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길버트
주의: 이 소설은 ‘성(性)’에 대해 무척 솔직하고 심지어 적나라하니, 그런 것이 불편하신 분에게는 권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 서평에는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어렸을 때는 뉴욕의 중심에 있고 싶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깨달았다. 그 중심에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중심은 어디에나 있다.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중심이었다. 뉴욕은 수백만의 중심으로 이루어진 도시였다. 어쩌면 그게 더 마법 같은 일이었다.
- 엘리자베스 길버트, <시티 오브 걸스>
책을 다 읽고 나서 서평을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이 됐다. 책 표지에는 사랑이야기라고 쓰여 있지만, 읽어 보니 사랑 이야기로 보기에 애매한 느낌이 있었다. 결국, 이래저래 생각하다가 일단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저자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로 유명한 작가다. 전 세계적으로 1,000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하니 대단한 베스트셀러다. 그런 작가가 2019년에 출간한 소설이 <시티 오브 걸스>다. 이 소설도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등극했고, 아마존에서 올해의 책으로도 선정되었다고 한다.
소설은 주인공 비비안 모리스가 ‘안젤라’라는 어린 여성에게 쓰는 편지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편지라기보다 회고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비비안 모리스가 십 대 중반의 나이에 뉴욕에 입성할 때부터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내고 있다.
비비안 모리스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소녀였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싶어 하는 소녀였다. 뉴욕은 그런 비비안에게 어울리는 도시였다. 고향을 떠나 뉴욕에 있는 페그 고모의 집에 가면서부터 비비안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기 시작한다. 아니, 사실은 그렇게 살려고 했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그녀는 아직 어렸고, 삶의 솔직하고 잔인한 면모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소설에는 개성 강한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역동적인 사건들도 이어진다. 비비안은 강렬한 경험의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닌다. 그러다가 점차 그 파도를 이해하게 되고, 나중에는 파도에 익숙해진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 소설을 ‘성장 이야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무언가를 깨달아가는 성장이 아니라 삶에 익숙해지는 성장의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책 전체에서 하나의 큰 맥락을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이 소설은 맥락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으로 이해해야 하는 소설인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내가 이 소설을 어렵다고 느낀 것은 내가 여성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은 확실히 여성의,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소설이다.
그렇기는 해도 나는 이 소설에 쉽게 빠져들었다. 주인공 비비안 모리스는 나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였고, 다른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작가의 문체도 너무 좋았서, 꽤 많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함을 느낀 순간이 없었다. 나로서는 충분히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임에 분명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재미있는 소설인 것도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