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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라멜 Dec 15. 2024

잘 나간다고 생각했지만...

원하는 건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20년을 다녔던 회사 생활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쯤 전이다. 


원하는 부서는 안되고...

회사에서 자신의 의사를 밝혀야 할 시기는 해마다 찾아온다. 첫번째가 인사철이다. 인사 시즌이 되면 부서장들은 소원수리를 받기 시작한다. 인사희망원. 대학 입학 이후 잊혀졌던 1지망, 2지망, 3지망의 소원 수리가 시작되면 과거를 돌아보기 시작한다. 말이 1, 2, 3지망이지 사실상 대부분 1지망에서 다음 부서가 결정된다.


왜? 사람들이 몰리는 부서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그랬다. 소위 잘나가는 부서는 1지망 희망자들이 넘쳐난다. 잘 나가는 부서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TV에 많이 나오고, 주목을 받고, 일은 좀 힘들어도 보람있는 그런 부서다. 그런데 난 안됐다. 항상 기타 부서에 배정이 됐고 초년병 시절에는 사회부만 있게 됐다. 사회부가 기자 생활의 꽃이라는 것은 적어도 옛날 이야기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때는 맞지만 지금은 틀리다. 24시간 전화기를 켜놓고 살아야 하고, 세상의 모든 사건사고에 관심을 갖게 되며, 천재지변도 예외가 아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노심초사다. 많이 오면 곧바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보람은 있다. 약자의 얘기를 듣고 억울한 사람들의 사연을 전하며 정의를 실현하는데 일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딱 거기까지다.


정치부를 원해 갈 수 있게된 시기가 왔다. 그럴듯해 보였다. 국회를 출입하고 TV에 나오는 정치인들을 상대로 취재를 하고 뉴스를 전하니 세상의 중심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그게 또 불행의 시작이었다. 이번에는 나오고 싶은데 나올 수가 없는 시기도 있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의 관계 등 나름의 이유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30대 중반 이후를 그렇게 내리 정치부에 있게 됐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모두들 들뜨기 마련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12월은 국회에게 잔혹한 계절이기 때문이다. 새해 예산안은 항상 자정을 넘겨 통과됐고, 정부와 여당이 통과시키려는 중점 법안과 그걸 제지하려는 야당과의 싸움으로 국회는 항상 대치했다. 12월은 집에 가기 힘든 계절이다. 크리스마스는 말할 것도 없고 12월31일 자정과 새해 보신각 종소리는 국회 중앙홀에서 들어야 했다. 새해 동이 틀 무렵 선배들과 해장국 집에서 연말연시를 기념하는 소주를 마신 뒤 집에 들어갔다. 내 시간을 갖고 싶었다.


연수는 그림의 떡

직장 생활에서는 다양한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보너스라는 이름의 금전적인 보상이 주어지는 회사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다.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고 이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주식회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회사에서는 원하는 부서에 갈 수 있는 것이 그나마 최고의 보상이었다. 그 다음이 소수에게 주어지는 사원 연수나 교육, 해외 근무 등의 기회다.


초년병 시절에는 선배들의 눈치를 보느라 아예 꿈도 꾸지 않았다. 대충 지원할 수 있는 시기가 왔다고 느낀 시점은 10년차 이후였다. 지원했던 선배들이 대충 다 다녀오고 지원자들의 연차가 위로 1~2년 정도로 내려왔을 때쯤이었다. 간혹 후배들도 지원해서 다녀오기 시작했다.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했고 나름대로 부지런히 지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순진했다. 그냥 열심히 일한만큼 이제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안 됐다. 지원서가 부족했다고 생각하고 해마다 바꿔써보기도 하고 매번 열심히 업데이트를 했다. 시기가 좋지 않았다. 한 때는 회사 외부 지원이 오랫동안 끊기기도 했고, 막상 갈 수 있을 때가 왔다고 생각하자 선배 지원자들이 몰렸다. 기회가 왔다고 생각할 때는 가장 바쁜 부서에 배정이 되서 아예 지원서를 낼 수조차 없었다. 어차피 여러번에 걸친 선발 기회를 모두 통과해야 하는 만큼 지원할 당시 동료들에게 잘 보여야 가능성이 높아진다. 말 많고 핑계대는 후배보다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한 후배에게 인센티브의 기회를 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렇게 살려고 했고, 그렇게 일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선배들의 평가는 내 생각을 정확히 빗나갔다. 평소에 가장 믿고 따랐던 선배들이 뒤에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그 날은 일생일대 가장 충격을 받은 날이었다. 프린터기에서 발견한 종이 한장. 선배들의 지시를 따르며 때에 따라서 할 말은 해야한다고 생각했던 난 시키는 명령을 소리없이 잘 따르지 않는 소위 피곤한 스타일의 후배로 찍혀있었다. 


막상 듣지 말아야 할 얘기를 우연히 전해듣고 내 앞에서 한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다른 선배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나의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회사에서 사람에 대한 기대는 조금씩 낮아져갔다. 이후 10년 동안 해마다 선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빠짐없이 지원했던 다양한 인센티브에 대한 기대도 완전히 사라졌다. 아쉽게 선발되지 않았다며 다음 기회에 다시 도전해달라는 메일과 휴대전화 메시지에 익숙해졌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고 했지만 준비를 하고 있어도 오지 않을 때가 훨씬 많다.  사람은 그렇게 늙고 철이 들어간다. 쉽게 잘 되었던 것은 다만 운이 좋았을 뿐이다. 실력만큼 운도 중요하다는 걸 느끼게 된 계기는 이후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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