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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평초 Sep 03. 2022

어른이 되어 들은 인상 깊은 잔소리

20대 청춘들과 학부모님들 읽어보세요.

나는 겨우겨우 인서울에 성공했다. 수시라는 제도 덕분에 내 내신 등급, 수능 등급에 비해 좋은 학교에 입학했다. 내 대학 진학 컨설팅을 맡아준 이모는 내 공부 성적과 실력을 알았고 그런 이모는 항상 농담으로 말했다. “네가 지금 가려는 대학에 입학하면 홍대 클럽 혹은 술집에서 놀다 취해서 길바닥에 쓰러져도 이불과 배게를 챙겨서 나가주겠다.”(집이 홍대 근처이다.) 엄마, 아빠는 “등록금, 용돈 다 줄게. 인서울만 하고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딱 졸업장만 따와라.” 이렇게 말했고 이런 반응들 덕에 자연스럽게 내 목표와 생각은 “무조건 인서울 대학! 대학만 합격하면 자유!”였다.


사실 쉬운 목표는 아니었다. 중, 고교를 모두 시골(농어촌전형이 가능한 지역)에서 다녔기에 정보라던지 교육환경 등 부족한 점이 많았고 우리 학교에서 인서울 혹은 좋은 학교에 합격하는 학생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실제로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상위 10%만 인서울을 한다고 한다. 공부에 재능도 흥미도 없는 나에게는 불가능한 목표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목표대학 하나 붙잡고 나는 할 수 있다며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끈질기게 늘어지니 결국 합격했다. (이 이야기는 입시판이 완전히 바뀌기 전에 빨리 글로 써보려 한다.)


아무튼 이렇게 대학에 합격했더니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강의(비운의 20학번)를 시작했다. 인생을 살면서 처음으로 설정하고 이뤄낸 목표에 비해 보상이 너무 아쉬웠다. 대학 로망도 가득했고 앞으로 찾아올 새로운 일에 대한 상상과 기대로 가득했건만 학교를 몇 번 가보지도 못했다. 심지어 대학 사람이라고는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를 통해 알게 된 대학 선배 한 명이 내가 아는 대학 사람에 전부였다.


결국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가보지도 못한 학교를 향해 이모랑 산책이나 다녔고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는 대학교였다. 하루는 내가 여자친구를 통해 알게  학교 선배술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를 이모에게 말해주었는데,  내용은 대충 이러하다.

선배가 철학을 주제로 철학적인 질문을 던졌는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질문조차 이해하지 못했고, 선배는 사학과도 아니고 당연하다고 했다. 그런데 서울대에 다니는 지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그들은 최소한 이러한 질문을 이해는 할 수 있었고 정답을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본인의 생각 정도는 표현할 능력이 있었다며 서울대생들과 학교를 다녀보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잘 기억나지 않아서 글로는 쓰지 못하겠지만 아무튼 이모에게는 전했다.


이모는 선배에 말에 공감했다. 동시에 또 다른 입장에서 인상 깊은 이야기도 하나 해주었다. 지금 너희가 전문대를 다니던 인서울 4년제를 다니던 서울대를 다니던 인생을 길게 보았을 때 전혀 상관없다. 중요한 건 지금 너희 청춘들이 느끼는 감정들; 시기와 질투 부러움 등의 감정들을 발전동력으로 만들어 살아가는 것이다. 이게 인생이 점차 달라지는 가장 큰 이유지 당장에 학교 순위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했다. 또   젊었을 때 배움에 투자를 아끼지 말라며 하고 싶은 일, 배우고 싶은 일은 다 배우라고 했다. 그럼 당장 돈은 없어지겠지만 그 배움을 통해 평생 자산이 하나 늘어난 것이라고 그랬다. 자전거도 어릴 때 한 번 배우면 계속 탈 수 있는 거 아니냐며. 아쉽다고.  (50이 넘는 이모는 요즘 자전거를 배우고 싶어 한다.ㅋㅋ)


선선한 날씨와 밤공기, 아기자기 예쁜 동네, 인상 깊은 이야기를 기록하여 간직하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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