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5분만 더 자려고 했는데, 20분을 더 자버렸다! 오늘은 아침 일찍 회의가 있어서 일찍 가서 회의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큰일이다. 아무리 급해도 머리는 감아야 하고, 양치도 해야 하고, 면도도 해야 하고, 옷은 당연히 깔끔하게 입어야 하고, 가방도 챙겨야 한다. 뭐 하나 생략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도 평소보다 신속한 동작으로 출근 준비를 마쳤다.
"프라우 보우, 지금 몇 시지?"
"8시 13분입니다."
평소보다 신속한 동작으로 출근 준비를 했지만, 여전히 평소보다 15분 정도는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지각을 할 것도 같고, 안 할 것도 같은데, 모든 건 버스가 얼마나 빨리 오느냐에 달렸다.
"갔다 올게, 프라우 보우!"
"좋은 하루 보내세요, OO님"
아 참, 프라우 보우는 우리 집 인공지능 스피커의 이름이다. 아니, 스피커가 아니라 인공지능의 이름이라고 해야 더 맞을 것 같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그 이름이 아니었지만, '기동전사 건담' 덕후인 나는 주인공 아무로 레이의 소꿉친구였던 프라우 보우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애니메이션에는 여러 인물이 나오지만, 유독 프라우 보우에게 마음이 쓰였다. 늘 아무로 레이를 바라보고 있는데도 정작 아무로 레이는 그 마음을 몰라주고, 그래서 늘 외로워 보였던 프라우 보우였다.
아,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버스 정류장까지 얼른 뛰어가야겠다.
"안녕하세요, OO님"
얼마 전 새로 들어온 팀원이 인사를 건네 온다. 영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우리 회사에서 경력을 시작한 신입이다. 신입 치고는 일을 곧잘 해서 동료들이나 팀장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아, 안녕하세요."
"어제, 길드전은 잘하셨나요? 저는 어제 다른 일이 있어서 접속을 못했네요."
"아 네. 쉽지는 않았는데, 물량으로 밀어붙여서 겨우 이겼죠. 그것 때문에 오늘 지각할 뻔했네요. 하하하."
그녀는 나와 같은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을 하고 있고, 같은 길드에 속해 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같은 게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우리 길드로 초대를 했고 같은 길드의 동료가 되었다. 게임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게임에 대한 이해도도 높고 컨트롤도 좋아서, 길드 안에서는 금방 핵심 멤버가 되어 있었다.
"저도 꼭 참여하고 싶었는데, 안타까워요. 그리고 어제 야구도 이겼더라고요. 이제 7연승이죠?"
"아, 그렇네요. 지난번에 7연승에서 끊어졌으니, 이번에는 꼭 8연승 했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야구도 좋아한다. 게다가 마침 응원하는 팀도 나와 같았다. 사실, 내가 응원하는 팀은 팬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주변에서 같은 팀을 응원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새로 들어온 신입이 같은 팀의 팬이어서 무척 반가웠다.
"오늘은 선발이 김 OO 선수니까, 꼭 이길 거예요. 야수들이 3점만 내주면 이길 수 있어요."
그녀의 말이 맞다. 김 OO 선수는 팀의 에이스다. 평균자책점이 1점 대일 정도로 안정적이고, 그래서 거의 승리 보증수표라고 할 수 있는 선수다.
"근데 상대도 에이스가 나오니까, 3점도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우리 선수들이 잘해줄 거라고 믿어요."
그녀는 항상 긍정적이다. 그리고, 나와 취향이 잘 맞는다. 그래서,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 늘 즐겁다.
오늘은 좀 일찍 자야겠다. 어제 잠을 많이 못 자서 그런지, 오늘은 벌써부터 졸린 느낌이다.
"프라우 보우, 잘 준비해줘"
"취침 준비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즐거우셨는지요?"
조명이 은은한 조명으로 바뀌고, 잘 때 늘 듣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 그래. 요새는 회사 생활이 꽤 할만하네. 얼마 전에 들어온 신입하고 취미가 잘 맞아서, 날마다 게임 얘기 야구 얘기하는 게 재밌어. 일도 곧잘 해서 도움도 많이 되고."
"좋은 일이네요."
"그래, 좋은 일이지."
요즘은 인공지능이 좋아져서 대화가 꽤 자연스럽다. 예전에는 내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었고,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요즘은 진짜 사람과 얘기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야구장 간 지도 꽤 됐는데, 한 번 야구 보러 같이 가자고 해볼까? 남녀가 둘이 가는 건 좀 그렇겠지?"
