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
고요한 정적이 참 좋다. 차 한 잔을 우려 놓고 앉아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와 베란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차를 따르는 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 일상의 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그 어떤 음악보다 그 어떤 소리보다 아름답고 조화롭게 느껴진다.
- 이유진, <차와 일상>
차를 좋아했던 적이 있다. 커피 대신 차를 가까이했다. 하지만, 차에 대해 잘 알았던 것은 아니다. 왠지 차가 커피보다 건강에 좋을 것 같다는 애매한 생각, 차로부터 느껴지는 고상한 이미지 같은 것을 소비했을 뿐이다. 마시는 차들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녹차, 둥굴레차, 유자차, 생강차 정도였다. 그러다가 다시 커피에 익숙해졌고, 차로부터 멀어졌다.
최근에 다시 차에 관심이 생겼다. 이 책의 저자인 이유진 님으로부터 몇 가지 차를 소개받으면서부터였다. 소개받은 차를 마셔보니, 나와 잘 어울렸다. 입에도 잘 맞았고, 몸에도 잘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무실에서는 다시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진 님이 출간한 책을 찾아보게 되었다.
작가가 출간한 책이 여러 권 있는데, 그중 <차와 일상>을 선택하여 읽었다. 차에 관심이 있기도 했지만, 차와 함께하는 일상에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차를 내 일상의 일부분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그래서 차를 마시는 사람의 일상을 관찰하고 싶었다.
<차와 일상>은 정말 제목에 충실한 책이었다. 여러 가지 차와 도구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차와 함께하는 일상의 모습이 중심에 놓여 있다. 아침, 오후, 저녁, 그리고 주말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고,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차와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낸다. 동시에 삶에 대한 작가의 태도도 살짝 엿볼 수 있다.
이 책의 특별한 점은, 읽는 다기보다 듣는 느낌이 드는 책이라는 것이다.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라디오를 듣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다섯 식구의 사연을 라디오를 통해 듣는 것 같았다. 일상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차분함이 느껴지는 작가의 문체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힐링’이 주요한 키워드가 되고 있다. ‘건강’에 소비하는 돈이 많아지는 것처럼, ‘힐링’에 돈을 쓰는 사람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한순간의 편안함으로 얻어지는 ‘힐링’은 금방 사라지고 만다. 삶을 정말로 평온하게 만들고 싶다면, ‘힐링’이 일상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차는 이러한 일상적인 ‘힐링’에 무척 잘 어울리는 소재다.
삶의 무게를 줄이고 싶다면, 평온한 일상을 누리고 싶다면, 이 책 <차와 일상>을 읽어 보자.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차를 한 잔 마셔보자. 어쩌면, 우리 옆에 늘 존재하던 여유와 평온을 새로이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차를 담아낸 찻잔을 서서히 입으로 가져오면 향과 뒤섞인 차향이 머릿속 깊은 곳으로 흘러들어 온다. 나도 모르게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자연의 향을 즐긴다. 입 안에서 목을 통해 뜨거운 차가 굴러들어 가고, 코를 통해 하얀 연기로 춤을 추며 들어오는 향이 어우러진다. 온몸이 이완되고 단전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향과 차과 뒤섞이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스르르 눈이 감긴다. 온몸은 이완되지만 향과 차로 정신은 맑게 깨어남을 느낀다. 향을 하나 사르고, 차를 몇 잔 비워내면 놀라울 정도로 머리가 가볍고 맑다. 백차의 잔향이 입안에 남고 향의 잔향이 머릿속에 남는다. 자연의 향기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풍요로운 일이다.
- 이유진, <차와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