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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흥수, '대화의 정석'

책에 밑줄 긋기 1

by 취한하늘

대화가 힘들었던 상황을 살펴보면 대부분은 상대방에게 ‘관심’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대화를 이어지게 하는 힘은 관심이다. 관심이 있으면 질문이 나오고, 그 질문은 상대방을 향한다. 대화 상대에게 관심을 갖자. 그 사람의 생각과 기분, 마음을 궁금해하자.


하나의 주제로 깊이 있게 대화를 나누면 상대방을 잘 알 수 있게 되어 질문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나의 이야기는 나중에, 친해지고 난 뒤에 해도 된다. 정말 마음을 얻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상대방이 먼저 자기 이야기를 하도록 한다. 당신에게 그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그에게 당신은 특별한 존재가 된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대화의 원리이자 설득의 요소다.


감정을 표현하는 질문을 구체적으로 하면, 감정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던 사람도 어렵지 않게 자기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 질문이 중요하다. 어떻게 물어보느냐에 따라서 대답이 달라진다. 항상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무뚝뚝하게 물어봤을 확률이 높다. 늘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단답형 대답을 하도록 질문한 것일 수 있다. 앞으로는 구체적으로 감정을 묻자.


매번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번 주에 언제 가장 행복했어?”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생소했다. 그동안 나의 행복을 묻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때 뭐라고 답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하면서 행복감을 느꼈던 건 여전히 기억난다.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니까 곧바로 행복해졌던 것이다. 그는 행복한 이야기를 듣더니 “오, 정말? 잘됐다! 진짜 축하할 일이다! 정말 행복했겠다. 나도 기뻐”라고 말했다.


‘상대’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상대와 관련한 ‘사실’에 초점을 맞추면 꼬치꼬치 캐묻는 질문이 된다. 이런 질문은 답이 정해져 있다. 사실을 말하거나 말하지 않는 것이다. 대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을 심리학에서는 ‘닫힌 질문’이라고 표현한다. 닫힌 질문은 한정적인 답을 이끌어낼 수밖에 없어서 질 낮은 대화로 이어진다. 자신은 상대방에게 관심이 있어서 질문한 것이어도 의도와는 달리 ‘너를 확인하겠어’라고 인식되면 반감만 일으킬 뿐이다.


우리는 자신이 살아온 경험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대화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경험으로 판단하고 조언하고 때로는 비난한다. 화제의 중심에는 상대방이 아닌 내가 있다. 상대방이 현재 어떤 감정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한다. 자신이 살아온 세상이 전부이고 진리라는 듯이, 상황을 예단한 뒤 멋대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자신의 경험으로 보면 별일 아닌 일로 불평한다는 생각이 들어 가볍게 넘기라는 말도 한다.


“공감의 열쇠는 바로 우리의 존재다. 그 사람 자신과 그 사람이 겪는 고통에 온전히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 마셜 로젠버그, <비폭력 대화>


타인의 말을 적으면서 듣는 모습은 경청할 준비를 갖춘 것처럼 보인다.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겠다는 의지가 엿보이고, 대화에 진지하게 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쓰면서 듣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신중하게 말하게 된다. 자신이 하는 말을 적을 테니까 아무 말이나 하지 않고 가려서 한다. 이로써 대화의 질은 높아져 이야기가 무게 있게 흘러간다. 또 청자가 받아 적을 수 있는 속도로 말하게 되어 말이 빠른 사람도 그 속도를 늦춘다.


발표할 때도 펜과 수첩을 들고나가자.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답변을 잘할 수 있다. 발표할 때는 프레젠터를 쥐고 있거나 제스처를 해야 하니 펜과 수첩을 교탁에 둔다. 발표를 마치고 질의를 받을 때 교탁에 돌아와서 질문을 필기하며 들으면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유리하다. 질문하는 사람은 말을 길게 하거나 정리하지 않은 채 생각나는 대로 질문할 때가 있다. 이때 쓰면서 듣고 대답하면 질문을 못 듣거나 놓치는 일이 생기지 않아서 질문자가 원하는 대답을 할 수 있다.