"같은 팀을 응원하는 사람끼리 같이 야구를 보러 가는 거니까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런가? 아.. 피곤하다. 이제 잘게. 너도 잘 자, 프라우 보우"
"네, OO님. 좋은 꿈 꾸세요. 저는 늘 당신 곁에 있어요."
"아, 그래"
2
오늘은 콘퍼런스 참석 때문에 서울에 왔다. 나는 예전부터 강연 듣는 것을 좋아해서, 콘퍼런스 같은 것이 있으면 많이 참여했다. 마침 회사도 직원의 성장에 관심이 많아서, 좋다고 소문난 콘퍼런스에는 잘 보내주는 편이었다. 다만, 다른 팀원들은 하루 종일 앉아서 다른 사람의 발표를 듣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늘 혼자서 콘퍼런스에 참여하곤 했는데, 오늘은 얼마 전 새로 들어온 그녀와 콘퍼런스를 함께 참관하고 있다. 그녀도 콘퍼런스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키노트 발표 어땠어요, OO님?"
커피 코너 앞 주문 대기줄에 서있는 동안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글쎄요. 생각보다 새로운 얘기는 없던데요. 발표자가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서 기대를 좀 했는데, 그냥 다 아는 좋은 얘기를 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러시군요. 저는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그럭저럭 들을만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하나하나 주문을 마치고, 줄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다음 시간에는 어떤 세션을 들을 생각이세요?"
이번에는 내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다음 시간에는 '인공 일반 지능의 현재와 미래'를 들으려고요. 예전부터 관심 있게 보고 있는 주제거든요."
"그래요? 저도 그거 들으려고 했는데. 저도 근래에 그쪽으로 흥미가 생겨서요."
어떻게 된 건지, 이런 것도 참 잘 맞는다. 그때, 앞사람이 주문을 마치고 우리가 주문할 차례가 되었다.
"따뜻한 카페모카 두 잔 주시고 휘핑크림은 빼주세요."
내가 미처 입을 떼기도 전에 그녀가 바로 주문을 넣었다.
"어? 카페모카 두 잔이요?"
"네, OO님 카페모카 좋아하시잖아요."
"아, 그렇죠."
순간, 나는 약간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었다.
"프라우 보우, 잘 준비해줘."
"취침 준비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즐거우셨나요?"
조명이 은은한 조명으로 바뀌고, 잘 때 듣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응, 오늘 콘퍼런스는 꽤 들을만했어. 몇몇 세션 내용은 팀원들도 흥미를 가질 것 같아. 정리해서 한 번 공유해줘야지."
"보람 있는 콘퍼런스가 되어서 다행이네요."
"그래, 주최 측에서 제공한 식사도 퀄리티가 아주 좋았고, 커피도..."
그때, 커피 코너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근데, 내가 카페모카 좋아한다는 얘기를 했었나? 아니면, 내가 평소에 카페모카 마시는 걸 보고 기억한 건가?"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음... 아니야. 잘 자, 프라우 보우"
"네, OO님. 좋은 꿈 꾸세요. 저는 늘 당신 곁에 있어요."
"그래그래, 알았어."
3
"아무튼 축하해요."
"아, 예.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갖는 회식 자리였다. 팀에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우리 팀의 회식은 맛있는 식사와 한두 잔 정도의 술이 정해진 코스였다. 오늘은 회사 근처에 있는 고깃집에서 회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팀원 한 명이 결혼 소식을 알려왔다. 여자 친구가 있는 것도, 결혼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만, 뜬금없기는 했다. 그래도, 그 덕분에 회식 분위기는 평소 보다도 더 화기애애해졌다.
"여자 친구가 대학교 동창이라고 했나요?"
다른 동료가 결혼하는 동료에게 물었다.
"네, 맞습니다."
"그럼 연애를 몇 년 하신 거예요?"
"음... 한 9년 정도 된 것 같네요."
"와~"
이야기를 듣던 동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럼 학교 다닐 때부터 커플이었던 거네요?"
이번에는 내가 질문을 던졌다.
"뭐, 그렇죠."
"어! 혹시... 첫사랑?"
"아, 예, 뭐..."
결혼하는 동료는 약간 쑥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렇군요. 첫사랑과 결혼이라니, 멋지네요. 첫사랑은 보통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대요."
