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라에서의 둘째 날과 셋째 날의 간격은 불과 하루이지만, 텍스트 속 둘째 날과 셋째 날의 간격은 일 년이나 넘겨졌다. 현생에 치여 살면서 아일라에서의 기억을 매체로 남겨둬야겠다는 생각이 점차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 가게 된 것이다. 아일라의 천, 지, 인이 사회의 찌든 때에 좀먹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아일라 순례기는 한동안 내 머리 한 귀퉁이에서만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한 상태가 몇 개월 째 지속되던 어느 날이었다. 아마 그날은 오래간만에 낙향하여 바에서 괜찮은 몰트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고 있을 때였을 것이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DM를 보내었다. 이틀 차 나와 함께 아드벡과 라가불린, 그리고 후술할 보모어를 함께 투어한 그 분이셨다. 우연히 브런치를 둘러보던 중 어떤 여행기를 보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그게 아일라였고, 이야기를 읽다 보니 하필이면 그게 서문교가 작성한 글이라 반가워서 연락을 보냈다는 것이다. 그 순간, 뇌 속에서 1평 남짓한 공간에 간신히 근신하고 있던 아일라 순례기는 그렇게 다시 태동했다.
심박만 간신히 약동하던 이 글이 비로소 자생된 데에는 한 가지 더 큰 사유가 있긴 하지만 이것은 여기에다 적어내기에는 필자의 마음이 그 사유보다 변변찮게 풀어내기에 여의치 않게 되었다. 만약 그 근원적인 사유까지 알아내보고 싶은 분이 진정 계신다면, 필자에게 직접 물어보시기를 추천드린다.
중요한 것은 그래, 다시 써야 한다. 이 이야기를 반드시 마무리 지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설령 내용이 부족하거나 미흡하더라도 이 순례기는 반드시 마침표가 찍혀야만 한다. 이것은 숙제가 아니다. 마감 시한을 정해놓고 무작정 활자만 놀리는 그런 레포트 작성도 아닌 것이다. 그저 묵묵히, 그때 내가 보고 듣고 겪은 일은 마치 종남의 도처럼 서술해 나가면 되는 일인 것이다. 이 순례기의 방향성과 예상 독자는 이미 사라져 버린 지 오래고 어디로 흘러들어 가 어떻게 마무리 지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반년만에 이 순례기는 다시 시작되게 되었다.
일 년의 공백 간 서문교에게는 많은 사건과 경험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개점휴업했는 이 글을 구태여 다시 읽는 분이시라면 서문교가 어떤 인간인지를 어지간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실 테니 구태여 여기다가 기술하지는 않겠다. 여하튼 프롤로그에서 2일 차까지를 관통하고 있는 공허하고 홍대병스러운 문체에서는 되도록 탈피하고자 하는 것이 본 필자의 주된 과제이다. 거기다 기억력도 많이 희미해졌다. 비록 <한국인의 밥상>의 최불암 선생님처럼 아일라를 돌아다니면서 목도한 것은 빠짐없이 기록해 두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자란 것이 있다면 이 인간의 기억력이다.
나의 분신이었던 노트를 기반으로 하는 <아일라를 여행하는 군필술쟁이를 위한 안내서>, 그것도 완결도 안 났지만 시작하는 개정판. 이 글은 SF소설이 될 수도 있고 순례기가 될 수도 있으며, 어쩌면 경전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내가 이 글을 작성하는 주된 이유는 나의 길을 걸어가려는 사람들에게 제공하고자 함이고, 그 생각은 일 년 전이든 지금이든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뭐, 아무튼 그러하다. 못다 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풀어나가보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예비군 편성안내라는 희대의 잡스러운 문자를 받아서 여간 심기가 불편할 것이 아니었지만, 아일라의 날씨는 내 기분을 어떻게 파악하였는지 희뿌연 구름들을 한쪽으로 밀어 두고 화창한 아침을 선보여주었다. 새파란 하늘에 걸맞게 오늘 아침은 가볍게 먹고 출발할 수 있도록 훈제 연어와 스크램블 에그를 부탁하였다.
오늘의 조식
셋째 날의 식탁 구성은 다음과 같다. 토스트와 해기스, 스크램블 에그, 그리고 훈제 연어. 이틀째와 비교하면 뭐 이렇게 단출해졌다고 묻는 분들이 분명 계시겠지만, 솔직히 나도 예상 밖이었다. 최소한 훈제 연어라고 얘기한다면 연어의 볼륨감이 더 크던지, 양파라도 곁들어 나오던가 하다못해 케이준이라도 나올 줄 알았지, 이렇게 깔끔하게 나오리라고는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이틀 차에 말한 바와 같이 영국 요리, 특히 이 아일라의 음식은 겉보기는 그래 보여도 내실은 상당하다. 스크램블 에그의 경우 크림을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맛이 훨씬 진한 느낌이었고 무엇보다 입으로 갖다 대었을 때의 촉감이 매우 촉촉하였다. 거기다가 바삭한 토스트와 함께. 서로 상극인 질감이지만, 오히려 그러하기에 어우러지는 하모니. 조식의 여운을 즐기기에는 최적인 모둠이다.
해기스 역시 그러하다. 왼쪽 끄트머리에 있는 젤리같이 생긴 것이 바로 해기스인데, 특이한 점은 잼과 함께 먹으라고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머스터드나 케첩이라고 착각해서 내왔나 의구심이 들었지만 웬걸, 생각보다 오묘하게 잘 어울린다. 짭짤하고 기름진 해기스에 달달하고 입에 착 달라붙는 잼의 조화가 나쁘지 않은, 아니 정말 좋은 궁합을 선보인다. 서양식 단짠단짠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소개할 수 있을 만하다. 해기스도 어떻게 보면 서양판 순대이지 않은가, 그러면 순대에다가 잼을 찍어먹는 것도 맛이 좋을까? 실패하면 괴식, 성공하면 궁합 아입니까.
하지만 이 식탁에서 중요한 것은 스크램블 에그와 토스트가 아니다. 바로 훈제 연어다. 접시의 1할 정도밖에 차지하지 않는 녀석이지만, 저 식단에서 누구보다도 가장 자신의 존재를 발휘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먹는 훈제연어와는 다소 다르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아마 여러분들께 먹어본 훈제연어는 크고 두텁고 부드러우며, 기름진 훈제 생선회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내 식탁에 올라온 것은 사뭇 다르다. 작고 얇음에도 불구하고 쫀쫀한 탄력이 있어 씹는 식감을 분명히 하였다. 또한 연어치고는 얘도 물고기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어육향이 뒤끝에서 서서히 배여 나왔다.
