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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람 Jan 15. 2022

힘들게 해돋이는 왜 보러 가?

해는 생각보다 빨리 뜬다

새해가 되면 해돋이를 보러 가는 사람들을 한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매일 뜨는 해를, 그것도 1월 1일 금쪽같은 휴일에 밤잠 설쳐가며 올라가는 게 왠지 유난스럽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이 생각은 2015년 히말라야 등반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 매일 새벽 동트기 전 랜턴을 켜고 어두운 길을 걷다 빼꼼히 올라오는 해를 보고 있으면 그렇게 감격적일 수가 없었다. 그때 알았다. 매일 뜨는 해라고 다 같은 해가 아니라는 것을...


2022년 해맞이는 사패산이었다. 코로나로 국립공원 입장 제한이 있어 일출 산행이 가능한 유일한 선택이었다. 집합 시각 5시가 되니 '등산 양말' 멤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짙은 어둠 속에서 랜턴을 들고 하나둘씩 나타나는 모습이 흡사 비밀 결사대 같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해돋이 등산객이 몰릴 것을 대비해 우리가 출발한 뒤 6시부터 뒤늦게 입장을 제한했다고 한다. 덕분에 우리는 사패산을 전세 낸 듯 두세 명씩 그룹 지어 안전하게 오를 수 있었다.


이 날의 일출 예정 시각은 7시 30분. 로프를 타고 마지막 바위를 기어오르니 어느새 정상이다. 도착하자마자 일출 명당자리를 확보하고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를 나누며 해를 기다린다. 예정 시각이 지났는데 하늘만 붉게 물들고 해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날씨가 흐려서 그런가...' 걱정하던 그때, 손톱만 한 해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일출 산행 중 가장 전율 돋는 순간이다.        


해는 생각보다 빨리 뜬다. 머리가 보이기만 하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당황스러울 만큼 빨리 뜨는 해를 보고 있으면 음악도 삶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산을 오르는 연습의 시간은 언제나 고통스럽고 길다. 정상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할지 모르는 두려움에 시간도 더디게 간다. 그러나 마지막 고비를 지나 임계점을 넘는 순간, 해는 아주 빠르게 나를 비춘다. 잠시 발현되고 사라지는 감동일지라도 그 감격을 잊지 못해 다시 오르는 무대처럼...


이번 휴가의 대미를 장식하겠다며 오늘도 일출 산행을 감행했다. 3대 암산 중 하나인 월출산이다. 새벽 4시부터 호기롭게 올라갔는데 컨디션 난조로 먼저 하산했다. 멤버들에게 걱정을 끼쳐 매우 미안했지만 내려오자마자 바로 코피를 쏟는 걸 보니 욕심부려 올라갔으면 더 큰 폐를 끼칠 뻔했다. 첫 기차로 서울에 올라와 병원에 가니 과로로 인한 자율신경계 조율 이상이란다. 몸무게를 재보니 지난달보다 4kg이 줄어있다. 바보같이 무리하면 안 되는 컨디션인 줄도 모르고 나선 것이다.


링거를 꽂고 누워있는데 히말라야로 가기 전 네팔 카트만두에서 잠시 뵈었던 엄홍길 대장님이 해주신 말씀이 생각났다.


'산은 정복하는 게 아니야, 달래며 가는 거야...'


산은 때로 냉혹하다. 준비되지 않은 이에게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산은 좋은 스승이다. 산도 인생도 혈기로 오르는 것이 아님을 배우고 어떤 위험한 상황에도 같이 걷고 있는 동료가 있음을 가르쳐준다.


산이 허락하지 않는 날은 억지로 오르는 것이 아니며 허락된 날은 끈기로 끝까지 함께 올라가는 것, 산에 오르며 배운 가장 큰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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