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밑줄 긋기 1
친구 부모님은 어디 계시고 네가 다녀?
아버지만 계신데 대전서 일하시고, 친구랑 친구 누나 둘이서 우리 집 상하방에서 자취해요.
시외전화 오늘도 안되지?
안 돼요, 몇 번이나 해봤는데.
그럼 친구 누나는?
그 누나가 일요일부터 안 들어와서 둘이서 찾으러 다녔거든요. 근데 어제 요 앞에서 군인들이 총 쐈을 때, 친구가 맞는 걸 동네 사람이 봤다고 그래서.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 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조심스럽게 네가 물었을 때, 은숙 누나는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대답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그녀는 빈 알루미늄 포일을 접고 또 접어서 새끼손가락만 하게 만들어 움켜쥐고는 빗발을 바라본다. 그 옆얼굴이 말할 수 없이 침착하고 단단해 보여서, 갑자기 너는 뭐든 묻고 싶어진다.
오늘 남는 사람들은 정말 다 죽어요?
묻지 않고 너는 망설인다. 죽을 거 같으면, 도청을 비우고 다 같이 피해버리면 되잖아요. 왜 누군 가고 누군 남아요.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 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어떻게 잊을까, 어둠 속에서 그녀는 생각한다.
어떻게 첫 뺨을 잊을까.
처음에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던, 사무적인 일을 앞둔 사람처럼 침착하던 사내의 눈을.
그가 손을 쳐들었을 때, 설마 때리는 건가, 생각하며 앉아 있었던 그녀 자신을.
목뼈가 어긋난 것 같았던 첫 충격을.
진수 오빠가 어떻게 여자들을 설득했는지 그녀는 후에 정확히 기억할 수 없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잊은 건지도 몰랐다. 여자들을 도청에 남겨서 함께 죽게 하면 시민군의 명예가 다칠 거라던 그의 말이 어렴풋이 떠올랐지만, 그 말이 정직하게 그녀를 설득했는지 자신할 수 없었다.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죽음을 피하고 싶었다.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둔감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더 두려웠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 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대통령이 돌연히 죽은 시월 당신은 자문했다. 이제 폭력의 정점이 사라졌으니, 더 이상 그들은 옷을 벗어 들고 울부짖는 여공들을 끌고 가지 못하는가? 넘어진 여자애의 배를 밟아 창자를 터뜨리지 못하는가? 박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는 젊은 소장이 장갑차를 이끌고 서울에 입성하는 것을, 곧이어 중앙정보부장을 겸직하는 것을 당신은 신문을 통해 지켜보았다. 조용히 소름이 끼쳤다.
전구 속 필라멘트처럼 가느다란 신경의 각성을 따라 당신은 눈을 뜬다. 아직 졸음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불빛이 침침한 복도와 어두운 응급실 유리문 밖을 둘러본다. 썰물처럼 잠이 밀려나가며 고통의 윤곽이 뚜렷해지는 순간, 어떤 악몽보다 차가운 순간이 다시 왔다. 당신이 겪은 모든 게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1979년 가을 부마항쟁을 진압할 때 청와대 경호실장 차지철은 박정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캄보디아에서는 이백만 명도 더 죽였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위가 확대되었을 당시, 군은 거리에서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화염방사기를 발사했다. 인도적 이유로 국제법상 금지되어 있던 납탄을 병사들에게 지급했다. 박정희의 양아들이라고 불릴 만큼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전두환은, 만에 하나 도청이 함락되지 않을 경우 전투기를 보내 도시를 폭격하는 수순을 검토하고 있었다. 집단발포 직전인 5월 21일 오전, 군용 헬기를 타고 와 그 도시의 땅을 밟는 그의 영상을 보았다. 젊은 장군의 태연한 얼굴, 성큼성큼 헬기를 등지고 걸어와, 마중 나온 장교와 힘차게 악수를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