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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태 Mar 30. 2022

션 베이커의 <레드 로켓>

사회의 그늘 속 낙오된 자들에 관하여.

미국 사회의 이면, 션 베이커 (Sean Baker)


감독 션 베이커

 베이커는 분명히 유명 감독들과는 조금 다른 행보를 가고 있다. 독립 영화와 상업 영화  사이 어딘가의 영화를 만드는  같은 영화 제작사 A24 느낌이 그와 가장 비슷하다고   있을  같다. 2016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 (Independent Spirit Awards)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휩쓴 <탠저린 (2015)> 이후 명성을 얻기 시작한 그는 줄곧 다른 감독들이 그런 것처럼 풍족한 자본을 가지고 새로운 작품을 찍기보다는 원래 본인이 바라보던 시각을 그대로 담은 영화를 만든다. 그의 필모그래피  가장 유명한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2017)> 제작되었고, 이는 그의 작품 세계를 가장  담아낸 영화가 되었다. 나에게도 <플로리다 프로젝트>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라 하면 <머니볼 (2011)>, <로마 (2019)> 함께 항상 언급되던 작품이다. 지금도 2018 3 CGV 신촌에서  영화를  뒤의 느낌을 잊지 못한다.  베이커가 이번에도 A24 함께 <레드 로켓 (2021)>으로 돌아왔다.


션 베이커는 늘 미국 사회의 소외된 곳을 다룬다. 트랜스젠더, 마약 중독자, 매춘부 등, 그의 영화에는 미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인 비싼 차를 타는 부자,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증권사 직원, 큰 성공을 이룬 사업가 혹은 정치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시선처럼 앞서 언급한 사람들 또한 미국을 구성하는 부류이며, 부정할 수 없는 미국 사회의 한 부분이다.


그는 항상 미국의 예쁘고 꿈과 희망이 가득할 것 같은 '아메리칸드림'의 상징과 같은 배경을 뒤에 둔 채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을 등장시킨다. 미국은 국력, 경제력 등 대부분의 모든 면에서 세계 1위인 국가이지만 마냥 안정되고 완전한 사회는 아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으며, 이는 션 베이커의 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레드 로켓 (Red Rocket)>


<레드 로켓>의 포스터

<레드 로켓>은 이전 작품인 <플로리다 프로젝트>처럼 국내에서 쉽게 관람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다. 그의 차기작이 <레드 로켓>이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몇 년 전부터 시놉시스 등을 보며 션 베이커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왔지만, 나 역시도 언제 개봉했는지도 모르게 소수의 영화관에서만 상영되고 있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예고편, 포스터 등으로 보면 미국 플로리다주의 다채로운 색깔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서울 합정에서 영화의 색감 등을 활용한 굿즈를 파는 팝업 스토어가 열리기도 하는 등 저예산 영화임에도 큰 마케팅 효과를 낳았지만, <레드 로켓>의 경우는 전혀 아니었다. 자극적인 영상과 선정적인 표현이 많아 국내 대규모 상영관에서는 상영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평이 여럿 있었고, 나 역시도 독립 영화를 위주로 운영하는 메가박스 아트나인에서 겨우 볼 수 있었다.


션 베이커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유명 배우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영화에는 정말 어디서 캐스팅해 데려왔는지 모를, 혹은 심지어 정말 촬영 장소 옆에 있던 사람을 스크린에 등장시킨 것 같은 사람들도 여럿 나온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바비 역을 맡은 윌렘 데포 이외에는 얼굴이 알려진 배우가 한 명도 등장하지 않으며, 이번 <레드 로켓> 역시 그렇다. 주인공 마이키 세이버 역을 맡은 사이먼 렉스, 렉시 역을 맡은 브리 엘로드, 스트로베리 역을 맡은 수잔나 손 모두 널리 알려진 배우들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고,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어딘지 모르게 다큐멘터리 같다는 느낌을 받게끔 하는 연기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영화 <레드 로켓>을 보고 전체적인 생각들을 적어보았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낙오자들, 돈 냄새에 꼬인 파리들


마이키의 장모, 마이키, 마이키의 아내

<레드 로켓>은 정말 돈, 약, 섹스로 가득 차 있다. 원초적인 쾌락과, 헛된 인기에 대한 예찬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텍사스 시티의 한 마을을 감싸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정유 공장의 직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대마초를 거래하며 살아가고 허름한 집에 살면서 돈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그저 그렇게 살아간다.


영화 리뷰 플랫폼인 '왓챠 피디아'의 한 유저가 이렇게 썼다. 'To all the donut holes'. 고리 모양의 도넛을 만든 뒤 남은, 가운데 부분의 동그란 반죽. 이들은 떨거지로 취급되며 본래의 도넛과 함께, 다른 모습의 도넛으로 판매되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한다. 마이키의 삶은 그들 중 하나이다. 포르노 스타가 되었고, 포르노 제작사의 포주가 되었다. 이것이 그의 과거다. 그가 계획하는 미래는 마을 도넛 가게의 곧 성인이 될 스트로베리라는 여자 아이를 포르노 배우로 데뷔시켜 자신도 다시 한번 돈을 벌어보는 것이었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계획이며,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는 이해하기 힘든 삶의 방향성이다. 하지만 <레드 로켓>을 보다 보면 더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미래를 계획하는 인물은 마이키와 스트로베리를 제외하면 없다. 언제 갈라 설 지 모르는 아내 렉시와 그의 장모 릴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는다.


