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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토끼 Jun 20. 2024

우리가 만나고 헤어진 계절, 겨울

그 남자이야기, 다시 처음으로 돌아 왔을 뿐야

“빠르고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대리운전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깬다.

목소리를 최대한 가다듬고 전화를 이어간다.

통화를 마치고 핸드폰을 다시 들여다본다.

벌써 1월이다.


언제 얼마나 일이 많을지 아무도 모른다.

요 몇 년사이에는 대기업에서 치고 들어와 정신이 없었다.

지역 연대가 잘 이루어진 덕분에 큰 손실은 막았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그렇기에 밤낮없이 바쁘게 일을 한다.

그런 나를 이해해준 사람.


배운 것, 가진 것 하나 없었기에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했다.

기사일을 하면서 자금을 모으고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님들을 형님처럼 따르며 사업을 배웠다.

운이 좋았다. 남들보다 비교적 빠르게 분점을 맡아 운영하게 되었다.

몇 평 남짓한 작은 사무실 안에서 대부분의 일을 해내야 했고 그러다 가끔은 직접 발로 뛰어야 했다.

지역 공모사업에도 출전했다. IT기업과 지역대리운전 어플을 개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덕분에 예상보다 빨리 대표가 될 수 있었고 내 직원을 고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순간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


바쁜 일상 속 유일한 낙은 비교적 한가한 일요일 저녁에 콜라 한 잔을 들고 전국민의 절반이 본다는 한 여행 예능을 보는 일. 자그마한 상자 속에서 나오는 다양한 풍경과 출연진들이 게임을 하며 즐겁게 보내는 모습이 묘한 위로가 되었다.


‘세상은 넓고 즐거운 일은 많구나.’


여유가 생기면 영상 속에 나온 아름다운 곳에서 아무 걱정없이 여러 사람과 즐거운 추억을 쌓으며 보자고 다짐했다.




2년 전, 사업이 안정되고 직원이 생기자 여행 동호회에 가입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이 모임에서다.

접견장소인 카페로 향했다.


첫 여행지는 강원도 정선.

한반도 모양의 지형과 강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많이 들떴다.

글램핑도 스카이워크를 걷는 일도 모두 처음이었다.

이 나이에 처음이라고 하면 웃기려나.

애써 들뜬 마음을 누르고 담담한 척하려고 애썼다.


카페에는 열댓명의 사람들이 몰려 앉아있고 여행동호회 깃발이 보였다.

깃발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가 빈 자리에 앉았다.

생기발랄한 표정을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오셨죠?”

“네, 맞아요. 반갑습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이 동아리 회장이에요! 모르는 게 있으면 저한테 물어보시면 됩니다.”

당돌하지만 친절한 목소리다. 시계가 정각을 가르킨다.

약속된 시간 8시. 핸드폰을 한 번 확인하더니 사람들을 집중시킨다.

“오늘 모일 사람들은 이정도 인 것 같군요. 이쪽은 이번에 처음오신 분이에요. 따뜻하게 맞아주세요! 모두들 오늘도 즐거운 여행됩시다!”


카페에 모인 사람은 총 15명.

“차는 3대로 나누어서 이동합시다. 그럼 제비뽑기를 해서 차량과 해야할 일을 나누죠!”

능숙한 듯 사람들을 이끈다. 상자를 꺼내 내 앞에 둔다.

“그럼 오늘 온 신입부터 오른쪽으로 돌아가며 뽑는 걸로 하죠!”

사람들이 좋다고 맞장구를 친다. 네모난 상자에 파란 캡슐이 들어있다.

예능에서만 보던 제비뽑기 통을 실제로 보다니.

동그란 구멍에 손을 넣어 캡슐을 골라 꺼낸다.

조심스럽게 캡슐을 갈라 들어있는 종이를 확인한다.

‘당첨, A팀’

상자를 오른쪽으로 건네준다.

다른 사람들도 익숙한 듯 하나씩 캡슐을 골라든다.




자신이 뽑은 종이를 살펴보며 웅성댄다.

다시 이목을 집중시키는 명랑한 목소리가 들린다.

“자자, 다시 집중! 다들 종이 확인하셨죠?

왼쪽부터 A팀이에요. 각 팀에 맞는 테이블로 이동해주세요.”

자신의 간단한 짐을 챙겨 사람들이 이동한다. 다행히 옮길 번거로움이 없는 자리다.

어색한 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쫓아 좌우로 정신없이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당첨 써진 분들! A팀 여기, B팀 여기, C팀 여기. 각 팀 앞 쪽으로 나와주세요.”

쭈뼛쭈뼛 사람들을 지나 앞으로 나갔다.


“어머, 처음 오셨는 데 당첨이시네요! 이번 여행의 각 팀, 팀장입니다.

자기 팀 팀장 확인하고 격려의 의미로 박수 한 번 칩시다.”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카페 안을 뒤덮는다.


“자, 이제. 대망의 팀 역할 정하는 게임! 팀장님 손에 팀원들의 운명이 달렸습니다.

간단하게 한 판 승부, 가위바위보로 하겠습니다!

팀장님들 오른손 머리위로 번쩍 올리고, 가위, 바위, 보!”


눈을 질끈 감고 손을 위로 뻗었다. 궁금함에 살며시 눈을 떴다.


내 앞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우아!!!!!”


왼쪽으로 몸을 돌려 다른 두 개의 손을 바라보았다.

나도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동시에 안도감을 내쉬었다.

정수리부터 등 뒤로 흘렀던 막연한 긴장감이 사라졌다.


한바탕 소란스러움이 지나갔다. 모두 자신의 짐을 챙겨 이동한다.

팀원들에게 차가 주차된 장소를 알려주었다.

모두를 이끌던 그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처음이라 많이 어색하시죠?”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네, 하하. 정신이 좀 없긴 한 데 즐겁네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첫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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