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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모모 Dec 07. 2023

엄마의 생애 첫 병원 생활

구십 평생 입원은 처음이에요~

"조** 할머니 자녀분이시죠?"


모처럼 지인과의 만남 중에 걸려 온 전화였다. 엄마가 방문하는 동네 내과 원장선생님이 직접 전화를 하신 거였다.  엄마가 숨이 차다고 오셨는데 심전도 검사를 해보니 부정맥이 의심이 되니 내일이 금요일이라 주말 넘기지 않게 큰 병원에 모시고 가서 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다고 직접 전화를 주신 것이다.  아주 잠깐 내 심장이 벌렁 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인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급히 신촌세브란스에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설명했지만 냉정하리만큼 차분한 상담원의 답은 그렇게 빨리 예약되기 쉽지 않다는 거였다. 알고 있지만 연세가 있는 분이시니 잠깐이라도 어찌 시간이 되시는 선생님을 알아봐 달라 했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도 이 상황에선 읍소를 하게 된다. 잠시만 기다려 보라고 하더니 다음날 오전 11시 20분으로 진료를 잡아 주었다.  어찌나 감사하던지.. 그런데, 사람 마음이 뒷간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더니 나도 마찬가지였다. 진료가 잡힌 의사 선생님의 프로필을 찾아보니 아무 경력이 보이지 않는다. 그 과의 제일 막내 선생님 같았다. 그래서 자리가 났었나 보다 싶으니 실망스러웠지만 바로 진료가 가능한 것이 어디냐 싶기도 했다.  의 실망은 다음날 선생님을 만나고 안심이 되었다. 막내 선생님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친절하셨다.  그 점이 구십 넘은 엄마를 모시고 간 나에게는 크게 와닿았다.  


몇 가지 검사 후, 입원이 결정되었다. 당장 수술을 하라는 것은 아니고, 입원해서 며칠간 지속적으로 심장의 박동을 검사한 후 수술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한다.


진료받으러  당일, 그렇게 생각지 못한 엄마의 생애 첫 입원생활이 시작되었다. 입고 간 옷을 벗고 차갑고 뻣뻣한 환자복으로 갈아입는 엄마의 표정이 어둡다.  며칠간 필요한 검사를 하고 수술 여부에 따라 다음 주에 퇴원할지 더 길어질지 알게 될 거라고 설명을 했더니 그냥 집에 가자고 하신다.  별 일 아닌데 동내 내과 선생님이 일을 크게 만들었다며 울상이다. 주사 바늘을 꽂고 심장 박동 검사를 위해 가슴에 여러 개의 장치를 붙이는 간호사 선생님에게 "나 그냥 집에 가게 해 줘요. 집에 가서 사골국 끓여 밥 말아먹으면 나을 거예요" 하신다.  엄마의 자체 처방전에 간호사 선생님도 나도 웃는다. 엄마만 울상이다.


보청기를 사용해야 할 만큼 청력이 좋지 않은 엄마에게 상황을 설명해 드리고, 당장 퇴원은 안된다고 설득을 하다 보니 내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러다 더 크게 아파서 쓰러지면 병원에 더 오래 입원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로 겁도 주어 본다.


말도 잘 들리지 않는 구십 세 엄마가 혼자 병실에 계시니 한시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자리를 비운 동안 의료진이 오거나 하면 의사소통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침대 생활을 하지 않는 엄마가 침대에서 내려오다 낙상 사고가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해서이다.


환자와 보호자 한 사람만 병실 출입이 허락되었지만 보호자 교대는 가능한 상황이라 둘째 날은 막내 조카가 할머니 곁을 지켜주었다. 그 덕에 나는 집에 가서 샤워도 하고 다음날 해외 출장 가는 남편의 짐 싸는 것도 도울 수 있었다. 미우나 고우나 밖에 없구나 싶다.


입원 둘째 날이 되니 엄마도 점점 병원 생활에 익숙해지시는 듯하다.  밥을 잘 넘기지 못하셔서 식단을 죽으로 바꿨더니 계속 흰 죽만 나온다. 같은 쌀로 만들었어도 흰 죽은 밥보다  왜 그리 맛이 없는지.. 병원 식당에서 입원 전 맛있게 드시던 사골국물국수를 사다 드렸더니 아주 맛있게 드신다. 맛있게 먹은 한 끼의 식사는 어떤 약보다도 보약이 되는 것 같다.  


