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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람 Jan 17. 2022

늑대의 달

2022년 첫 보름달

부모님이 연애하던 시절 두 분이 주고받은 편지를 훔쳐본 적이 있다. 아마 초등학교 3학년 때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쨌든 몰래 숨어서 보는 편지였으니 모든 내용이 다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편지의 첫 줄은 항상 이렇게 시작했다.


'사랑하는 나의 보름달에게'   


알고 보니 보름달은 아빠가 부르던 엄마의 애칭이었다. 편지를 쓴 시기는 아마 아빠가 군대에 계셨을 때인 것 같다. 아빠는 당시 기무사로 군 복무를 하셔서 사복을 입고 매일 밤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편지까지 쓸 정도면 정말 열렬한 사랑을 하셨던 것 같다.


달을 보는 습관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마치 연애편지를 기다리듯 밤마다 달이 차오르길 기다리다 보름달이 뜨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빠의 편지를 떠올리며 온갖 소설 속 로맨틱한 장면을 상상하다 밤을 새우곤 했다.


지금도 그렇다. 휘영청 뜬 보름달을 보면 당장 누구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은 설렘에 휩싸인다. 습관이 무섭다고 했던가. 아무리 피곤해도 알지 못할 울렁임에 잠이 안 와 하늘을 보면 꼭 보름달이 떠있을 정도다.


그리고 오늘, 2022년 첫 보름달이 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새해의 첫 보름달을 '늑대의 달'이라고 부른다. 첫 번째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꼭 늑대들이 울기 때문인데 이유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늑대들만의 특별한 의식 중 하나라고 한다. 이런 설화마저 왠지 로맨틱하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나는 어쩔 수 없는 보름달 바라기로 평생을 살아야 하나 보다.  


큰맘 먹고 가진 휴가의 마지막 날, 일찍 자고 새로운 일상을 맞이하려 했건만 어김없이 찾아온 보름달에 또 주책없이 설렌다. 괜히 와인 셀러를 여닫으며 쳇 베이커와 빌 에반스의 음반을 뒤적여본다.


홀릴듯한 달의 향기에 오늘 밤은 그냥 모르는 척 취해보기로 한다.


그래도 첫 보름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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