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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람 Feb 19. 2022

V. 예수의 영원성에 대한 찬미가

Louange à l'Éternité de Jésus

끝없이 펼쳐진 첼로 선율은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과 경배의 노래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이 말씀은 하나님이며 하나님이 곧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대는 결코 쇠하지 않는다.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


작곡가 메시앙은 독실한 크리스천 집안에서 태어났다. 포로수용소에서 성경을 읽던 중 요한계시록에 영감을 받아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를 작곡한 것도 이 영향이 크다. 1번부터 4번까지 시간의 종말에 대한 슬픔과 절망을 말하던 메시앙은 드디어 5번 '예수의 영원성에 대한 찬미가'에서 종말의 운명을 뛰어넘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예수의 대변자, 첼로

부드럽고 조용한 음성으로 시작한다. 멀리서 다가오는 따뜻한 예수의 목소리다. 이내 점점 고조되는 첼로 선율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아픈 사랑처럼 심장을 파고든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호흡을 몰아쉬며 '다 이루었다'는 예수의 마지막 말씀 같은 엔딩으로 끝난다.


영원을 의미하는 피아노

16분 음표 화성으로만 느리게 반복되는 피아노는 영원을 의미한다. 실제로 메시앙은 악보 머리에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것 같은 느린 템포로, 황홀하게(extatique)'라는 노트를 남겼다. 이 곡을 연주한 피아니스트로서 느낀 것은 각 화성의 공명이 하나의 원의 형태를 이룬다는 것이었다. 원은 시작과 끝 점이 같다. 끝은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며 그것은 또 다른 마지막을 향한다.   


영원은 죽음에서부터 비로소 시작한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함으로 천국에서의 영생을 인류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러므로 '시간의 종말'은 또 다른 세상의 시작이라는 것, 그리고 그 영원을 이룬 예수대한 사랑과 경배를 이 곡에 담았다.


올리비에 메시앙 '예수의 영원성에 대한 찬미가' 악보

첼리스트 임재성과 작업한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는 이 곡을 녹음하는 동안 순결한 번제물이 된 느낌이었다고 했다. 실제로 우리는 마지막 음을 연주하고 잠시 악기에서 손을 내려놓지 못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어떤 영적인 힘에 붙들려 연주한 느낌이었다. 잠시 다른 차원의 세상에 머물다 온 것 같은 황홀감마저 느껴졌다.  


이 곡은 느린 음악의 특성상 현악기 연주자들에게 활 컨트롤에 있어 굉장히 까다롭고 어려운 작품이다. 이런 고난도의 음악을 녹음날 단 두 번의 테이크로 끝낸 첼리스트 임재성의 몰입은 정말 놀라웠다.


첼리스트 임재성은 바흐 첼로 무반주 모음곡 전곡을 암보로 연주할 정도로 열정적이고 음악에 진심인 연주자다. 또한 코로나 19로 설 무대가 없어진 후배 첼리스트들을 위해 꾸준히 프로젝트를 만드는 멋진 동료기도 하다.


이 감동적인 결과물은 진정성 있는 음악을 추구하는 첼리스트 임재성의 순수함과 프로젝트를 대하는 성숙한 마인드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뮤직비디오 감독은 영상보다 음악이 더 앞서길 원했다.

음악 자체가 주는 감동이 큰 작품인 건 맞다. 하지만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상징하는 팽개쳐진 샹들리에와 모래시계, 말씀의 대변자인 첼리스트를 관통하는 예수의 빛 등 영상팀의 아이디어로 이 음악이 더 반짝이게 된 것은 사실이다.


영상에서도 느껴지는 것처럼 이 신에는 왠지 모를 따뜻한 온도와 분위기가 있다. 새벽 5시 모두가 살짝 지친 가운데 한숨 푹 자고 일어난 첼리스트 임재성 특유의 밝은 에너지 덕분이지 않았을까 싶다.


Special Point  

영상팀은 이 신을 위해 모래 1톤을 깔았다. 모래는 이 뮤비 전체에서 시간을 의미하는 또 다른 중요한 장치다. 3번 '새들의 심연'에서 바로 서있던 모래시계는 종말의 운명 앞에 힘없이 무너지고 바닥에 쏟아졌다. 예수의 영원성을 마주한 모래는 더 이상 시계 안에 갇혀있지 않다.


https://youtu.be/7 dmUDr7 e23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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