이 훈제 연어는 보모어 앞바다에서 만든 것일 수도 있고 반대편 포트 아스케이그에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그냥 마트에서 사 온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이 연어의 출처를 모르고 달리 알고 싶지도 않다. 분명한 것은 이 훈제 연어는 내가 여태껏 먹어본 것 중에서 가장 맛있었으며 나는 내 코와 혀를 그냥 믿어보려는 것이다. 사실 맛있으면 된 거지 그 출처가 어디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 가면을 벗고자 떠난 여행이지만 이 놈의 가면은 내 거죽에 너무 오랫동안 기생충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를 않구나. 갑자기 영화 <마스크>에서 짐 캐리가 자신의 얼굴을 부여잡고 마스크를 떼내려고 고군분투하는 것이 떠올려지는 하루의 시작이다.
맑은 날의 아일라
오늘은 보모어에 위치한 보모어 증류소에 가는 만큼 최대한 여유롭고, 게으르게 준비해서 출발하였다. 그렇지, 이렇게 여유와 안락을 즐겨야 여행이지. 돌이켜보면 이번 아일라 순례만큼 팍팍하기 그지없는 강행군도 없었다. 아일라로 돌아가서 다시 이 일정대로 움직이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여행을 한자로 풀어보면 나그네 려[旅]에 행할 행[行]인데, 내가 아일라에서 움직였던 일정은 여행이라기보다는 행군에 가까웠던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아일라로 떠나려는 분들에게 조언을 드리자면, 최소 10일은 잡는 것을 추천드린다. 아니면 차라리 스프링뱅크가 있는 캠벨타운을 가는 것도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보모어 증류소
보모어 증류소는 1776년에 개장한 증류소로, 아일라에서는 물론이고 위스키 업계에서도 오래되기로 손에 꼽을 수 있는 증류소이다. 보모어의 페놀 함량은 25ppm으로 다른 증류소들보다 낮은 편이며 풍부한 꽃향으로 인해 아일라 위스키를 입문하는 데 있어 가장 정석인 위스키로 정평이 나있다. 나 역시 보모어로 피트 위스키 입문을 시작했으며, 여러 가지 다양한 위스키를 접하고 경험했지만 그래도 돌고 돌아도 조강지처는 보모어라고 생각한다. 가장 무난하고 보편적이며, 무엇보다도 잔잔하게 향미를 즐기기 가장 수월한 아일라 위스키이다.
보모어와 애스턴 마틴
보모어 증류소 비지터 센터 앞에는 자동차 한 대에 앞에 주차되어 있는데, 007 시리즈에서 본드카로 항상 나오는 영국의 최고급 자동차 브랜드 애스턴 마틴(Aston Martin)이다.
애스턴 마틴과 보모어는 2019년부터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특정 라인업과 한정판 에디션을 출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블랙 보모어 DB5 1964'다. 보모어 위스키에서도 최고봉이라고 불리는 블랙 보모어의 라벨과 병을 애스턴 마틴의 콘셉트와 맞게 리뉴얼하고 본드카의 이름을 붙여 출시한 것이다.
두 회사 모두 각자 분야에서 확고한 입지를 가지고 있고 브랜드의 가치를 드높이고자 확립한 경영 전략이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실을 다지지 외적인 요소에만 치우쳐진 것 같다. 뭐랄까, 공격적 투자에 치중한 IMF 이전 한국 기업들과 같은 느낌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얘기하도록 하기에, 여기서 마무리짓겠다.
여담으로, 보모어 증류소에서는 저 차를 타고 보모어 증류소의 피트와 보리 생산지를 돌아보고 보모어 애스턴 마틴 시리즈를 맛본 다음 핸드필 위스키를 챙길 수 있는 투어가 존재하는데, 내 기억이 맞다면 700파운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개인적으로 저런 고급 차량보다 코란도나 5톤 메가를 더 애호하는 - 산골짜기에서 항상 그걸 몰았으니깐! - 필자의 입장에서 저 투어는 700ml 핸드필을 받을 수 있다면 점을 제외하고는 아무리 생각해도 돈값을 못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차도 좋아하고 술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만큼 매력적인 투어도 달리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필자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소나타와 벤츠 S클래스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감각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나는 벌써 중고차 딜러와 함께 악수하는 사진을 이미 몇 차례 남겼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벌써 집안을 거덜 냈을 수도 있고.
The history of Bowmore
보모어는 보모어다. 깔끔하되 허전하지 않다. 증류소 내부도 정석적인 느낌이다. 마치 백자와 같은 느낌이다. 특징은 없지만 비지터 센터 어느 곳이든 구석구석이 질리지 않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보모어를 맛보았을 때도 느꼈지만, 비지터 센터를 방문해 보니 내 감상이 좀 더 확고하게 느껴졌다. 보모어에서는 가톨릭과 같은 인상이 있다. 둘은 비슷한 점이 생각보다 많다. 우선 가톨릭이 가장 오래된 기독교 종파이고 보모어는 아일라에서 가장 오래된 증류소이다. 몰트에서 피어오르는, 모나지 않고 부드러우며 편한 느낌은 마치 경건하게 예식을 갖추고 미사를 집전하는 것 같다. 하지만 보모어에서 풍겨오는 자욱한 연기향에서는 신학적인 부분에서 그들의 원칙을 굳건히 고수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가톨릭이나 보모어는 catholic(보편적)이다. 두 집단 모두 대중들을 위해 자신들의 가치의 보편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근원적인 동질감을 느낄 수가 있다.
보모어의 화장실
보모어는 화장실마저 영국스럽다. 무난하면서 고급스럽다. 이틀 차에도 언급했지만, 증류소의 특징을 찾아보려면 그 증류소의 화장실을 확인하면 된다. 불교에서는 화장실을 근심을 푸는 장소라고 하여 해우소(解優所)라고 부른다. 증류소를 구경 온 외지인이든, 증류소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든 모두가 근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모든 사람들이 근심을 해결할 수 있도록 각 증류소의 화장실은 자신들의 특성을 함뿍 담아 그들의 근심을 받아낸다.
보모어 증류소의 입구
보모어 증류소는 이브(evie)라고 하는 증류소 직원이 투어를 진행해갔다. 항상 영상이나 여행기를 통해서만 만나게 되었는데, 직접 만나서 대화할 수 있게 되니 마치 연예인을 실물로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에겐 이 사람이 방탄소년단이고 IVE이다.
이브에게 언제부터 증류소가 779년에 지어진 것으로 역사를 수정했냐고 물으니 그녀는 웃으며 떨어진 지 꽤나 몇 달 지났지만 아직은 않아도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외관이 아니라 원액을 생산하는 것이기 때문에, 증류소 휴식기인 여름에 재단장을 하지 않을까라고 추측하였다.
