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지탱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영화 <블루 재스민>

by 낮별


샌프란시스코 북적이는 거리의 벤치, 화려했던 샤넬 재킷은 때가 탔고 정교하게 세팅되었던 금발은 헝클어져 있다. 영화 <블루 재스민>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재스민은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끊임없이 혼잣말을 내뱉고, 옆에 앉아 있던 낯선 여자는 재스민을 경계하며 황급히 자리를 뜬다. 한때 뉴욕 상류층의 정점에서 우아함을 뽐내던 그녀의 모습은 간데없고, 오직 부서진 자아의 파편들만이 공허한 중얼거림으로 남았다.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재스민의 파멸은 단순히 돈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다. 심리학적 맥락에서 볼 때, 그녀는 극단적인 ‘외적 통제소’에 자신의 전 생애를 의탁한 인물이었다. 통제소란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믿느냐에 대한 개념이다. 재스민에게 삶의 행복과 가치를 결정하는 힘은 결코 내면에 있지 않았다. 부유한 남편의 재력, 그가 선사하는 럭셔리한 파티, 타인의 부러움 섞인 시선만이 그녀를 지탱하는 유일한 기둥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 중시하는 가치를 품고 살아간다. 누군가에게는 자식의 성공이, 누군가에게는 사회적 지위나 빼어난 외모가 삶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전부가 나의 통제권 밖에 있을 때 발생한다. 재스민처럼 삶의 지지대를 외부의 조건에만 두었을 때, 그 조건이 무너지는 순간 인간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만다.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외부의 환경이, 타인이 빼앗아 갈 수 있는 가치 위에 세운 자아는 파도 앞에 선 모래성과 같다. 그 위태로움은 끊임없이 불안을 만들고, 위태로움이 현실이 되면 축적된 불안은 내부에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고 만다. 남과의 비교와 경쟁에 사로잡히거나 허영심과 우월감에 들떠 사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는 불안이다.


부자 남편을 잃고, 새로운 희망이 되었던 또 다른 부자 남자를 잃어버리자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놓아버렸다. 그녀가 잃어버린 것이 단지 ‘돈 많은 남자’나 ‘에르메스 가방’이 아니라, ‘마음을 둘 곳’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외부의 장식물들이 모두 사라지자, 그 안에는 자신을 지탱할 희미한 힘조차 남지 않았다. 이는 장자가 경계했던 ‘외물(外物)에 사로잡힌 삶’의 처참한 결말이기도 하다. 자신의 근본을 안에서 찾지 못하고 밖에서만 구하던 이는, 밖의 사물이 변할 때마다 영혼의 일부가 함께 죽어가는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재스민의 비극은 나에게 묻는다. “당신을 지탱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만약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것이 오늘 당장 사라진다면, 나는 여전히 ‘나’로 남을 수 있는가.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유일한 길은, 세상이 뺏어갈 수 없는 단단한 지지대를 내면의 영토에 깊숙이 뿌리내리는 것뿐이다. 벤치에 홀로 남겨진 재스민의 공허한 중얼거림은, 밖으로 향하던 나의 시선을 다시금 나의 안쪽으로 돌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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