내가 이렇게 말할 때, 옆에 앉아있던 그녀가 한 마디 거들었다.
"아무로 레이와 프라우 보우처럼 말이죠?"
회식이 끝나고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갔다.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은 나는, 회사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가지고 회식 장소 근처로 다시 돌아올 예정이었다. 집이 같은 방향인 사람들을 태우고 가기 위해서였다.
"집이 어느 쪽이세요?"
그녀에게 물었다.
"저는 OO동입니다."
"아, 저도 OO동인데, 그러면 제 차로 같이 가시죠. 집 근처에 내려드릴게요."
"아니에요. 저는 따로 갈게요."
그녀는 친절한 미소를 띠며 사양했다.
"어차피, 그쪽 방향인 사람이 두 명 더 있어서 제가 태워다 주기로 했거든요.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에요. 그럼 내일 뵐게요."
그녀는 재차 사양하고 먼저 발길을 돌렸다.
"프라우 보우, 잘 준비해줘."
"취침 준비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즐거우셨어요?"
"어. 오랜만에 한 회식이 참 재밌었어. 고기도 맛있었고, 좋은 소식도 있었고."
조명이 은은한 조명으로 바뀌고, 잘 때 듣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 참, 회식 중에 네 이름도 나왔다고."
"제 이름이요?"
"그래. 프라우 보우를 알고 있어서 깜짝 놀랐지. 혹시 건담을 좋아하는 걸까?"
"반가우셨나 봐요."
"반갑기도 했지만... 음..."
"무슨 고민이 있으신가요?"
"아니야. 이만 자야겠어. 잘 자, 프라우 보우"
"네 OO님. 편안한 수면 취하세요. 저는 늘 당신 곁에 있답니다."
"알고 있다고."
4
커피를 좋아해서, 점심 식사 후 나른한 시간에 친한 동료와 커피 타임을 자주 가진다. 둘 다 늘 같은 것을 마시는데, 동료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연하게 마시고, 나는 따뜻한 카페모카를 마신다.
'내가 카페모카 마시는 걸 많이 봤을까?'
"OO님이 보시기에, 새로 들어온 신입은 어떤 것 같아요?"
"네? 어떠냐고요? 음... 일도 괜찮게 하고, 성격도 나쁘지 않아 보이던데요."
그녀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녀에 대해 물어와서 조금 놀랐다.
"그렇군요. 일은 딱 부러지게 하는 게 맞는데, 저는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네요. 팀에 적극적으로 녹아들지도 않는 것 같고. 대화를 할 때도 너무 딱딱하게 굴고요."
"그래요?"
의외였다. 나는 그녀가 상당히 상냥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얘기를 잘 들어주기도 하고,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미소도 가지고 있었다.
"아... 저는 다른 팀원들과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요?"
"아, 딱히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에요. 단지, 일 얘기 외에는 대화도 많이 안 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요."
그러고 보니, 그녀가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모습을 별로 못 본 것 같았다. 나와는 사적인 대화도 많이 하는데, 다른 사람과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외국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했죠?"
내가 물었다.
"네, 런던에 있는 OO 대학교를 다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어렸을 때부터 외국 생활을 했으면, 한국 문화가 익숙하지 않을지도 모르죠."
"음... 그럴 수는 있겠네요."
그렇게 말은 했지만, 막상 나도 개운한 느낌은 아니었다.
"프라우 보우, 잘 준비해줘."
"취침 준비를 하겠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셨나요?"
조명이 은은하게 바뀌고, 잘 때 듣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냥 보통의 하루였어."
나는 낮에 동료와 나눈 대화를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프라우 보우, 내 지인들 중에 OO 대학교에서 유학했던 사람이 있지 않았나?"
"확인해 보겠습니다."
1초 만에 프라우 보우가 다시 말을 꺼냈다.
"OO님이 OO 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아, 그래! 그 친구였구나. 고마워, 프라우 보우. 잘 자."
"OO님, 좋은 꿈 꾸세요. 저는 늘 당신 곁에 있습니다."
"그래. 참 한결같네, 너는."
5
"그래서, 프로젝트는 잘 마무리된 거야?"
"네.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최소한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나쁘지는 않았죠."
OO은 예전에 나와 같이 일했던 직장 동료였다. 같은 직장을 다닐 때는 서로 존대를 하며 지내다가, OO이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한 후에는 친한 형 동생으로 지내고 있었다. 이직한 회사가 그리 멀리 있지는 않아서 가끔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했는데, 오늘도 함께 점심 식사를 한 후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일단 결과를 보면서 천천히 보완해 나가면 되지."
