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밑줄 긋기 1
고객이 원하는 것,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이 달라지고 있다. 소비자 행동도 상당한 변화를 보인다. 따라서 파괴의 진짜 원인은 기술이 아니라 달라진 고객들이다. 사실 신기술은 언제나 등장한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기술이다. 어떤 기술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면 그것은 고객들이 사용하겠다고 선택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신생 기업들은 이 사슬을 끊어내어 고객에게 하나 또는 일부 활동만을 충족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면서 나머지 활동은 기존 기업들이 충족하게 한다. 나는 이렇게 소비 사슬을 끊어내는 과정을 ‘디커플링 decoupling’이라 부른다. 신생 기업들은 디커플링을 통해 시장에서 기반을 구축하고, 고객을 위한 구체적인 활동을 충족시켜 가며 성장한다. 나는 이를 ‘커플링 coupling’이라 부른다. 처음의 디커플링과 뒤이은 커플링은 신생 기업이 기존 기업의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빼앗아올 수 있게 해 준다. 간단히 말해 신생 기업은 교란자 내지 파괴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기존 기업이 신생 벤처 기업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신에 소비자 욕구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파괴의 전반적인 패턴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고안하기를 권한다. 파괴 현상은 개별적이고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 이미 일반화된 문제다. 따라서 기업은 이처럼 본질적으로 일반화된 문제에 대해 일반적인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
신생 벤처 기업은 기존 기업이 예전부터 제공하던 CVC의 일부만을 도태시키고 그렇게 분리해 낸 일부를 중심으로 전체 비즈니스를 구축하고 있었다. 신생 기업이라는 파괴자들은 고객이 행했던 일련의 활동들을 따로따로 떼어놓고 있었다. 전통적인 경쟁에서는, 경쟁자가 성공한 기존 기업의 모든 비즈니스를 대체하려 하지만 신생 기업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고객에게 약간의 가치만 제공해도 그들을 훔쳐올 수 있는데 왜 모든 부분을 대체하려 하겠는가?
삼성과 계약을 체결한 후 베스트바이는 서둘러 비즈니스 모델을 변경했다. 일반적인 소매 업체에서 주요 제조사의 쇼룸, 즉 전시실 역할을 하는 비즈니스로 변신한 것이다. 투자를 최소화하고 복잡한 신기술을 도입하지도 않았지만 비즈니스 모델을 바꾼 뒤 베스트바이의 수익률은 급상승했다. 2019년 기준, 베스트바이 이익의 상당 부분이 이른바 입점 수수료에서 나왔다. 주요 제조사들이 경쟁사와 떨어진 가장 좋은 매장 자리에 자사 브랜드가 돋보이도록 제품을 전시할 기회를 얻기 위해 지불하는 돈이 상당했다는 뜻이다.
디커플링을 제거하거나 디커플링을 하려는 상대를 인수하려 하기보다는 그들과 평화적으로 공존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스타트업 하나를 없앨 수는 있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또 다른 파괴적 비즈니스가 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고객이 스타트업으로 옮겨가지 못하게 손발을 묶어둘 순 있지만 고객이 묶인 밧줄을 풀고 빠져나가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그렇다. 디스럽션을 막을 수 있는 열쇠는 공존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월마트를 제외하고 미국 내 슈퍼마켓 체인에서 가장 큰 수입원은 매장 위치에 따라 제품 진열 비용을 달리 책정해 광고비를 받는 입점 수수료다. 상품 판매에서 나오는 이윤은 수입원 중 네 번째에 불과하다. 그러니 다음에 슈퍼마켓에 갈 일이 있거든 너무 놀라지 말기를 바란다. 슈퍼마켓은 그저 식료품을 들여와 중간 이윤을 붙여 판매하는 업체가 아니다. 브랜드에 대한 관심을 끌고 그런 관심을 판다는 측면에서 보면 소매 업체보다는 미디어 회사에 더 가깝다.