보모어의 플로어 몰팅
보모어 증류소 투어의 시작은 보리에서 시작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20세기 영국의 사회보장제도를 표현하는 문구다. 위스키도 그러하다. 농장에서 맥아를 받아오면 그것은 증류소에서 이리저리 삽으로 퍼면서 싹이 자라지 않도록 뒤집어준다. 그리고 이런 가공 과정을 거친 몰트, 즉 보리를 당화 - 증류 과정을 통해 원액을 뽑아내는 것이다. 적어도 '전통적인' 증류소는 그러하다.
이렇게 젖은 보리를 바닥에 열을 가해 건조와 발아를 조절하는 공정을 플로어 몰팅(floor malting)이라고 부른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 과정은 상당히 번거로운 편이다.
몰트 분배기
이러한 분배기를 통해 각 층마다 일정하게 몰트를 배분한 다음, 아래 사진과 같이 넉가래와 같은 긁개를 통해 전반적으로 평평하게 만들어준다. 그런 다음, 지면에 맞닿은 몰트들이 열기에 의해 과숙되지 않도록 삽을 가지고 8시간마다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뒤집어 주는 것이다. 여담으로, 최근 하이볼 기주로 인기가 많은 몽키 숄더(monkey shoulder)의 어원도 한평생 플로어 몰팅을 지속해 한쪽 팔이 원숭이 팔처럼 굽어진 증류소의 몰트맨들을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플로어 몰팅 중인 사진. 혹자는 이것을 보고 신안 염전을 갔을 때 대패질을 하던 필자가 연상된다는 평을 남긴 바 있다.
누구나 남들이 하는 것은 쉬워 보인다. 특히 노인네도 하는 것, 그것도 뒤로 잡고 끄는 것이면 솔직히 말해서 어느 누구도 응당 쉬워보인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웬걸, 생각보다 많이 무겁다. 필자의 꼴을 보면 알겠지만, 그냥 쟁기질하는 소꼴이다. 숙련된 직원들은 1시간이면 마치고 나서 맥주 한 잔 하러 간다고 하는데, 나는 맥주는커녕 아침에 시작해서 밤에 끝낼 것 같다. 근력 운동을 원하시는 분들의 경우 이역만리 아일라까지 오셔서 플로어 몰팅을 체험하는 것을 추천드린다.
아무튼 위의 사진들을 보면 알겠지만 플로어 몰팅은 기계들은 사방팔방에서 활약하는 21세기 사회와는 다소 맞지 않는 공정 방식이 아니다. 자연환경에 의존, 인간에 의존, 비용에 의존. 여러모로 발품이 많은 드는 비효율적인 방식이다. 그 때문에 대다수의 증류소에서는 최근 몰트 공장에서 공급받아 원액을 생산하고 있다. 아일라도 매한가지이다. 아일라 내 대다수의 공장은 포트 앨런 몰팅 공장에서 발아된 보리를 받아 원액을 생산 중이다. 그 예외가 바로 계속해서 소개한 보모어와 라프로익이다. 보모어의 경우 40%, 라프로익의 경우 20% 정도의 몰트를 플로어 몰팅 공정을 거쳐 사용하고 있다.
혹자는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단순히 수제라는 이유만으로 맛의 차이가 있냐고. 그리고 그것이 100% 함량된 것도 아닌데 위스키 향미에서의 차이가 존재하냐고. 이브는 이에 대해 플로어 몰팅 과정 중 햇살에 비쳐 일광욕 하고 인간의 손길에 의해 어느 정도 덜 익혀지거나, 혹은 더 익는 맥아들은 공장에서 '제작되는' 맥아들과 분명 다르다고 했다. 또한 우리가 음식에 소금, 후추 간을 조금만 하더라도 음식 전체에서 짠맛과 스파이스함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보모어의 위스키 또한 플로어 몰팅의 위력을 느낄 수가 있다고 했다.
사실 내가 아는 한에서는, 플로어 몰팅의 유무를 통한 명확한 풍미의 차이가 규명된 경우는 없다. 이에 대해서도 많은 갑론을박이 존재한다. 혹자는 향미의 발전을 위한 필수불가결적인 요소라고 하고, 다른 측에서는 단순 수익을 더 창출해내기 위한 마케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플로어 몰팅의 저력을 믿는다.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를 천, 지, 인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와인이 소개되는 에피소드가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작중에서 주인공은 천, 지, 인이라는 것은 와인을 만드는 주된 요소 '떼루아'를 동양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스키도 그러하다. 물론 와인과는 그 공정 자체가 다르지만, 그 삼박자가 함께 어우러져야만 생명의 물을 나오게 되는 것이다.
보모어는 증류소가 개장되었을 때부터 플로어 몰팅을 지속하였고, 앞으로도 아일라에 주민들이 남아있는 한 계속해서 플로어 몰팅을 지속할 것이다. 그들은 남들이 다 그냥 사 와서 쓴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단 1%만이라도 플로어 몰팅을 지속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의 전통이고 신념이니깐. 하루가 멀다 하고 웬만한 것이 변화되는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자세를 곤조라고 보일 수 있지만, 이 정도면 합리적인 곤조가 아닐까? 사상누각식으로 변화하는 세태를 보면 오히려 타협 없이 완고하게 자신들의 방식을 지켜오고 있는 그들이 대단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러울 따름이기도 하다.
보모어 증류소의 가마
플로어 몰팅을 구경한 후 우리는 보모어 증류소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가마를 보러 갔다. 유감스럽게도 그 전날 열처리를 모두 끝냈기에 금요일은 되어야 피트 떼는 것을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묘한 흙내와 매캐한 내음, 그리고 포근하게 감싸는 온기는 여전히 잔존하여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그렇지, 이 느낌이어야지.
피트(peat), 석탄이 되기 전의 퇴적물
이것이 바로 피트라고 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았을 때는 외양간에서 퇴비용으로 쌓아둔 소똥같이 생겨 보이지만 피트라고 한다. 아마 가마에서 사용하고 남은 것들을 모아두어서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피트, 한국말로 이탄이라고 불리는 이 물체는 탄소 함유량 60% 미만의 석탄으로, 이끼 등 식물이 습기가 많은 지역에서 완전히 썩지 못하고 퇴적되어 만들어진다. 한반도에는 황해도의 연백평야가 주요 산지인데, 이북에서는 놀랍게도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당시 인민들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이탄 덩어리로 국수와 빵을 만들어 먹었다.
어떤 곳에서는 기호식품에 쓰이는 양념과 같은 존재가 어떤 곳에서는 하루를 연명하기 위한 존재로 쓰인다. 과연 저 흙덩어리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어 먹으라고 하면 먹을 수 있겠는가? 나도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피트를 직접 보았을 때 드는 생각은 피트 위스키가 아닌, 피트를 먹고사는 이북의 동포들이었다.
