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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라멜 Aug 15. 2024

유해진이 돌발적이라고?

'루틴' 유해진이 가장 인간적인 이유

예전에. 프랭클린 다이어리를 잘 쓰는 형님이 있었다. 지금처럼 휴대전화 어플이 잘 나오지 않던 시절이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교보문고 가서 다음해에 쓸 다이어리와 속지를 사거 계획세울 생각에 설렌다고 했다. 즐겁다고 했다. 형님의 다이어리는 완벽했다. 색색의 펜으로 한 해와 한 달, 한 주를 계획하고 실천 여부를 체크했다. 빠뜨리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직장인이지만 끊임없이 고객들을 만나야 하는 직업 때문에 더 그랬다. 내일의 형님은 어제의 형님에 오늘의 반성이 합쳐 업그레이드 되었겠지.


프랭클린 플래너를 쓰는 사람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있다. 칸트. '걷는 철학자 칸트'의 산책 시간은 마치 시보와도 같이 일정해서 칸트의 산책 시간에 시계를 맞췄다는 얘기도 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단순한 사람인가? 복잡한 사람인가? 습관적인 사람이다.


할스 두히그는 <습관의 힘, 2012>에서 좀처럼 변하지 않는 자신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습관의 위력에 대해 설명한다. 과거 ‘수영 황제’로 불렸던 마이클 펠프스가 굳이 물이 있는 수영장에 들어가지 않아도 비디오 테이프를 트는 것과 같은 상상을 통해 수영 루틴을 이미지 트레이닝화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습관에 길들여진 뇌는 비록 몸이 그 동작을 하지 않아도 같은 움직임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셈이다.


제임스 클리어는 <아주 작은 습관의 힘, 2019>에서 습관에 대해 구체적이고 나름 과학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일단 습관화가 되면 그다지 큰 의지가 없어도 행동을 바꿀 수 있단 말이다. 그러면서, 말콤 글래드웰의 '만 시간의 법칙'을 깬다. 시간보다 중요한 건 반복, 즉 횟수라는 말이다.

 

이 둘 보다 더 와닿는 습관은 한근태 작가의 <재정의, 2020> 습관이다. 습관은 익혀서 버릇이 되는 것이다. 나는 습관으로 나타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예를 든다.


같은 일을 반복하는 존재가 우리다. 탁월함은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


잘 만들어진 습관은 변화로 이어진단다. 한근태는 “변화는 간절히 원하는 걸 얻기 위해 큰 고통을 감수하고 새로운 습관을 익히는 것이다.” 이라고 했다. 마지막은 이 한마디다.


처음엔 당신이 습관을 만들지만 나중엔 습관이 당신을 만든다.


잘 만들어진 습관은 변화로 이어진다. 한근태는 "변화는 간절히 원하는 걸 얻기 위해 큰 고통을 감수하고 새로운 습관을 익히는 것이다." 이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생각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사람은 유해진이다. 유해진이 나온 영화나 콘텐츠는 유해진으로 인해 '유해진화'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유해진스러움은 조폭 같을 때도 있지만 편의점에서 만날 수 있는 옆집 아저씨 같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을 거 같기도 하면서도 전문직이도 하며, 뜨거운 로맨스와는 거리가 멀 거 같으면서도 순수한 사랑에 가장 잘 어울린다.


예능에서 유해진스러움은 단언컨데 그가 보여주는 루틴이다. 유해진의 아침은 달리기다. 장소를 불문한다. 외딴 섬에서도, 산에서도, 바다에서도, 이탈리아의 호수에서도, 스페인의 산티아고에서도 계속된다. 포레스트 검프처럼 달리지도, 황영조, 이봉주처럼 달리지도 않는다.

 

유해진의 아침은 유해진스럽게 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비록 말이 안통하는 곳에서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주며 인사한다. 길을 알리가 없는데 그냥 달린다. 동료들은 멀리 떠난 유해진이 과연 돌아올 수 있을까 걱정하지만, 유해진은 그렇게 한참을 뛰고나서 다시 돌아온다. 어느 곳에 가더라도 한바탕 뛰는 것으로 허파 가득 낯선 땅의 공기와 맛을 채운 유해진의 하루는 RPM 3000으로 시작하는 자동차다.


다이어리를 쓰는 사람들은 인간미가 없고, 칸트에겐 정시에 산책하는 게 어울리지만 유해진의 진정한 인간미를 난 영화 시사회에서 봤다.


2024년 서울의 어느 영화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개봉작 GV(무대 인사)가 있었다. 유해진과 김윤진, 정성화 등 이미 알려진 스타들이 무대 앞에 등장했고, 나와 아내와 동생들까지 우리는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는 배우들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인사가 계속될 때마다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배우 유해진은 환호하는 우리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마이크를 받은 유해진은 수많은 무대 인사 속에서도 우리 같은 환호와 찬사를 보내는 관객은 처음 봤다고 했다.


우리는 눈치를 보지 않았고,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했다. 비록 흥행하지 않을지라도 노력한 배우들은 관객 각자의 감동만큼은 박수받을 자격이 있다. 계획하지 않았지만 우린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우리만. 유해진은 거기에 답했다. 유해진스럽게.

무대 인사가 끝난 뒤 갑자기 우리 쪽을 향해 달려오는 유해진... 설마 우리에게? 기대는 현실이 됐다.

무대 인사가 끝났다. 유해진은 관객석 가장 높은 곳, 가장 뒤쪽의 우리에게 한 걸음에 달려왔다. 성큼성큼. 그리고 연신 '와우'라며 우리에게 고맙다고 했다. 감사의 악수를 전했다. 놀란 안전요원이 우리를 막아서기도 했지만 유해진은 그렇게 인사를 했고, 사진도 허락했다.


영화에서나, 예능에서나, 현실에서도 유해진은 그냥 유해진이다. 다이어리를 쓰지 않아도, 매일 조깅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인간미 없는' 유해진은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인간적인 스타이자 배우이자 우리 이웃'이다.


유해진은 '화지진'

주역의 35번째 괘는 땅 위에 태양이 떠있는 '화지진'이다. 태양이 떠오르는 아침, 희망찬 전진이며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정반대는 쉬어야 한다. 양과 음을 반대로 하면 수천수로 물 아래에 하늘이 있는 휴식을 의미한다. 휴식과 정확히 정반대이므로 쉬지 않는 것이다. 이럴 때는 중간에 꺾일 지라도 참고 견디고, 득실을 따지지 말아야 한다.


지금 배우 유해진은 땅 위의 불처럼 순조롭게 흘러가는 '화지진'의 괘가 딱 들어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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