제삼자의 이야기라고 여기면 나와 관련 없는 이야기이므로 기분 좋은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내가 가장 잘하는 말은 “그러게 말이에요”이다. ‘그러게’는 감탄사로, 상대방의 말에 찬성하는 뜻을 나타낼 때 쓴다. 친척 어른이 제삼자를 걱정하는 데 나도 동의한다는 의미로 “그러게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이 말을 내뱉는 즉시 대화에서 거론되는 대상과 내가 완전히 분리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게요. 진짜 어떻게 될까요? 저도 무척 궁금해요.”

“그러게 말이에요. 지켜보면 알 수 있을까요?”

그다음 우리가 함께 제삼자를 도울 해법을 찾자는 마음으로 방법을 묻는다. 상대방의 생각을 물으면 그 사람은 자신에게 조언을 구한다고 여기고는 흡족해한다.


부사를 다양하게 사용하면 상황을 알맞게 표현할 수 있다. ‘갑자기’나 ‘진짜’ 대신에 ‘문득’, ‘얼핏’, ‘돌연’, ‘난데없이’, ‘느닷없이’, ‘명확히’, ‘명백히’, ‘분명히’, ‘정확히’, ‘똑똑히’, ‘확실히’ 등 여러 가지 표현을 활용할 수 있다. 가능한 한 부사를 다양하게 사용하자.


사업을 시작한 초기에는 나의 정체성을 확립할 목적으로 ‘대표님’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이름이 듣고 싶어서 이제는 “이름을 불러주세요”라고 말한다. 이름과 호칭을 함께 부르거나 이름을 불러주면 좋겠다. 나는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좋다. 내 이름을 몹시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겉모습이 비슷하고 동일하게 한국어를 사용하더라도 각자 다른 언어를 구사하고 있음을 기억하자. 외국에 나가면 피부색과 체형이 확연히 다른 여러 인종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자연스럽게 다름을 인식하며 식습관이나 문화, 언어 표현 방식이나 제스처가 달라도 그러려니 받아들인다. 독특한 행동을 해도 외국인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간다. 바로 이런 관대함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베풀자.


좋은 친구 사이는 마음이 있으면 시간이 흘러도 돌아온다는 점을 기억하자.

“잘 지냈어? 그동안 일이 많아서 연락을 못 했어. 우리 보자. 언제 시간 돼?”

이 한마디로 수십 년의 공백을 깨는 게 우정이다.


대화 도중에 다음 질문을 생각하면 앞에서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자기 머릿속 생각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화에 몰입해야 자연스럽게 이어서 할 말이 생기는 법이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을지 보여주는 방법뿐이다.”

-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분명히 알아두자. 거절한다고 관계가 나빠지지 않는다. 친구가 부탁한 ‘일’을 거절하는 거지 ‘친구’를 거절하는 게 아니다. 친구와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거절해야 할 때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거절은 관계를 위한 것이다.


험담이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사람은 대체로 나약하기 때문이다. 나도 험담을 싫어하지만 그냥 욕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나의 독자들이 무용한 험담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람과 친해지기 위한 수단, 할 말이 없을 때의 대화 방식으로 험담하지 않기를 바란다.


상대방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해결책을 찾는 데 집중하자. 회사에서는 왕왕 책임을 가려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시스템 오류, 분실, 지연 등의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밝혀서 보완해야 한다. 이때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고 따지는 데 집중하기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앞으로 실수가 반복되지 않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 책임과 원인을 가려야 한다. 문제의 원인이 한 명에게 있는 경우는 드물다. 문제는 연쇄적인 결과에 따라 발생한다. 책임을 묻는 데 집중하지 말고 해결 방안을 찾는 데 목적을 두자.


우울하고 슬픈 감정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감정은 좋고 나쁨이 없다. 감정으로 인한 행동이 좋고 나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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