화부의 모습
보모어의 직원들은 내가 아일라에서 방문한 증류소 직원들 중 가장 편안하고 유쾌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무엇보다도 화부가 그러하였다.(사실 증류소들 돌면서 화부와 대화를 나눈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슬라브 계통의 인상이 느껴지는 그는 라프로익에서 17년 간 근무하다가 보모어로 이직하였는데, 현재 30년 넘게 이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60대라고 하면 절대로 믿지 못할 정력적인 인물이었다.
보모어의 등뼈와도 같은 그는 일주일에 3톤이나 되는 피트를 태우는 것을 책임진다고 하는데, 환갑이 지났기에 일이 받히지는 않는지 물어보니 일을 하면 할수록 피트에서 뿜어지는 증기가 자신을 감싸고 이 천연 사우나를 통해 자신이 계속해서 회춘하고 있다고 답해주었다. 다만 근무 특성상 가끔 술을 끊는 기간이 있는데, 그때가 일 년 중 가장 괴로울 시기라고 말해주었다. 술을 애호하는 사람으로서 나 역시 어떤 느낌인지를 알기에 이 대목에서 가장 서로를 공감할 수 있었다.
가마의 모습
화부는 좋은 사람들을 만난 김에 흔히 경험하기 어려운 것을 보여주겠다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였다. 다름 아닌 가마 내부다. 그는 잔열이 남아 있는 가마 내부는 운이 좋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며 피트를 때우는 것을 보다는 것보다 이 안에 들어가 직접 피트가 되어보라는 농담을 건네었다.
그 안은 지금껏 내가 마주한 공간 중에서 가장 훈훈하고 포근하며,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그때 당시 가마 속에서 어머니의 자궁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기록해 놓았는데, 돌이켜보면 그것은 여성의 정이 아니라 남성, 즉 아버지의 정이었던 것 같다. 매캐하고 습하며, 항상 조명받지는 못하지만 그만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하며 양지를 도와주는 모습. 보모어의 가마 속에서는 아버지의 따뜻하고도 차가운 심장 속을 직접 들어가 느낄 수가 있었다. 다만, 당시가 아니라 나는 그것을 너무 늦게야 알아버린 것이다.
가마 속에서 피트를 때우는 것을 보지 못한 분들은 낙심하지 마라! 증류소 가마는 연소할 때보다 연소하고 난 이후가 훨씬 더 아름다우니.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우리 인생의 모습이지 않겠는가?
당화조의 모습
당화조 역시 보모어스럽다. 매우 깔끔하며 1960~70년대의 영국이 이랬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만들어주는 풍취를 전달해 준다. 이곳에서 가장 큰 인상을 받은 것은 바로 워시! 다른 증류소들에서도 워시를 맛보긴 했지만 이곳에 대해서만 평을 남겼는 것을 보니 확실히 당시에도 맛있게 먹었는가 보다. 마치 갓 끓여 따끈따끈하게 잘 준비한 밀크티를 한 모금 마시는 기분이었다. 우리를 안내해 주는 이브에게도 나의 감상평을 들려주었는데, 그녀 역시 웃으며 자신도 일하고 있지만 가끔 여행객들에게 워시를 건네줄 때마다 집에서의 가족들과의 아침이 생각난다고 말하였다. 어딜 가든 그 추억의 정서라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들 비슷하게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발효조의 모습
발효조는 총 6개로 각각에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이는 보모어 증류소를 운영한 소유자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깐 훗날 산토리가 파산하거나 제2의 말레이 해전이 발발할 경우 새로운 발효조에 산토리라는 명패가 붙일 것이라는 뜻이다. 후자의 경우는 붙이지 못할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보모어는 그들의 역사를 지켜나간다는 것이다. 과거 본인을 거쳐가던 사람들의 이름을 그 나름대로의 방법대로 기억해 주는 것. 삭막한 현대 사회에서 느낄 수 있는 나름대로의 낭만이다. 도리어 생각해 보면 최근 한국 사회가 더욱 황폐하기 그지없다. 과거에는 유교 문화가 강했기에 이를 탈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일설이 있으나, 한국 사회는 서구 사회보다 더욱 개인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이다. 갈수록 극단화되고 과격하지만 아직까지 사회적으로 자각하는 움직임은 없다. 이런 풍조를 언제쯤 탈선되는지 참으로 암담하기만 하다.
특히 이곳에서 필자는 보모어에 대한 국내 위스키 애호가들의 의견을 얘기하였다. 특히 보모어에 애호하는 일부 한국의 애호가들은 90년대 보모어의 특징 중 하나인 FWP(French Whore Fragrance), 즉 프랑스 창녀들이 뿌리는 싸구려 향수의 캐릭터에 대해 많은 의견을 나누고 있는데 그 점에 대해 증류소 직원으로서의 견해를 이브에게 물어보았다.
그녀 또한 구형 원액과 현행 원액의 차이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 특히 최근 들어 한국인들의 수요가 급증했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결과론적으로 얘기하면 FWP라는 것 역시 구형 원액의 특징이 아니라 한 때 지나갔던 보모어의 특징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그녀는 설명하였다. 또한 몰트의 특성은 재료 등 외적 요인에 의해 변할 수밖에 없으며, 내적 변화로 인해 이루어지긴 힘들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에 대한 예시로 많은 위스키 애호가들이 90년대 당시 모리슨 사에서 산토리로 넘겨질 당시 일본인들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일정 이상 계면활성제를 넣었다고 생각한 것과 달리, 계면활성제는 여전히 당화액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으며 그 변화가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브의 설명을 들으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산지에서도 명확히 답을 내리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모어 증류기의 모습
증류하는 현장으로 돌아오니 다시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원료의 가공을 책임지는 가마의 열기와 이곳을 비교해 보았을 때 전자의 경우에는 가장을 책임지는 부모와 같은 온화함이었다면 이곳은 '내가 이런 사람이야!'하고 온갖 곳을 누비며 활동하는 20대 청년의 정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증류 과정에서 증류 원액에 대한 관리를 감독하는 스틸맨은 이제 막 증류 시설이 가동된 직후라 증류 원액을 맛 보여주지 못해 참으로 유감이라고 말하였다. 이렇게 큰 시설을 혼자서 전부 관리하면 힘들지 않겠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아무도 로봇이 만드는 위스키를 먹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이것이 아일라 최고(最古)의 증류소라는 자신감이 빚어낸 아주 위트 있는 답변이었다.