디지털 파괴자는 온라인으로 콘텐츠를 배포하고 사람들이 소비하고 싶어 하는 것만 - 그것이 전체 콘텐츠의 극히 일부라도 - 전달할 기회를 포착했다. 전체적으로 소비자들은 예전보다 적은 양의 콘텐츠를 구입했다. 하지만 그건 소비자가 예전보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양이 줄었기 때문이 아니라 마침내 생애 처음으로 원하는 만큼만 콘텐츠를 구매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판매 방식의 전개는 소비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 EMI, 맥그로힐의 교과서 출판 부문 등 기존 업체들의 매출을 대폭 감소시키면서 묶음 콘텐츠를 판매하는 회사를 혼란에 빠트렸다.
콘텐츠뿐 아니라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서비스 제공 업체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인터넷이 더 저렴한 비용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노출될 수 있는 통로로서의 잠재력이 있음을 알게 됐고, 더더욱 중개인을 거래에서 제외시켰다.
우리가 디지털 시대에 경쟁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기술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더 심층적인 전문 지식을 습득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기본으로 돌아가 어떻게 기업이 수익을 창출하는지, 어떻게 당신의 비즈니스가 새로운 수익을 올릴 수 있는지에 대해 돌아보아야만 한다.
파괴의 주범은 ‘고객’이다. 고객이 자신의 진화하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취한 행동 변화가 포시즌스 호텔을 위협한 것이다. 고객은 침실에 만족하지 않고 가족 공간을 원했다. 진정한 여행 경험을 얻고 싶어 했다. 에어비앤비를 비롯해 많은 유사 기업들은 그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수십 개 호텔 체인보다 더 완벽하게, 더 재빠르게 고객의 요구 사항을 파악하고 원하는 것을 전달했을 뿐이다.
“다른 회사의 임원들은 매일 아침 샤워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경쟁자를 앞서나갈 수 있을지 생각한다. 우리는 매일 아침 샤워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고객을 위한 무언가를 발명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 제프 베조스
만약 고객의 선택이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 차이 때문이었다고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정도라면 디커플링 외에 다른 요인이 그런 선택을 이끌어냈을 수도 있다.
가치사슬의 관련 단계를 제대로 식별해내지 못해 허둥대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 구매 과정을 좀 더 잘 설명하려면 다음처럼 할 수 있다. 자동차 리스가 한 달 후에 만기라는 사실 인식하기->신차 구입의 필요성 느끼기->자동차 광고에 관심 갖기->자동차 제조사 웹사이트 방문하기->마음이 끌리는 브랜드 두세 개 정하기->다른 자동차 웹사이트 방문하기->동일한 범주에 있는 자동차들 옵션 비교하기->모델 선택하기->온라인으로 최저 가격 확인하기->선택한 모델이 있는지 확인하기 이해 가까운 딜러 방문하기->온라인 가격보다 좋은 가격에 판매하는지 확인하기->자동차 시승하기->자동차 금융, 보증 기간 및 기타 추가 사항 확인하기->최종 가격 협상하기->계약 체결하기->차량 인수하기->사용하기->다시 리스 만기 기다리기. 이처럼 새 리스 차량을 찾는 경우에 구매 과정은 총 18가지에 이른다.
이렇게 CVC를 상세하게 그려낸다면 자동차 구매 과정이 얼마나 복잡한지, 디커플링을 위한 옵션이 몇 개나 존재하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파괴자들이 가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기존 기업과 달리 서비스에 대해 요금을 부과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이 기존 기업과는 다른 수익원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즉 낮은 가격 및 낮은 한계비용의 조합에 의존하는 비즈니스 모델에 따라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CVC의 특정 지점에서 창출되는 가치와 그 지점까지 기업이 대가를 부과한 가치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본다. 차이가 발견된다면 내가 말하는 ‘누수’가 발생한 것이다. 누수가 생길 경우 디커플러가 불쑥 끼어들어 기존 기업이 아직 확보하지 못한 가치를 가로채간다.
