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취한하늘 Oct 25. 2024

[책] 세상은 의지가 아니라 필연의 결과다, '에티카'

바뤼흐 스피노자

신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신은 유일하다는 것, 신은 전적으로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서만 존재하고 작용한다는 것, 신은 만물의 자유원인이라는 것과 어찌하여 그러한지에 관한 것, 모든 것은 신 안에 존재하며 신 없이는 존재할 수도 파악될 수도 없을 만큼 신에게 의존하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것은 신에 의해 예정되어 있는데, 의지의 자유나 절대적 재량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의 절대적 본성 또는 무한한 능력에 의해서 그러하다는 것 등을 설명하였다.
- 스피노자, <에티카>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 것은 아는 사람의 ‘도발’ 때문이었다. 이 책이 너무 어려우므로 쉽게 도전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어렵길래 그럴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과연 책은 난해했다.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생각날 정도로 어려웠다. 사실 스피노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그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하고자 했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체계적으로 증명하고자 하니, 이야기가 추상의 세계에 머물게 되고 이해하기 어렵게 된 것 같다.


스피노자는 ‘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에티카’의 모든 내용은 ‘신’으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이 책을 정독하지 않으면 스피노자를 신학자로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피노자의 ‘신’은 종교적 ‘신’이 아니다. 스피노자는 만물의 근본원인이자, 최초에 스스로 존재했던 실체를 ‘신’으로 부르고 있다. 그것은 아무런 의지가 없으며, 정해진 ‘필연’에 따라 만물을 창조했다. 이 부분이 특히 중요한데, 만물이 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까지는 마치 종교적 신과 동일해 보이지만, 의지가 없고 선택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스피노자의 ‘신’이 종교적 ‘신’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바로 이 점이 책을 난해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된다. ‘신’을 ‘의지가 있는 초월자’로 보면 내용이 이상해진다. 반면, ‘세상을 구성하는 근본 원리’로 이해하면 훨씬 쉽게 이해가 된다. 따라서, ‘신’이라는 용어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종교적인 신을 완벽하게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스피노자는 파문까지 당했다. 다행히 삶이 크게 고단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실제로 책의 내용을 읽어 보면, ‘유물론’에 가깝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신의 의지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자유 의지도 부정하고 있다. 그저 모든 것은 정해진 원리에 따라 ‘이행’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도 ‘유물론’을 지지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스피노자의 의견이 반가웠다.


책의 제목은 <에티카>지만, 앞부분에 <지성교정론>이라는 글이 포함되어 있다. 아무래도 <에티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피노자가 논리를 구성하는 방식부터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지성교정론> 자체도 어렵기 때문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최대한 논리적인 전개를 하고자 했지만, 사실 완벽하지는 않다. 특히, 몇 가지를 당연시하고 넘어가는데, 그러한 부분이 당연하지 않으면 전체 논리가 허물어질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답을 만들기 어려운 주제를 최대한 논리적으로, 혹은 과학적으로 풀어내려고 한 것은 대단하다. 그리고, 이렇게 긴 호흡의 글에서 일정한 태도와 논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만 해도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앞에서는 ‘신’이 중심이지만, 뒤로 갈수록 ‘인간’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인간의 정신, 감정, 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의 태도를 이야기한다. 이 중에서 감정에 대한 부분은 이해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논리도 굉장히 단순하고, 사람들이 이미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소재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사람의 감정이 어떤 정체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어서 상당히 유익하기도 하다.


마지막 부분에서 스피노자는 ‘이성’을 강조한다. 인간의 본성은 만물의 근본원인인 ‘신’에 포함되어 있고, 그러한 본성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이성’이다. 그리고 ‘이성’의 힘으로 ‘감정’을 통제하여, 모든 사람이 신의 섭리를 느낄 수 있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구축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거꾸로 ‘신’을 필요로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고 읽기 시작했지만, 읽다 보니 그 철학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스피노자가 생각하는 방식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내용이 난해하기 때문에 이 책을 권하기는 역시 어려운데, 관심이 있다면 <에티카>를 해설한 글이라도 찾아서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이성에 의해 지배되는 사람들, 즉 이성의 지도에 따라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바라지 않는 어떠한 것도 자신들을 위해 추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공정하고 성실하며, 염치를 아는 사람들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



매거진의 이전글 [책] 새 술은 새 부대에, '미래를 경영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