NO.1 VALUT의 입구
증류소 견학을 마치고 마침내, 어쩌면 내가 이번 아일라 투어에서 가장 기대해 마지않는 곳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NO.1 VALUT, 즉 '1번 숙성고'는 증류소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존재했던 저장고인데, 해수면보다 아래에 있어 위스키의 증발이 다른 곳보다 천천히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블랙 보모어 등 이름난 보모어의 제품들 역시 여기서 잠을 청했다고 한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다들 서늘하고 춥다는 얘기를 하는데, 오히려 2월에 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오히려 바깥보다 안정적인 느낌을 받았다. 마치 젓갈을 보관하는 광천 토굴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덕분에 괜스레 친숙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모든 사물을 한국화 시키는 것은 필자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NO.1 VALUT의 내부
내부에는 오래된 연식답게 오크통이 많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나같이 찍혀있는 문장들은 실로 놀라웠다. 퀸 엘리자베스의 문장, 애스턴 마틴의 문장, 산토리 회장의 미즈나라 캐스크까지... 겉보기에는 통도 작으니 긴빠이라도 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보았다. 이브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는 정말 오래된 개인 주문 오크통이 하나 존재하는데, 본인이 생각했을 때는 캐스크 주인의 가족들이 그 존재를 까먹거나 모르지 않을까 짐작한다고 얘기하였다. 아쉽게도 그 병입년도는 그녀가 끝내 기억을 하지 못해 알 수 없게 되었다. 한 50년 정도 지나면 소유권이 없지 않은가? 어쩌면 회사는 그때를 노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행복한 테이스팅 타임
마침내 VALUT SECERT TOUR의 최종장, 시음 시간이다. 보모어에서 이역만리까지 온 손님들에게 대접하고자 고른 캐스크 3종을 꺼내 먹은 다음, 자신의 마음에 가장 크는 캐스크의 원액 100ml를 본인이 들고 갈 수 있는 것이다! 통에서 원액을 추출한 것은 라가불린에서도 했지만, 발린치(캐스크에서 내용물을 소량 뺄 때 사용하는 스포이트 방식의 긴 구리관)를 이용하여 통에서 꺼내어 먹는 것은 보모어에서가 처음이기에 더욱 그 의미가 깊게 느껴졌다. 우리는 버번캐스크 19년 핸드필과 세컨필 샤토 라그랑쥬 와인캐스크 1999년 통입, 그리고 올로로소 셰리캐스크 2001년 통입의 시음 기회를 제공받았는데, 세 제품 모두 오크통 널빤지를 보여줌으로써 그 특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세심함이 나의 보모어에 대한 선호도를 더욱 높여준 이유이기도 하다.
BOWMORE HAND-FILL 2016 55.3% 17 YEAR
보모어의 버번캐스크 핸드필은 그 자체로 탄성이 부르짖는 맛이었다. 처음에는 망고와 같은 열대과일이 팡팡 터지는 듯한 느낌이 들다가 시간이 지나가면서 과일들이 좀 더 세분화되지 시작하였다. 파파야 같은 진득한 느낌이 들기도 하다가 중반부에서는 키위의 청량한 느낌이 실로 농밀하게 밀려들어 왔다. 피트감은 그다지 존재하지 않은데 기저에는 분명 소금기가 있어 본인이 아일라 출신이라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후반부에서는 사과의 진득한 맛이 혀에 감돌다가 이윽고 배의 향이 길게 여운을 남겨주었다.
우와 이게 버번캐스크를 사용한 피트 위스키라니. 통상적으로는 강대강의 조화를 위해 쉐리피트 조합이 더욱 익숙한 편이다. 물론 독립병입 바틀에는 버번피트 조합이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필자에게 있어 버번피트 조합은 강대강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옥토모어라는 괴수의 경험 밖에 없다. 하지만 이게 아일라에서 만들어진 위스키라니! 아무리 여리여리한 보모어라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내가 시음하면서 계속해서 강조하며 적은 키워드는 이것이었다. '상쾌함', 이 한 단어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BOWMORE BORDEAUX WINE CASK 1999 42.2% 25 YEAR
다음은 보모어의 와인캐스크이다. 내가 알기로 보모어의 보르도 와인캐스크의 경우에는 샤토 라그랑쥬에서 전량 받아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샤토 라그랑쥬는 보르도 지역의 그랑 크뤼 3등급에 속해 있는 와이너리로, 1983년 산토리 사가 소유권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 와이너리의 와인은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도 소개가 된 적이 있는데, 맛을 본 적이 있는 지인의 말에 의하면 딸기향이 엄청 피어오르나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무너진다는 평을 내렸다. 사실 나는 일전 바에서 이 와인캐스크에서 숙성된 보모어 21년을 먹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훗날 산토리 보모어가 역사책에 오른다면, 수작이라고 언급될 바틀'이라는 평가를 적었다. 그렇다면 물을 타지 않은 그 원액은 어떨까. 의도치 않게 비교 시음을 할 수 있게 해 준 대구 A31의 정 사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브의 말에 의하면 고숙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종의 '방어막'이 있는데, 그것이 없어 유달리 이 캐스크의 경우에는 증발량이 많고 알코올 도수가 낮다고 한다. 향을 맡아보면 벌써 새콤달콤한데, 엄청 고급스럽게 만들어진 빨간약의 느낌이 느껴진다. 비싼 위스키 전문 모 유튜버가 달모어 50년을 먹고 "졸라 고급진 판콜, 부루펜 같은 맛"이라는 말을 남겼는데, 같은 궤에서 뜻하는 것일까? 참고로 필자는 텐텐 같은 인상이 더 느껴졌다. 알코올은 전혀 스치지 않는다. 맛에서는 포도 껍질의 탄닌감과 함께 조신한 피트 느낌, 부드러운 초콜릿의 느낌이 들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갱지 같은 향이 났는데 특이하게도 잔향에서는 발포형 와인 같은 뉘앙스가 꽤나 길게 풍겨졌다. 전반적으로 생기 있으면서도 조신한 느낌이 드는데, 나는 이에 대해 대학 문화를 어느 정도 섭렵한 1학년 된 귀족가문 규수라는 평가를 남겼다.
BOWMORE OLOROSO SHERRY CASK 2001 52 YEAR 23 YEAR
끝으로 보모어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이다. 지금도 설왕설래 말이 많지만, 보모어와 셰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김성모식 표현으로 한다면 중국집과 오토바이와 같은 관계이다. 블랙보모어, 바이센티너리, 딥앤컴플렉스 등의 바틀들이 그 역사를 반증해 준다. 그렇기에 여전히 보모어의 고숙성 셰리 캐스크는 이름에 걸맞은 가격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보모어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셰리캐스크, 그것도 21세기의 싱글 캐스크는 어떤 맛일까?
처음부터 들어오는 향은 무거운 느낌의 초콜렛이다. 이윽고 고소한 향이 나는 견과류가 꾹꾹 비집고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전반적인 향은 고풍스러우면서도 따뜻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맛에서는 정말 화려하다는 표현 밖에 들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쉐리밤이 때려 들어오는데 여태껏 먹어본 보모어 중에서는 가장 진하다는 인상이 들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뭔가 고급스러운 발사믹 식초가 연상되는데 아무래도 올로로소 쉐리캐스크의 영향이지 않나 싶다. 피니쉬는 청량감이 느껴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특히 잔향에 짠 느낌이 황홀할 정도였다. 내가 이 한 잔의 드램에서 느낀 것은 중후한 느낌의 나인이었다. 사극 드라마를 보면 대비전에서 주상과 왕후의 곁을 보필하는 깐깐하고 품위 있는 궁녀. 왜 보모어에서 같은 동네에 있는 집사가 떠오르지 않고 이역만리 조선 땅의 여인이 떠오르는 걸까? 술에 대한 인상은 알다가도 모르는 일이다.