디커플링이 당신의 비즈니스를 목전에서 위협하고 있다면 단순히 재결합에서 영구적인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 마라. 단기적인 재결합 계획과 선제적인 디커플링 계획을 둘 다 세워라.
대응을 시작하기 전에 언급한 대로 과연 조금이라도 대응할 필요가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이 결정은 대응 시 드는 비용(재정 및 경영진의 시간)과 무대응 시 기존 비즈니스에 미칠 손실 위험을 견준 후에 내려야 한다. 무대응과 관련해 기존 기업은 두 가지 유형의 위험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디커플러가 시장에 진입할 위험, 시장에 진입한 디커플러가 당신 고객의 상당수를 빼앗아갈 위험이다.
시장 안에 매몰되지 말고 시장 밖에서 생각하라. 스타트업이 당신 제품과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다 해도 고객이 스타트업의 제품을 구매 고려군에 포함시킨다면 그 스타트업은 자연히 당신 회사의 경쟁자가 된다. 많은 가정에서 사람들은 케이블 텔레비전을 영화관, 발레, 주말여행과 같은 고려군에 둔다. 어버이날 선물은 어떤가. 내 동료 바라트 아난드 교수가 즐겨 드는 예로, 어버이날 선물로 꼽히는 넥타이의 경쟁 제품은 전동 정원 관리 기구, 전자 기기, 심지어 외식이 될 수 있다. 이 모두가 동일한 구매 고려군에 포함되는 것이다.
당신이 수익성을 바라보든 확장성이 뛰어난 방법을 생각하든 관계없이, 모든 고객에게 최고의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이런 초기 투자는 나중에 배당금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곧 알게 되겠지만 당신의 첫 번째 고객들은 당신의 사업이 돌아갈 수 있게 돈을 지불하는 역할뿐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해내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일까. 경쟁 기업들이 ‘핫’한 시장으로 너무 몰려드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성장하는 시장에 강력한 경쟁자들이 동시에 몰려들면 시장점유율과 이윤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베인앤컴퍼니는 기업의 높은 성장률이, 진출한 시장의 역대 성장률보다는 경쟁 업체 대비 해당 기업의 실적 내지 성과와 더 관련 있음을 알아냈다. 그 좋은 예가 부동산 업계다.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다년간 집값이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였다. 이런 지속 성장은 많은 건설업자들이 주택 건설에 투자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과도한 경쟁 때문에 실제로 성장 혜택을 보는 업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월마트는 20세기 후반에 소비내구재에서 대량 농산물로, 그다음에는 잘 상하는 식료품류와 휘발유 판매까지 확대해 가면서 물류비용과 부동산 비용을 줄였다. 하지만 이와 달리 알리바바는 곧바로 기업 측 시너지 효과를 추구하지 않았다. 알리바바의 진정한 성공은 고객 측 시너지 효과에 있었다.
“직원들은 아이디어가 있고 그 아이디어에 신이 난다. 문제는 회사가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 많은 회의를 거치면서 임원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승인받아야 하며 파워포인트를 사용해 발표를 해야 한다. 나를 비롯해 임원들은 혁신을 가로막는 장벽을 제거해야 한다.”
- 스콧 쿡(인튜이트 공동 창업자)
특히 규모가 큰 기존 기업의 경우에는 포괄적 인센티브 제도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직원들이 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회사는 돈을 제공해야 한다. 직원들이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면 회사는 시간 역시 제공해야 한다. 칼 마르크스가 언젠가 말했듯이 “각자의 필요에 따라” 제공해야 한다.
CEO가 직원들의 동기부여를 위해 하는 연설, 멋들어진 비전 발표, 혁신을 위한 자원 배분 등 기업이 혁신을 촉발하기 위해 활용하는 일반적인 전술은, 경영자와 관리자들 사이의 협력을 촉진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인센티브가 존재하지 않는 한 모두 실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