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을린 사랑>
어느 평온한 날, 사랑하는 딸과 함께였던 수영장에서 맞이한 평생을 기다려왔던 가장 행복한 순간이 가장 끔찍한 순간으로 변화하는 것은 찰나였다. 차마 말할 수 없는 진실을 알게 된 나왈은 그 길로 말을 잃었고 침묵을 선택했다. 세상 어떤 말로도 자신의 비극을 설명하거나 정의 내리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나왈 자신은 끝내 감당하지 못했던 그 끔찍한 진실을 자식들에게 찾도록 한다. 나왈이 죽은 후, 자식들은 진실을 알게 되고 자신들의 존재가 붕괴되는 듯한 고통스러운 충격에 휩싸인다. 그토록 사랑하던 자식들에게 왜 그 고통을 겪도록 했을까?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을 충격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나는 며칠이 지나고 나니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나왈이라면?
나라면 끔찍한 비밀을 혼자 간직하고 침묵한 채 떠났을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 처절한 고통을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 무서운 진실이 아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뿌리 뽑아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 자식들이 느껴야 할 실존적 붕괴, 자신을 용서할 수도 잊을 수도 없어 평생을 괴롭힐 죄책감을 생각해 보면 절대 알리지 못할 것 같다. 진실과 용서, 그리고 화해. 듣기에 참 아름다운 말들이지만 어떤 진실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어떤 용서는 그 과정이 너무 참담할 수도, 어떤 화해는 도저히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것이 내 식대로의 사랑이다.
하지만 나왈의 선택 또한 사랑이다. 어쩌면 그 끔찍한 진실로부터 완전하게 해방되려는 용감한 결정일 수도 있다. 과거의 굴레로부터 해방되는 유일한 방법은 진실과 용서인지도 모른다. 아이들로 하여금 증오와 사랑이 얼마만큼 가까웠는지를 알게 하고, 그들 자신의 운명을 충분히 애도하고 비통해한 후에 그때 비로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도 있다.
정신분석에서는 부모가 해결하지 못하고 묻어둔 비밀을 ‘유령’이라고 했다. 나왈이 그 끔찍한 비밀을 끝내 가슴에 묻고 떠났다면, 그러니까 내 생각대로 했다면, 그 비밀은 ‘유령’이 되어 자식들에게 까닭 모를 우울이나 불안으로 전이될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나왈은 세대를 이어 흐를뻔한 무의식적 슬픔을 선제적으로 정화시킨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내 식대로의 사랑은 쉽고 비겁한 사랑인지도, 나왈의 사랑은 어렵고 위대한 사랑인지도 모른다.
사실, 침묵과 진실 사이의 거리는 '망각이라는 자비'와 '직시라는 구원' 사이의 거리일 뿐이다. 사랑하는 이의 오늘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비밀의 무덤이 되려는 나의 사랑과, 사랑하는 이의 내일을 위해 지옥 같은 진실의 강을 건너게 하려는 나왈의 사랑 중 무엇이 더 우월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다만 분명한 것은, 나왈이 그 끔찍한 진실을 내뱉는 순간 비극은 비로소 과거가 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부모가 삼킨 눈물이 자녀의 뺨을 타고 흐르지 않도록, 자신의 생을 던져 유령의 사슬을 끊어낸 한 여자의 지독한 사랑 앞에서 나는 깨닫는다. 때로 진정한 애도는 가장 아픈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에서 시작되며, 그 통렬한 슬픔의 끝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어제와 작별하고 '나'로 살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는 것을. 나의 세계는 좁지만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시간 속에서 한 뼘씩 넓어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