핸드필 과정
오랜 고민 끝에, 필자는 올로로소 쉐리 캐스크를 택했다. 맛도 맛이고 보모어가 쉐리 위스키의 명가라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 위스키가 통입된 년도는 필자가 태어난 년도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 역시 지인을 통해 2001년 통입한 라가불린 DE를 한 병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솔직히 말이지, 경우가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보모어에 대해 '보모어 위스키는 사람의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느껴진다'는 유명한 표현을 한 바가 있다. 하지만 감히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무라카미가 - 그 역시 생빈을 직접 뽑아 먹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지만 - 보모어에서 자신과 동갑인 위스키를 만났을 때의 찌릿함을 느껴봤냐고. 이역만리에서 똑같은 연도에 태어나 세월을 거쳐 마침내 자신의 손으로 밝은 빛을 향해 만남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결코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보모어에서 뜨거운 동지애를 느꼈다. 싸지방이라는 매체를 통해 계속해서 접하고 갈망하다 마침내 그 미궁에서 조우했을 때의 순간, 약동하는 혈맥의 꿈틀거림을 느낄 수가 있다. 상봉의 만남을 가진 순례자들은 분명히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이걸 언제 꺼내 먹을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결혼식? 자식 출산일? 회갑? 어쩌면 임종 직전일 지도 모른다. 허나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절대로 리셀하지 않고 죽기 전에는 까서 마실 것이라는 것을. 사실 술을 컬렉팅만 하고 다시 경매에 붙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정말 혼이 나야 할 일이다. 인간이 먹으려고 만든 존재를 굳이 조명이 비치는 유리관에다가 전시를 해서 보관하고 싶은가? 그렇게 박제를 해서 언제 먹으려고 하는가, 지구 멸망하기 한 시간 전쯤에? 하긴 아노미 상태에서 한 잔하면 네로 같은 황제 놀음을 즐길 수 있기는 할 것 같다. 근데 그때는 일억짜리 보모어 부케나 구멍가게에서 산 참이슬 한 병이나 비슷한 맛이지 않을까나.
보모어 핸드필 BY 서문교
핸드필을 담으며 이브와 매우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현재 산토리 휘하의 보모어에 대한 직원으로서의 의견을 물어보았는데, 그녀는 산토리 사가 보모어에게 권한을 주지 않으면서 관심은 그다지 쏟지 않으냐고 바로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특히 자신은 어려서 잘 모르지만, 모리슨 체제에서 범지구적인 산토리로 바뀐 것에 대해서는 보모어 지역에 사는 주민들 역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지금도 익숙해졌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최근 위스키 애호가들 사이에서 보모어의 품질이 갈수록 떨어져 가고 있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서 자신은 가이드 직원이기에 잘 알지는 못하지만, 분명히 핵심 직원들 역시 그 문제에 대해서 인지를 한다고 설명하였다. 특히 쉐리 캐스크의 공급 문제에 대해서 보모어는 와인 캐스크를 가지고 타개해 나갈 것이며, 이를 위해 산토리와 계속해서 강구하고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보모어 증류소 투어 뒤풀이
보모어에서는 증류소를 다 돌고 나면 타지에서 온 이방인이 열심히 돌아다녔다는 보상으로 이렇게 맛돌이인 술들을 내어준다. 한국에서는 한 잔이 기본 몇 십만 원씩 하는 놈들이 이렇게나 숨풍숨풍 진열되어 있다. 솔직히 한국에서 먹었더라면 향과 맛이 어떤지에 대해서 진짜 몇 시간씩이나 죽치고 앉아 빙빙 글라스를 돌려 댔겠지만, 놀랍게도 내 노트에는 오직 23년 숙성한 포트 캐스크만이 민트 느낌의 초록색의 인상이 존재한다고만 쓰여 있을 뿐이다. 이걸 본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서문교 점마 완전히 맛 갔다. 꽐라 되어 가지고 저 비싼 술들을 그냥 질탕 마시기만 했다고.
다시 글을 적기 위해 노트와 사진을 대조하며 상고했을 때, 솔직히 나도 서문교 점마 미쳤냐는 생각을 했었다. 저런 술들을 그냥 퍼먹기만 했다고? 하지만 글을 적으면 그때 당시의 기억과 감정을 천천히 톺아보니, 그게 실로 당연한 일이었다. 술의 제1법칙은 바로 즐기라고 하는 데에 있다. 향이나 맛이라는 요소는 부가적인, 다시 말하자면 쓸데없는 존재일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자본주의의 압제로 인해 그 좋은 술의 제1법칙을 무시하고 단순히 교조적으로만 접근했는지 모른다. 이렇게 맛 좋고 비싼 술들을 언제 이처럼 헤실헤실 웃으며 뇌 뺀 상태로 즐겁고 기쁘게 마실 수 있겠는가? 그래도 이런 술을 이렇게 먹는 건 좀...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겠다. 당신은 정녕 이런 웃음을 가지고 위스키를 즐겨본 적이 있는가?
필자는 이때보다 마음을 비우고 술을 즐겨본 적은 없었다.
위스키에 대한 지식이 엄청나게 높은 모 유튜버가 보모어에 대해서 '망가진 전 애인' 같다는 표현을 하였다. 모리슨 시절의 보모어가 너무 출중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산토리가 보모어를 인수하고 근 25년이 지난 이후 필자는 보모어를 접했다. 필자가 처음 입문한 피트 위스키로, 짠맛과 단향, 고소한 향이 모나지 않게 잡혀있는 그 밸런스로 인해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증류소가 어디냐고 물어본다면 보모어를 꼽을 정도다.
SNS를 보면 과거 전 애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남자 혹은 여자 측의 부정적인 과거를 상대에게 폭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 결혼까지 생각한 자신의 연인을 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사랑으로 품어내는 경우 역시 존재한다. 왜 갑자기 이런 경우가 연상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과거와 계속 결부되는 사랑은 결코 지속될 수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원죄 없이 잉태된 인간은 존재하지 아니한다.
부나하벤으로의 여정
보모어에서의 즐거운 견학과 시음을 마치고, 우리는 다음 증류소인 부나하벤으로 떠났다. 부나하벤(Bunnahabhain)은 게일어로 강의 하류라는 뜻을 지닌 증류소인데, 역설적이게도 이곳은 아일라에서 최상단에서 위치한 증류소인데, 이러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부나하벤 앞으로는 버스 정류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보모어는 아일라의 7시 방향에 있는데 부나하벤은 1시 방향에 있어, 필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택시를 이용하였다.
