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밑줄 긋기 1
물건이냐 서비스냐, 하드웨어냐 소프트웨어냐, 민간 기업이냐 행정이냐. 상품이나 주체의 차이에 따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그러나 뛰어난 창작자에게는 컨셉을 잘 활용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에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동료나 고객에게 제시하고, 논의하고, 망설임 없이 부순 다음 다시 만들고. 컨셉은 돈 한 푼 들지 않는 시제품, 즉 프로토타입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상식이나 절대 선을 컨셉으로 삼고 싶어 하는 이유는 누구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온전히 사랑받기 위해서는 때로는 미움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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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엔비는 호텔 같은 극진한 대접을 원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스타벅스는 지금보다 흡연자가 훨씬 많았던 1990년대부터 이미 흡연자를 대상에서 배제해 왔습니다. 당시 일본의 카페 문화를 생각하면, 적게 잡아도 주요 카페 이용자의 절반 이상을 무시한 셈이지요.
컨셉을 만드는 것이 곧 정답을 만드는 기술이라고 많은 사람이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사실 컨셉의 절반은 물음표 만들기에 의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좋은 컨셉을 이끌어내려면 조리 있는 질문이 반드시 필요하지요.
좋은 질문 앞에서는 자연히 다양한 대답이 끊임없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모든 답이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지지요. 창의적인 질문은 답을 하려고 몰두하는 이들을 독려합니다. 이렇게 ‘좋은 질문’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은 컨셉을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만약 눈앞에 있는 질문이 근성으로 승부하는 ‘나쁜 질문’이나 즐겁기만 한 ‘퀴즈’라면, 과감히 질문을 ‘바꾸는’ 방법을 고려해야 합니다.
질문을 바꿈으로써 관점을 바꾸고 시야를 넓혀 생각을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영역으로 이끄는 것을 ‘재구성’이라고 부릅니다. 창의성 연구로 이름이 알려진 스탠퍼드대학교의 티나 실리그 교수는 “질문은 모두 틀(프레임워크)이며 답은 그 안에 들어간다”라고 말하며 “틀을 바꾸면 해결책의 폭이 극적으로 변화한다”라고 재구성의 힘을 설명했습니다.
근대 면역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워드 제너는 아무도 답을 내놓지 못했던 “왜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는가?”라는 질문을 버리고, “왜 낙농장에서 일하는 여성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 결과, 사람에게 해롭지 않은 우두의 존재를 발견하고 백신을 발명해 세계에서 천연두를 몰아냈지요.
또한 셜록 홈스는 그의 친구 왓슨이 “개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으니 사건과 관계없지 않은가?”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서 “개가 짖지도 않고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면, 그거야말로 대단히 중요한 점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시해 사건을 해결했습니다.
객관적인 답은 데이터와 AI를 통해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관이 만드는 파격적인 답은 데이터에서 도출해 내지 못합니다. 상식적인 질문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면 자신만의 개인적인 질문으로 시작해 봅시다.
경영학자 시어도어 레빗은 “미국의 철도 회사가 쇠퇴한 것은 수단과 목적을 잘못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철도 회사는 자신들의 사업 컨셉이 ‘철도’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운송’을 비즈니스 컨셉으로 삼았다면, 철도라는 수단에 얽매이지 않고 자동차나 비행기 등 각 시대의 기술을 도입해 진화했으리라는 것이 레빗의 주장이지요. 그들은 철도라는 수단을 고집하지 말고 목적을 물어야 했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컨셉일수록 순서에 따라 타인의 공감을 얻는 서사성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감동의 창조’, ‘행복의 양산’, ‘여성의 자신감’처럼 미션에는 구체성보다 보편성이 필요합니다. 미션을 오토바이나 자동차, 비누 등과 같이 구체적인 물건이나 서비스로 정의해 버리면 앞으로의 발전을 구성하기가 어려워지니까요.
목표로 삼아야 할 이상적인 미래를 ‘보이는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비전의 역할입니다. 들은 사람이 풍경을 떠올리며 스케치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새롭고 의미 있는 비전일수록 기득권을 쥔 사람이나 조직은 당연히 반대 목소리를 올리기 마련이지요. 뒤집어 생각하면, 아무 마찰도 없이 동의를 얻는 비전은 이미 사회나 조직에서 합의가 끝난 뻔한 미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나 비판을 과도하게 두려워하느라 추상적인 말로 적당히 얼버무리지 말고 또렷한 미래를 제시합니다.
평소 어휘력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어휘력은 분명 높을수록 좋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반드시 컨셉의 질을 높여주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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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점은 말을 얼마나 아느냐보다 말에 관한 선입견을 얼마나 버릴 수 있느냐, 얼마나 파격적인 말을 선택할 수 있느냐입니다.
마감까지 시간이 남아 있다면 ‘일주일 테스트’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 컨셉 후보를 일주일 정도 재워두기만 하면 됩니다. 일주일 뒤 어떤 컨셉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요? 그새 잊어버린 말은 없을까요? 컨셉은 오래 쓸 말이니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서 얼마나 기억에 강하게 남는지 확인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