입원 셋째 날 옆 침대에 아주머니와 딸이 왔다.  60대인 젊은 아주머니와 30대의 딸은 도란도란 얘기도 잘 나누고 그러다가 종종 울기도 한다. 이미 심각한 심장수술을 했던 아주머니는 다시 마주하게 될지 모를 두 번째 수술이 두렵다 하고 그런  엄마를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이런저런 말로 격려를 한다. 다른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한다는 아주머니 딸은 어린아이처럼 훌쩍거리다가도 병을 대하는 자세만큼은 객관적이었다. 그런 모습이 두려워하는 그녀의 엄마를 더 안심시켜 주는 것 같았다.


유쾌한 울 엄마 성격과 내성적 오지랖퍼인 나는 수더분한 성격의 두 모녀와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엄마와 단 둘이 병실을 사용했던 시간은 끝났지만 다른 누군가가 함께 병실에 있으니 잠깐씩 물건을 사러 간다거나, 식후 걷기도 가능해졌다.  그새 정이 들었는지, 울 엄마가  퇴원하는 날 다인실로 옮긴 다는 두 모녀에게 인사를 하는데 마음이 찡했다. 부디 아주머니가 이번에도 잘 견뎌서 사랑스러운 딸들과 함께 오랫동안 행복하기를 마음으로 기도드렸다.


검사를 위해 여기저기 검사실로 이동할 때 침대채 이동하기도 하고, 휠체어에 옮겨 타서 이동하기도 한다. 그럴 때 도와주시는 직원분들(뭐라 호칭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이 계셔서 나는 그냥 그 뒤만 따라다니면 되어서 다행이었다. 내가 모시고 다녔다면 여러 개의 건물이 지하로 지상으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에서  얼마나 헤매고 다녔을지 생각해 보면, 새삼 그분들께 감사한 마음이다. 병원비를 조금 더 내더라도, 환자와 보호자에게 정말 필요한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그저 마음속으로만 감사하고 있는 나에 비해  엄마는 표현을 잘하신다. "늙은이 때문에 잠도 못 자고 이렇게 돌봐줘서 고마워요", "늙은이 병 고치려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느라 수고가  많아요."  촌스러운 말일지라도 진심이 담긴 엄마의 말은 손자 손녀, 자식 뻘 되는 직원과 의료진에게 힘이 되는 거 같아 보였다.  몇몇 분들은 울 엄마를 유쾌한 할머니라고 불러주었다.


퇴원 당일, 점심 식사 후 퇴원할 줄 알았는데, 진료 내내 친절하신 의사 선생님의 부지런함으로 점심 전 퇴원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 얘기를 전하자 바로 옷부터 갈아입고 대기하는 엄마를 보고 담당 간호사가 물으신다. "할머니, 집에 간다니 그렇게 좋으세요?"    "그럼 좋지.  아주 답답해서 혼났어. 이제 집에 가서 편히 쉴 수 있으니 아주 좋아"  "그동안 늙은이 보살펴 주느라 잠도 못 자고 고생이 많았어. 고마워"라고 하신다. 간호사 선생님들의 교대 근무를 알지 못하신 데다 유니폼도 같으니 엄마가 보기엔 한 명의 간호사 선생님이 엄마를 계속 케어한다고 생각하신 듯하다. 아무튼 엄마 못지않게 나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무척 설렌다.


입원비를 지불하고, 약을 받고 가져온 짐들을 챙겼다. 생각지도 못한 4박 5일의 병원 생활이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구십이 넘은 엄마가 얼마나 더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고,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도 입원 후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짜증내기 시작하는 나를 보면서 긴 병에 효자 없다는데 그 '긴'시간이 나에게는 이틀도 되지 못하는구나  싶었고, 의미 없이 지나가는 하루하루 같아도 그냥 무탈하게 보내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퇴원한 엄마는 다시 입원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약도 잘 챙겨 드시고, 식사도 예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드시려고 노력하고 계신다. 앞으로 완치나 증상이 더 좋아지기는 어렵고 수술 없이 일상을 유지하거나 그러다가도 점점 더 안 좋아지면 수술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아직 전하지 않았다.  약 잘 먹고 식사 잘 챙겨 먹으면 괜찮아 질거라 믿는 엄마의 희망을 꺾고 싶지 않기도 하고, 유쾌하게 4박 5일 병원 생활을 잘 해내신 엄마에게 드리는 의 응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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