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
자주 가는 도서관 신간코너에서 다소 도발적인 제목과 표지에 이끌려 무심코 고르게 된 책이었다. (출판일자를 보니 신간은 아니다.) 사실 '인민'이라는 단어는 군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내게 필연적으로 거부감을 들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모두들 알다시피 가까운 북쪽에도 '인민'을 즐겨 쓰는 무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거부감이 갑자기 원인 모를 호기심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이 책과 드디어 마주하게 되었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 말미에서 "이 소설은 인간의 존엄에 대해 영원한 존중과 사랑의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한 통의 편지"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 소설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는 저자의 서문처럼, 얼핏 보면 이 소설은 사랑과 욕망이라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 앞에 한없이 나약해지는 인간들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절반을 두 인물의 적나라한 '성애'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보면 뭔가 다른 것이 느껴진다. 바로 '모순'이다. 이 모순에 대한 작가의 메시지를 제대로 느끼려면 마오쩌둥이라는 역사적 인물과, 대장정, 문화 대혁명 같은 중국 현대사의 굵직한 장면들을 한 번쯤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마오쩌둥은 모든 면에서 약했던 중국 공산당을 이끌고 우세한 국민당 군대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중국 현대사의 '위대한 지도자 혹은 전략가'로 평가받고 있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인민전쟁 전략을 추구했다. 전쟁은 궁극적으로 인간이라는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믿었던 그는 인민대중의 에너지를 조직하고 이를 혁명전쟁에 철저히 활용했다.
마오의 사상은 '인민'의 근본적 이익 극대화를 주창하고 있지만 소설 속 현실은 달랐다. 각각의 '인민'에게는 엄연한 계층적 구분이 존재했고, 인민들은 이미 주어진 그 계층적 한계를 스스로의 능력으로 극복할 수 없다. 즉 모든 인민은 평등하지 않았다. 저자는 소설 속 두 인물의 '반혁명적' 행위를 통해 이러한 모순을 나타내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숭고해야 할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슬로건이 이 소설을 통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다. 말 그대로 '모순' 덩어리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소설 속 남자주인공이 한 여성에게 느끼는 복잡 미묘한 감정의 표현이다. 달콤했던 시간이 막을 내리고 남자는 그 여성에 대한 감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어머니 같기도 하고 누나 같기도 하며, 상급자 같기도 하고 아내 같기도 한, 뭐라고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사랑" 어쩌면 그가 느낀 이 감정이 이 소설의 모든 내용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문장이 이 소설이 단순히 두 남녀의 '불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님을 대신 설명해주고 있는 듯하다.
나아가서, 이 책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만든다. 욕망과 쾌락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지는 한 인간의 모습. 혁명정신과 마오에 대한 우상화도 인간의 본성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 저자는 결국 모순적인 시대상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본질을 사회적 금기를 넘어선 두 남녀의 이야기로 풀어내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살다가 한 번쯤은,
진흙탕에 빠져서도 담벼락을 짚을 줄 아는 위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