사실 군대에서 아일라에서의 일정표를 짤 때는 보모어에서 부나하벤까지 자전거를 이용하여 가려고 생각하였다. 1시간 10분 동안 주위 들과 강을 보면서 가면서 누이 좋고 매부 좋지 않냐는 나름대로의 환상적인 계획이었다. 그러나 숙소의 여주인은 필자의 계획을 듣고 나더러 마약했냐는 상큼한 답변을 건네었다. 안 그래도 2주 전에 독일에서 여행 온 젊은 여성이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다가 강풍으로 인해 팔이 아작 났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그런 강풍 따위는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지만, 고향에서 늘상 자식 걱정하는 모친을 생각하며 어쩔 수 없이 계획을 접었다.
아일라에서의 무지개
하늘이 흐리다가 별안간 맑아지더니 이윽고 아름다운 무지개가 창공을 가로질렀다. 택시 기사는 북쪽 지역에서는 드물게 보이는 일인데 이국에서 온 사람들이 보는 것은 행운이며, 당신네들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고 얘기했었다. 1년이 지난 후에야 하는 말이지만, 실제로 나에게는 크나큰 행운이 찾아보게 되었긴 하다.
+) 근처에 아드나호 증류소도 있는데 거기는 왜 가지 않았냐고 질문하시는 분들이 많아 추가적인 설명을 보충하도록 한다. 사실 나 역시 아드나호를 부나하벤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난 다음으로 계획 일정을 잡았었다. 그러나 별안간 첫째 날 루프트한자의 파업과 함께, 아드나호의 증류소 투어 불가 통보가 날아왔다. 증류소 비지터 센터 재개장으로 인해 문을 닫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만든 지 1년도 안 된 증류소가 갑자기 비지터 센터 재가장? 더러워서 안 간다고 했고 그 해 5월 아드나호의 첫 릴리즈가 출시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밉지라도 않지, 치사해서 안 먹고 만다.
부나하벤 증류소 비지터 센터
그렇게 도착한 부나하벤 증류소. 간혹 다니는 바의 주인장의 말에 따르면, 부나하벤이나 글렌킨치를 주문하는 손님의 경우 긴장을 한다고 한다. 그 속에 있는 맛을 캐치하기 쉽지 않기에 '어 임마 뭐고?'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부나하벤에 대해 저녁에 편하게 먹는 위스키라는 언급을 본인의 저서에서 남긴 바 있다. 필자의 경우에는 외강내유의 위스키라고 생각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힘깨나 쓰게 생긴 선장이 턱 하니 선두에 서 있고 칠흑의 검은 병에 붉은 씰이 둘러진, 어지간 사람들은 가라!라고 외치는 강렬한 인상의 위스키. 그러나 속에는 피트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짠기가 돌며 달달하고 쫀쫀한, 그야말로 단짠단짝의 정석. 마술사들이 사용하는 암막 속의 요술상자가 연상되는 그러한 증류소이다.
가동 공장 입구
보모어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부나하벤에서도 증류소 투어 후 스근하게 시음까지 진행을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부나하벤의 증류소 투어는 타 증류소에 비해 그 배차 간격이 많지 않다. 하긴, 사람들을 불러 모을 생각이었다면 애저녁에 포트 아스케이크를 넘어 자기네 증류소 앞에다가 버스 정류장을 설치해 두었겠지. 나름대로 낭만 있는 곤조인 셈이다.
부나하벤 웨어하우스 투어를 진행하는 콜린 씨
부나하벤의 NO.1 저장고라고 할 수 있는 Warehouse 9에서 숙성된 캐스크를 꺼내먹는 활동을 진행하는 사람은 놀랍게도 콜린 씨다. 아일라를 온 첫째 날 밤, 자전거로의 모험을 포기하고 택시 예약을 위해 여러 업체들에 연락을 돌렸었는데 공교롭게도 그중 한 사람이 이 사람이었다. 사실 나는 원래 콜린 씨에게 부나하벤에서 보모어로 돌아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동행하는 파트너가 생기고 계획의 수정을 위해 당일 예약을 취소하였다. 이런 곳에서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나 너님 암'이라고 얘기를 들었을 때 야박하게 굴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하였다. 괜스레 지금 봐도 그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WAREHOUSE N0. 9
웨어하우스 NO.9은 보모어의 그곳보다는 밝은 전등이 설치되어 있지만, 단층이 매우 낮고 김이 서릴 정도로 한기가 돌았다. 그리고 다른 위스키 증류소의 경우 오크통 옆면에 낙인을 찍거나 색을 칠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의 경우 단지 라벨만 붙여놔 다소 밋밋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런 밋밋한 증류소의 외관, 그렇다면 맛은 어떨까?
오늘의 메뉴
이번 투어에서 진행되는 웨어하우스 NO.9 투어의 구성 요소는 다음과 같다. 1) 2007년 모스카텔 와인캐스크 숙성 53.9%, 2) 2014년 올로로소 쉐리 캐스크 60.1%, 3) 2004년 페드로 히메네즈 캐스크 53.3%, 4) 2011년 모인 꼬냑 캐스크 59.8%. 여기서 다른 건 서문교의 글에서 한 번씩 다 본 것 같은데 모인은 무엇이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모인(Moine)은 게일어로 피트를 뜻하는 말인데, 피트 처리를 하지 않는 기존의 부나하벤과는 달리 이 제품은 초창기, 그러니까 19세기 부나하벤의 감성을 살려 제작된 것이다.
아마 높을 확률로 모스카텔 와인캐일 것이다. 아님 말고
우선 모스카텔부터 논해보도록 하자. 모스카텔의 경우 보통 디저트 와인을 만드는 것답게 밝고(brightly!) 하얀 꽃의 인상이 느껴졌다. 맛에서는 부나하벤스럽게 짠기와 캬라멜이 공존하였는데, 끝맛에서 미드스러운 뉘앙스를 받았다. 정말 정석적이게도 맛있는, 범생이 같은 위스키였다. 다음부터는 이상하게도 사진을 확인하지 못했는데, 추워서 못 찍었는지 아니면 술맛이 기막혀서인지, 꽐라가 되서인지는 알 수 없다.
올로로소 캐스크의 경우 1,500 파운드를 호가하는데, 쉐리는 강하지만 짠맛도 동반하여 든든하게 동반한다고 적혀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동반한다는 것을 두 번이나 강조해서 적은 것을 보면 분명 그 조화가 대단해서일 것 이다. 또한 플로럴한, 상쾌한 쉐리의 느낌이 퍼진다고 했는데 그래서 -후술하겠지만- 쉐리 캐스크를 한 병 사가지 않았나 싶다.