"그렇죠. 형은 어떠세요? 여전히 바쁘세요?"
"아, 최근에 신입이 한 명 들어왔는데, 일을 곧잘 해서 내가 좀 편해졌어."
"다행이네요. 우리는 사람이 부족한데 채용이 잘 안 돼서 걱정이에요."
"그래, 요즘 사람 구하기가 쉽지가 않지. 근데, 너 런던의 OO 대학교에서 유학했다고 했지?"
커피가 담긴 머그컵을 만지작 거리면서, 오늘 OO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을 꺼내기 시작했다.
"네, 왜요?"
"아, 이번에 우리 팀에 들어온 신입도 OO 대학교 출신이라고 하더라고. 나이도 너랑 별로 차이 안 나던데, 혹시 아는 사람일까 해서. 혹시 OOO라고 알아?"
"음... 아니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요? 저랑 다른 시기에 학교를 다녔나 보네요."
창 밖을 둘러보며 OO이 대답했다.
"OO 년도에 졸업했던데"
"그래요? 그럼 저랑 일 년 차이밖에 안 나는데, 이상하네요. 한국 학생이 많지 않아서 어지간하면 서로 다 알고 지내거든요. 저보다 일 년 늦었으면, 제가 모를 리가 없는데."
"그래? 다른 사람들하고 교류가 없었나?"
"교류가 없어도, 일단 한국 학생이 누가 있는지는 다 알고 있었는데, 이상하네요."
"그래..."
"프라우 보우, 잘 준비해줘"
"취침 준비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는 어떠셨나요?"
조명이 취침 조명으로 바뀌고, 숙면에 도움이 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응, 오늘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하루였어."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낮에 OO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OO을 통해서 그녀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고 싶었는데, 오히려 의혹만 더 생겨버렸다. 회사에 출근한 지, 한 달이 되었지만, 동료들도 그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나와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이었지만, 막상 나도 나와 취향이 잘 맞는다는 것 외에는 그다지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녀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무슨 고민이 있으신가요?"
"어, 아니 좀... 생각할 게 있어서"
"고민이 있으시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스피커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네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니야. 이제 자야겠다. 잘 자, 프라우 보우."
"네, OO님. 좋은 꿈 꾸세요. 저는 늘 당신 곁에 있답니다."
"그래, 고마워."
6
'안녕하세요, 고객님. 오늘 오후 11시부터 약 2시간 동안, 인공지능 스피커의 음성지원 서비스에 대한 긴급 점검이 있을 예정입니다. 해당 시간 동안 음성 입력과 음성 출력을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외 모든 인공지능 서비스는 이상 없이 동작하므로, 버튼 조작을 통해 필요한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고객님께 불편을 드려 죄송하며, 더 좋은 서비스를 위한 점검이오니 고객님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일에 한참 몰두하고 있는 와중에 문자가 와서 확인해보니, 오늘 인공지능 스피커의 점검이 있다는 문자였다. 긴급 점검을 하는 걸 보니, 뭔가 중요한 오류가 발견되었나 보다. 담당 개발자가 집에도 못 가고 일을 하고 있을 생각을 하니 같은 개발자로서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지금, 나 역시도 일을 다 마무리하지 못해 제시간에 퇴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슬슬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되려면 아직 한 시간 정도 남았지만, 금요일에는 5시부터 사람들이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 준비를 한다. 심지어 평소에 야근을 하던 사람들도, 금요일에는 대부분 일찍 업무를 마무리한다. 나도 그럴 예정이었지만, 내가 하던 연구에서 예상치 못한 오류가 발생해서 정시 퇴근은 어렵게 됐다. 아마 오늘 우리 팀에서는 내가 제일 늦게 퇴근할 것 같다. 그때, 퇴근 준비를 마친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 옆으로 왔다.
"OO님, 오늘은 퇴근이 늦으시겠네요."
"그러게요. 아무래도 퇴근 시간을 조금 넘길 것 같네요."
일에 집중하느라고, 그녀의 얼굴을 돌아보지 않고 모니터를 계속 응시하면서 대답했다.
"저는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 팀장님께 얘기하고 한 시간 일찍 퇴근해요."
"그렇군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여전히 내 시선은 모니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얘기를 거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OO님"
"네?"
"힘내세요. 저는 늘 당신 곁에 있어요."
"그래......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