돈이 다고, 돈만 본다. 일을 하지는 않지만 돈이 생기길 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사회에서는 배움의 정도도, 명예로운 일을 하는 정도도, 인성이 올바른가의 정도도 모두 의미가 없다. 그저 돈이 많은 사람이 이 사회의 왕이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는 돈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돈은 모든 불평등을 평등하게 만든다.


마이키는 갈 곳이 없어 찾아와 연락도 안 하던 아내의 집에서 마음대로 행동한다. 그러다 싸움이 날 때면, 늘 '나에게 불만을 토로하지 마라, 당신들의 목숨을 좌우할 돈은 내가 쥐고 있다.'라는 반응으로 대한다. 나 역시 웃으며 본 장면이지만, 잔소리를 하는 아내의 말이 듣기 싫었던 마이키는 "이번 8월 집세는 내가 낸다!"라는 말로 모든 소란을 잠재운다. 이에 아내와 장모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신나 하며, 이제 말이 통한다고 좋아한다. "소리 지르더니 이젠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눈이 반짝반짝 거리네!" 마이키는 그렇게 대마초를 판 돈을 쥐고 그 집의 왕이 된다. 이미 도덕적 잣대와 어느 것이 인간다운 것인지는 멀리 떠난 주제다. 돈만 있다면 그 모든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곳인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만큼 사회적 권리가 중요한 이유이다.


모두가 악한 사람들?


대마초를 거래하는 마이키

영화를 보다 보면 '이 마을의 사람들은 모두 악한 사람들이라 이런가?'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사기를 당할까 상대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으며, 반대로 이윤이 날 것 같으면 온 힘을 다해 속인다. 마이키에게 이용만 당한 옆 집 청년 로니가 그렇다. 참전용사 사칭을 하고 다니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로니가 남들에게 준 피해는 매우 적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비교적 선한 마음은 때 묻은 자들에게 쉽게 이용당하고 버려진다. 그가 매우 순진하게 마이키를 대규모의 교통사고 피의자 신분에서 빼내 주고 홀로 감옥에 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반대로 모두 악마와 같은 사람들은 아니다. 마이키의 아내는 그의 남편과 부쩍 잘 붙어 다니는 로니를 찾아가 그를 잘 부탁한다고 진심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장모 릴은 그에게 집안의 경제적 상황에 도움을 줘 고맙다는 말을 전하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 로스앤젤레스로 떠나겠다는 마이키의 돈을 뺏기 위해, 그를 협박하던 준과 그의 오빠도 그를 해하려는 완벽한 악인은 아니다.


이러한 곳에서 태어나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 그들을 보여주려는 션 베이커의 의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날 때부터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려 태어난 자들이 아니라 그곳에 살기에 그렇게 변해가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들을 도와주려 이 마을에 들어오지 않으며, 고립된 이들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악의 굴레를 부추기는 사회


정유 공장의 굴뚝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부부

사회에서 버려지고 잊힌 이들은 어떤 일을 해야 보다 밝은 세상으로 나올 수 있을까? 계급 사회가 아닌 능력을 기반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미국의 현대 사회에서는 이 부분이 분명 간과되고 있다. 이에 장 자크 루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화국 모든 시민들에게 불운이 찾아왔을 때에도 밑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일할 권리와 사회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적어도 최소한의 복지는 반드시 필요하다. 자본주의 사회는 언제든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순간 누구나 사회의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 누가 빛이 보이지 않는 바닥에서 살아가겠다 자처하겠는가. 항상 뒤처지는 사람들은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 미국의 맹목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뒤처진 자들은 쉽게 잊히곤 한다.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능력 없는 자들은 사회의 밖으로 추방되어도 된다고 말한 영국의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처럼 아무 능력이 없는 이들은 '검은돈'을 노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양극화는 더 크게 드러나는데, 이들이 사는 텍사스 시티 앞 멕시코 만의 바다는 유명한 유전 지대이다. 석유는 곧 부유함과 이어진다. 실제 <레드 로켓>의 스트로베리가 일하는 도넛 가게에도 정유 공장의 노동자들이 여럿 방문한다. 또한, 이들이 하루 종일 틀어두는 텔레비전에는 미국의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연설을 하고 있다. 'Make America Great Again (MAGA)'라는 그의 대선 구호를 퀭한 눈으로 보며 성조기에 만 마리화나를 피우는 이들. 마이키는 옷이 없어 헤진 여자 옷을 입고 자전거를 타며 커다란 성조기 밑으로 지나간다. 성조기 또한 강한 국력, 믿을만한 부유한 자본을 보유한 곳이라는 상징을 가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이는 크게 대비됨을 알 수 있다.


