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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die Mar 19. 2021

소유에 관하여

단상

"소유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한 인간이 어떤 사물에 대한 주체적인 지배권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의 근대성을 나타내는 대표적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사적 소유에 대한 국가의 허용이며, 이는 한 인간이 주체적인 존재로 인정받고 자유롭고 자율적인 존재임을 나타내는 징표이기도 하다. 사실 소유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문자 그대로의 철학적 의미와 그 연원을 살펴보면 지금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소유의 개념과 조금 다른 그 존재 '자체'를 의미하고 있지만 오늘날 우리는 소유에 대한 의미를 "사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로 받아들이고 있다. (강희원, 2003)


소유에 대한 나의 관념은 일반적으로 정의되는 사물에 대한 '지배'보다는 '나의 일부분'이라는 인식이 더 강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소유에 대한 애착이 높은 편이다. 한 가지 예로 어린 시절 집에서 키우던 거북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은 적이 있었다. 애지중지 키웠던 거북이가 죽자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고 한동안 거북이를 작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베란다에 몰래 보관하고 지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거북이가 부패한 냄새를 맡은 어머니께서 발견하시고 나를 설득하여 끝내 거북이를 화단에 묻어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그때부터 살아있는 생물체와 어떠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지금도 그 어떠한 반려동물과도 함께할 생각이 없다. 그 '나의 일부'와 같은 그 독립체와의 헤어짐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특한 나의 관념은 일반 사물에게도 적용된다. 나는 내가 사용하는 물건들도 물리적 혹은 기능적으로 치명적 결함이 생기지 않는 이상 마르고 닳도록(?) 쓰는 편이다. 사물에는 생명이 없지만 '내 것'이라는 소유의 감정이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2011년 겨울에 구입한 파란색 컬럼비아 고어텍스 재킷을 입고 다닌다. 한 번은 영국 런던을 여행하던 도중 너무 오래되어 밑창이 다 닳아 구멍이 나버린 나이키 에어포스 올빽 운동화를 런던 소호거리에 있던 어느 쓰레기통에 버린 적도 있다. (비가 자주 내리는 영국 특성상 물이 스며들어 더 이상 그 운동화를 신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러닝을 취미로 삼은 뒤에는 운동화만은 주기적으로 교체하고 있다. (관절의 건강을 위해서)

      

그런 내가, 오늘 미국에서 약 6개월 동안 잘 타고 다니던 자동차를 드디어 떠나보냈다. 귀국을 한 달여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귀국 직전까지 자동차를 팔지 못해 눈물을 머금고 헐값에 파는 상황에 직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고차 업체에 견적을 맡겨보니 도무지 용인할 수 없는 헐값이 나와 어떻게든 개인 거래를 통해 판매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래서 귀국 전까지 조금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시간을 두고 미리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차는 2003년식이라 오래되었지만 미국에서 내구성이 좋아 나름 인기가 많은 모델인 Honda Accord였기 때문에 판매 공지를 올리자마자 다행히 많은 구매의사가 담긴 연락을 받았고, 그중에 좋은 조건에 판매할 수 있는 Buyer를 만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내 생애 첫 중고차 '소유'였다. 작년 9월 미국에 입국한 이후 모든 것이 낯선 상황에서 급하게 차를 알아보던 중 인터넷에서 'Lee Auto'라는 중고차 업체에 내가 찾는 모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호명을 보고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업체인 것 같아 반가운 마음과 의사소통에 대한 걱정을 덜고 기쁜 마음으로 그 업체를 찾아갔지만 알고 보니 Mexican 'Lee'여서 조금 당황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친절한 딜러 아줌마를 만나 어렵지 않게 차를 계약할 수 있었다. 사실 중고차 구입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급하게 차가 필요해서 이것저것 확인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구매했지만, 다행히 타고 다니는 동안 큰 문제는 없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미국에서 쌓은 많은 추억들을 이 차와 함께한 것 같다. 차가 없으면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곳의 특성상 많은 시간을 차와 함께 보냈다. 매일 5마일 정도 되는 출퇴근 거리, 마음의 안식처인 NC Museum of Art, 주말이면 항상 트레일 러닝을 했던 Smith Lake, Thanksgiving때 나홀로 방문한 Virginia Beach까지. 뿐만 아니라 지난해 크리스마스 연휴에 Virginia - West Virginia - Kenturkey - Tennessee - South Carolina를 거쳐가는 대장정에도 아무런 문제 없이 함께했다.



특히 무슨 깡(?)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미 본토 내 북극 한파가 한참일 때 캠핑, 차박을 했던 문자 그대로의 '사서 고생'도 기억에 남는다. 일반적인 미국 사람들은 모두 RV를(캠핑카) 타고 와서 즐기는 겨울 캠핑을 한국의 어떤 사나이는 당당하게 텐트에서 침낭 하나로 버티는 모습을 보고 아침에 나의 생사여부를 확인하러 오던 미국 사람들의 따뜻한 정(?). 끝없이 이어지는 미국 도로를 달리다 어두워지면 이름 모를 primitive camp site에 들어가 아마존에서 구입한 세단용 에어매트를 깔고 차박했던 기억.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한 것은 아마도 이 차가 아무런 문제 없이 달려주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일반적인 감정 이상의 느낌을 갖는다는 것은 분명 나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떤 특정 인형에 대해 애착을 가지는 것처럼 누구나 자신이 갖고 있는 것들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차를 팔고나니 느껴지는 감정이지만 나는 이 차를 소유하고 있는 동안 정말 행복했던 것 같다. 그렇게 오랜 시간은 함께 한 것은 아니었지만 큰 문제없이 묵묵히 내 미국 생활을 함께해준 이 차에게 너무 고맙다. 지금은 노스캐롤라이나 모처에 사는 한 임산부의 소유로 바뀐 차이고, 지금 연식을 고려하면 가까운 미래에 폐차될 차이지만 내 미국 생활의 찰나를 함께 한 그 차가 오래오래 미국의 도로를 힘차게 달렸으면 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 차에 대한 감정과 기억들을 잊어버릴 것 같아, 그 소유에 대한 기록을 이곳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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