다.


말허리를 꺾는 건 상대방이 말하고 있을 때 듣던 사람이 끼어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우리 주변에서는 너무도 많다.

 


글을 쓰기 위한 것이든, 책을 쓰기 위한 것이든, 발표를 위한 것이든, 연구를 위한 것이든 인터뷰를 진행하고 나면 결론은 두가지다. 만족한 인터뷰와 부족한 인터뷰.


먼저, 만족한 인터뷰는 보통 세가지다.

첫째, 사전에 준비한 질문에 대한 충분한 답변이 나왔을 때. 둘째, 내가 준비한 질문 이상의 답변까지 얻게 됐을 때. 셋째, 나도 생각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답변까지 얻어 기존에 만들어 놓은 개요를 대폭 수정하게 됐다면 금상첨화다.


반면, 부족한 인터뷰는 항상 예상 밖의 결과로 이어진다.

첫째, 내가 준비한 질문에 상대방이 단답형으로 짧게 답했을 때(yes or no) . 둘째, 예상했던 답변만으로 일관됐을 때(something new가 없을 때). 셋째,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답변으로 사전 준비나 취재 개요가 완전히 무너졌을 경우다. 사실상 다시 인터뷰가 필요하다.


녹음을 들어본 뒤 비로소 발견하게 된 것들

부족한 인터뷰로 끝나기까지 과정에 내가 한 몫을 하고 있다는 건 인터뷰 녹음을 들어보고 깨달았다. 상대방이 말을 하고 있을 때 중간에 내가 말허리를 꺾고 들어갔을 경우다.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열심히 말을 듣고 있을 때는 대화가 잘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돌아와서 다시 들어보면 내가 들었거나 내 생각과는 다른 내용으로 답변이 진행될 때가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원인은 이랬다.


첫째, 인터뷰이가 말을 잘 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더 끌어가기 위해서 중간에 들어갔을 때, 이후 답변이 앞과는 다르게 진행될 때가 있다. 이 경우 나의 방해(interrupt)로 인터뷰이가 자신이 머릿속에 준비한 것을 잊었다고 봐야 한다. 


둘째, 내가 이해하고 있는걸 확인하기 위해 되물었는데, 인터뷰이가 본인이 생각한 것과 내용이 달랐을 때 보통은 맞짱구를 쳐주면서 내용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동방예의지국, 우리 국어가 특히 그렇다. 하지만, 녹음된 내용을 들어보면 상대방은 나(인터뷰어)에 대한 배려와 예의를 갖추다보니 자신의 생각이 다르다는 걸 애둘러서 말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셋째, 대화가 아예 끊어진 경우다. 그(인터뷰이)와 내(인터뷰어)가 생각이 달랐을 수도 있지만, 나의 방해(interrupt) 이후 상대방이 “네 그쵸” “맞습니다” 이렇게 단답형으로 대답해 허무하게 끝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게 인터뷰할 때만 그런게 아니었다. 요즘은 전화 녹음 기능을 자주 쓰는 사람들이 많다. 다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대화를 나눌 때 자동 녹음 기능을 쓰기도 한다. 그 녹음을 들어보니 나의 대화법은 상대방의 얼굴을 보지 않고 얘기하는 전화 통화에서도 특징이 잘 나타났다. 녹음은 나의 화법을 알 수 있는 좋은 피드백 수단이다.


에필로그.

과거 개그 프로그램을 통해 인터뷰하는 기자들의 리액션을 따라하는 개그맨들이 많았다. 마이크를 들고 상대방을 보며 거의 3초에 한번씩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다. 사실 말 한마디라도 더 이끌어내기 위해 최대한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안쓰러운 상황일 때도 종종 있다. "제발 말을 조금이라도 더 해주세요. 아직 저에게 필요한 중요한 답변이 안 나왔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인터뷰어의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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