이상하게도 페드로 히메네즈 캐스크는 전혀 서술되어 있지 않다. 어지간히도 쓸데없는 것까지 써놓은 이 노트에서 가장 중요한 술맛이 작성되어 있지 않은 것은 아직까지도 가장 큰 미스테리로 남겨져 있다. 어지간히 맛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맛있어서 그랬던 것일까? 이 술에 대한 정보는-최소한 나의 식견으로 본 상황에서는-로스트 미디어로 남게 되었다.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니라
끝으로 모인 꼬냑 캐스크에 대한 평가다. 아무리 서문교가 글씨를 개떡같이 쓴다고 하더라도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그래도 적은 글씨를 한 10초 정도 보고 있으면 뭐라고 적었는지 해독할 수 있는데 이건 도저히 못 하겠다. 영화 <황산벌>의 암호 해독가의 심정이다. 죽어도 못 하겠심더. 이래서 승정원일기가 완역되는데 몇 십 년이나 걸리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도 악필이라서 웬만한 글씨를 알아보겠다는 분이 계신다면 꼭 연락을 주시길 바란다.
후반부에 들어 정신 차린 나는 콜린에게 조금 더 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줄 수 없다고 했다. 어쩐지 눈빛이 싸하다고 했더니 이럴 줄 알았다. 이래서 세계사에서 나오는 사건의 절반은 영국에서 발생한다고 하는 거지, 에잉. 그나마 내 잔에는 모스카텔 와인캐스크가 꽤나 남아있어 그것을 바이알에 옮겨 담았다. 마침내 사촌동생이 2007년이라 성인된 기념으로 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년 봄 유혹을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결국 그걸 먹고야 말았다. 재우야 미안하다, 더 좋을 걸로 사줄게.
부나하벤의 비지터 센터
비지터 센터로 돌아온 나는 웨어하우스의 기억을 더듬어 쉐리 캐스크 핸드필, 그중 아몬티야도 캐스크 제품을 구매했다. 얼마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웨어하우스 투어 덕분에 조금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이 바틀은 아일라에서 가져온 전리품 중 최초로 완병한 것인데, 조만간 이 제품도 필자의 아카이브에 게재하도록 하겠다.
BUNNAHABHAIN 1999 AMONTILLADO CASK
부나하벤 증류소 앞의 전경
부나하벤 증류소에서의 활동을 마치고 나오니 세상은 온통 파랗게 물들어 있다. 바다와 하늘이 합심하여 산을 푸른색으로 희롱한 것이다. 산도 끝끝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하얀색 홍조를 띤다. 소설 <피를 마시는 새>에서는 술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물에게 한 도깨비가 이렇게 답변한다. "차가운 불입니다. 거기에 달을 담아 마시지요." 내 눈앞에 저 전경이 펼쳐지는 그 순간, 나는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다만 도깨비의 비범한 한 문장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어쩌면 앞으로 내게 부나하벤의 맛은 차가운 불에 달을 블렌딩한 맛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번외.
숙소로 돌아와 짐을 풀고 증류소 투어를 진행한 분과 외국인 남녀와 함께 즐거운 저녁 식사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둘은 부부로 남자는 스코틀랜드 출신 영국인, 여자는 홍콩 출신 영국인이었는데 그들 덕분에 식사 후 정말 귀중한 바틀들을 맛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 역시 보답으로 그들에게 한국의 전통주의 우수성과 다양성에 대해 홍보하였으며, 특히 외국인들이 봤을 때 가장 신기해할 만한 술인 이화주를 추천해 주었다. 하단에 있는 위스키들을 판매하는 곳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좀 더 길게 후술하도록 하겠다.
얻어 먹은 것들. 실제로는 몇 개 더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기 있는 술들 중 아직까지 내 기억에 남는 것은 브룩라디 발린치 1992 칼바도스 캐스크와 롱로우 2010년 루비 포트 캐스크 두 가지밖에 없는데, 전자의 경우 역대급 상쾌한 사과와 사이다의 향이 느껴졌고 후자의 경우 역대급 어렸을 때 먹던 빨간 시럽의 감기약의 맛이 진하게 느껴졌다. 왜 내가 아직까지 그 두 가지의 바틀만 기억하는지는 여러분들도 대충 짐작 갔으리라 생각한다.
양고기 카레와 기네스
저녁 식사는 포트 앨런 쪽에 위치한 <SEA SALT>에서 진행하였다. 아일라를 순례하는 사람들은 지나가다 한 번쯤은 봤을 유명한 식당인데, 실제로 맛도 제법 괜찮은 편이다. 영국에 왔으면 영국이 자랑하는 음식(?) 커리는 한 번 정도 먹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뿐만 아니라 인도 출신-확실치는 않다-웨이터가 상당히 위트 있게 음식을 추천하고 서빙해 주었다. 음식은 아니지만, 접객만큼은 그가 아일라에서 제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두 영국인 부부와 새벽 3~4시까지 있으며 위스키, 지리, 외교, 시사 등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들과 대화하면서 왜 한 번쯤은 외국, 특히 서방세계로 나가봐야 될지 알 것 같다고 느꼈다. 특히 홍콩계 영국인인 아내의 경우 초반에는 말이 없다가 점차 분위기가 풀어지면서 나와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특히 그녀는 한국인들의 소통 능력을 향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녀는 홍콩에서 태어났지만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호주에서 성장했으며,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현재 재무 관련 직종에 종사한다고 하였다. 특히 자신이 성장하던 9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여전히 백호주의 정세가 강해 항상 위축 들어 생활했는데, 왜 동양의 문화, 특히 한국의 소프트 문화가 강해진 최근에도 한국인들은 90년대의 본인처럼 활동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그녀는 주장한다. 그녀는 한국인, 더 나아가 동양인들이 좀 더 당당하고 서양 사람들과 같이 좀 더 정력적으로 교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나 역시 아일라를 활보하며 꽤나 소극적으로 행동했던 것 같다. 처음으로 구라파를 가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괜스레 어글리 코리안 소리 안 듣게 행동하자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물론 나 역시 그녀의 말에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그녀의 얘기는 꽤나 나에게 강심제로 작용되었다.
추가적으로 스콧 베일리스라고 하는 그녀의 남편은 음악가인데, 뮤즈나 U2 등 유명 밴드와도 협연한 경력이 있다고 한다. 그는 현재 Ibibio Sound Machine이라는 밴드의 세션(?)을 맡고 있는데, 아프리카 민속 음악과 현대 음악이 가미된 다소 독특하고 컬트적인 음악이 특징이다. 필자는 Protection From Evil이라는 곡이 가장 인상 깊은데, 신선한 느낌의 음악을 원하는 분들에게 꼭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