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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윤 Nov 28. 2021

1. 아이를 갖다-1

임신테스트기

“이상해. 생리할 때가 됐는데 생리를 안 해.”


  개천절 연휴가 시작된 10월의 시작일. 아내는 나에게 푸념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생리 주기상 생리를 시작해야 하는데 생리일이 차츰 지나자 의문을 느낀 듯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리나케 수납장으로 달려가 아내에게 포장된 물건을 내밀었다. 아내는 잠시 당황하며 물건을 살피더니 나에게 다시 내밀며 말했다.

 

“이번에도 안 될 것 같은데? 이거 해봤자 돈만 날릴 거야.”


  경제 관념이 투철한 아내는 물건의 정체, 임신테스트기 하나의 가격이 얼만 지 한참 동안 나에게 설교하였으나 나는 한 귀로 흘리며 은근히 권유했다.


“안 되면 내 돈으로 다시 사 올게. 일단 한 번 해보는 게 어때? 혹시 모르잖아?”

“오빠 지금 돈 없잖아. 그리고 전에도 그렇게 안 됐는데. 이번에도 한 줄만 나온다니까.”


  아내는 지난달 허무하게 쓰레기통에 버려진 임신테스트기들이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어느덧 결혼한 지 반년이 지나 어엿한 신혼부부가 된 우리는 지난달 처음으로 아이를 갖기 위해 시도했다. 그러나 신혼부부의 미숙함(?)으로 인해 배란일 계산에 실패하고 말았고 혹시나 했던 기대감은 한 줄짜리 단호박 테스트기들과 함께 사라진 지 오래였다. 신혼생활을 더 즐기고 싶다는 아내를 겨우겨우 설득하여 나선 첫 여정은 그렇게 출항과 함께 침몰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는 다를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를 갖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의 생리일을 체크해 생리 주기를 확인하고 생리일 14일 전후가 배란 및 임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학습한 후였다. 맞벌이 부부였기 때문에 피곤함에 신혼부부임에도 많은 관계를 가지진 않았지만 딱 14일째 되는 추석 전날, 그날만큼은 놓치지 않았다. 하필 청송으로 캠핑을 즐기러 간 부모님과 멀리 울산에 있는 처갓집으로 인해 400km에 달하는 힘든 여정을 보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이 온 것이다.


“그래도 한 번 해봐. 그리고 아직 개수가 많아서 괜찮아.”

“어유. 오빠가 또 실망할까봐 그렇지. 알았어. 일단 해볼게.”


  아내는 한숨을 내쉬더니 가성비가 높기로 유명한 원x 테스트기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기대감을 가지고 소파에 몸을 눕히던 나는 문득 저 테스트기가 얼리 테스트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필 일반 테스트기를 사놓다니 난 왜 이렇게 어리석은 거지? 그렇게 제품도 열심히 찾아보고 연구를 했건만. 가성비를 따지던 지난달의 내가 후회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조금 더 빨리 반응이 나타나 오늘 두 줄을 볼 수 있기를 나는 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이거 봐봐.”     


  어느덧 일을 치르고 다가온 아내는 나에게 테스트기를 슥 내밀었다. 오, 조상님이시여. 제발... 나는 이번에야말로 두 줄을 볼 수 있기를 바라며 벌초 때 찾아뵌 조상님들께 빌었다. 그리고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또 다시 보이는 한 줄에 나는 기분이 급격하게 저하되며 시무룩해졌다. 혹시나해서 기다리고 다시 살펴봐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이번에도 실패였다.     


“너무 실망하지 마. 다음에는 되겠지.”

“그래... 다음에 다시 시도해보자.”     


  나는 실망감이 깊어 어영부영 대답하곤 소파에서 일어나 이불에 들어가 누웠다.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은 남편들도 아내들처럼 강할 것이다. 나 또한 아이를 갖고 싶은 열망이 있었고 이번에는 나름대로 기대도 했건만 기대만큼 실망도 컸다. 이불을 푹 덮어쓰고 마음을 진정하니 아내가 다시 찾아왔다.     


“오빠! 방금 하나 더 다시 해봤는데 이것도 한 줄이더라. 에구, 너무 실망하지 마요.”     


  아내는 나를 달래려 노력하며 애써 웃어 보였다. 아내도 사실 이번에 기대를 했을 건데. 남편으로서 아내를 달래주지는 못할망정 이불이나 덮어쓰고 있다니. 나는 그제야 내가 참 못나 보임을 느끼곤 아내를 푹 안고 토닥여주었다.     


“알았어. 자기도 너무 실망하지 말고. 그런데 돈 아깝다더니 왜 그새 하나 더 했어?”     


  아내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오빠가 너무 실망하는 것 같아서 혹시나 싶어서 하나 더 해봤는데 아니더라구. 괜찮아. 아직 저기 몇 개 남았어.”     


  나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돈 아깝다며 말리던 아내가 시무룩한 남편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한 번 더 시도를 하다니.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서 나는 기분이 사르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돈 이야기를 들었더니 날려버린 두 개의 테스트기가 돈 아깝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에 또 테스트기를 살 생각을 하니 남아 있는 용돈도 좀 걱정되고.     


“그래. 아쉽지만 괜찮아. 밥이나 먹자.”     


  그렇게 그날의 헤프닝은 그렇게 정리되고 있었다. 그러나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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