'미국을 다시 강하게'. 사회 내의 곪은 곳은 다시금 또 잊힌 채, 중산층과 상류층을 중심으로 한 공약이 발표되고 있었다. 슬럼가의 능력 없는 자들이 치안을 어지럽히고 도시를 지저분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도움의 손길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남은 건 헛된 야망만이


도넛 가게의 아르바이트생 스트로베리

마이키는 다시 일어나 보고자 그만의 원대한 계획을 세우는데, 그건 미성년자 스트로베리를 데리고 LA로 가 다시 포르노 업계의 제왕이 되는 것이었다. 스트로베리를 포르노 스타로 키워내면 그의 삶은 훨씬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건 또 다른 어둠을 낳는 길이다. 또 한 명을 자신과 같은 사회적 낙오자의 길로 인도하고 있었으며, 그 또한 이미 결말을 봤던 그 길로 다시 걸어가고 있었다.


마이키도 실패한 이후 다시 제대로 살아보려 했었다. 하지만 바로 살아보려 해도 따라오는 꼬리표의 꼬리표의 꼬리표. 전 포르노 배우를 채용하기를 거부하는 ‘민간인’들과, 포르노라는 그 쉬운 길을 두고 굳이 돌아갈 필요 있냐는 그의 내면의 목소리. 그는 결국 또 퇴폐의 길로 가고 있었다. 스트로베리는 로스앤젤레스에 가는 게 유일한 꿈이었다. 그녀의 소원대로 그곳에 가게 됐지만, 결국 그녀 또한 마이키와 같은 결말을 맞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국 레드 로켓일 뿐


마이키와 스트로베리의 데이트

'레드 로켓 (Red Rocket)'은 '수컷 개의 성기'를 의미하는 속어이다. 한없이 가벼운 삶을 사는 텍사스 시티의 이들을 뜻할 수도 있다. 또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텍사스주의 휴스턴에는 존슨 우주 센터 (Lyndon B. Johnson Space Center)가 있다. 우주 산업은 막대한 부를 필요로 하며, 로켓을 쏘아 올린다는 것은 저 광활한 우주를 향해 위로, 더 위로 간다는 뜻이다. 하지만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는 이들은 밑으로, 밑으로 내려간다. 앞서 말한 트럼프의 말이 다시 상기된다. 무엇을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것인가? 정유 공장에서 석유가 생산되고, 휴스턴 우주 센터에서 로켓이 날아갈 때, 마이키의 주변에서는 스트로베리라는 또 한 명의 사회적 낙오자가 탄생되었다.


이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원초적인 본능만 채우며 살게 되었을까? 마이키가 스트로베리와 롤러코스터를 타며, 자신의 진짜 신분을 들켰을 때, 그는 당황했다. 모두가 소리를 지르며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을 때 그는 넋이 나갔다. 마이키는 스트로베리를 정말 사랑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포르노 스타로 키우기로 마음먹지만, 그 또한 자신의 지저분함이 싫었던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장 자크 루소가 일찌감치 사회에 던졌던 경고가 떠오른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굴종과 충성을 힘세고 부유한 시민들에게 팔아버려야 할 정도로 가난해서는 안 되며,
어느 누구도 사적인 혜택을 미끼로 다른 시민들의 굴종을 사버릴 정도로 부유해서도 안 된다.

에로스의 종말


마이키가 찾던 건 결국 새로운 포르노 스타의 재목이었을까?
포르노는 에로스의 적수다.

<에로스의 종말 (2012)> 저자 철학자 한병철은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 결여된 행위를 담고 있는 포르노는 사회를 더욱 피폐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랑의 의미를 완전히 바꿔놓는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으로 전시하고 구경거리로 만듦으로써 사회의 포르노화 경향을 강화한다. 자본주의는 성애의 다른 용법을 알지 못한다. 에로스는 포르노로 비속화된다.


한병철은 또한 장 보드리야르의 말을 인용하며 제의적 성격을 상실한 사랑은 결국 포르노에서 완성된다고 주장한다. 그저 한순간의 쾌락을 위한 사랑, 이윤을 얻기 위해 이용된 사랑, 사랑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마이키는 분명 내적인 갈등을 겪었다. 그것이 사랑이었건 아니었건. 영화는 다음과 같이 끝난다.


포르노 배우를 흉내 내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스트로베리. 속옷만 입고 마이키를 유혹하는 춤을 추는 그녀의 몸짓은 남겨진 도넛 홀 (donut holes) 그 자체였다. 또 하나의 의문은 이것이다. 포르노 스타였던 마이키를 알아보는 사람들처럼, 포르노는 상류층부터 저소득층까지 모두 소비해놓고 왜 이들만 사회의 바닥에서 돌아다니는 것일까? 마치 그것이 그들만의 문화인 것처럼 말이다.


어찌 되었건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그랬던 것처럼, <레드 로켓> 속 형형색색의 집들, 그리고 보라색과 분홍색을 가득 담은 텍사스의 해 질 녘 하늘은 그 밑의 사람들과 서글플 정도로 대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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