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이디 버드>
영화 <레이디 버드>의 주인공 크리스틴은 지독하리만큼 고향 새크라멘토를 부정했다. 그녀는 부모가 지어준 이름 대신 스스로 명명한 '레이디 버드'라는 가짜 날개를 달고, 가난하고 정체된 고향을 떠나 화려한 뉴욕으로 비상하기만을 꿈꾼다. 그녀에게 엄마는 그 비상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이자, 사사건건 충돌하며 깨뜨려야 할 구속의 상징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치열한 갈등은 크리스틴이 세상이라는 진짜 전장에 나가기 전, 오직 엄마라는 존재만이 허락해 준 '가장 안전한 심리적 시험장'이었다.
아이가 건강하게 독립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공격성을 다 받아내고도 파괴되지 않는 '단단한 대상'이 필요하다. 크리스틴에게 엄마는 아무리 거칠게 대들고 밀어내도 끝내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을 지켜봐 줄 것이라는 무의식적 신뢰의 대상이었다. 차 안에서 뛰어내리고, 독설을 퍼붓고, 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그 모든 무례함은 내가 이토록 못되게 굴어도 당신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굳건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엄마는 크리스틴이 온 마음을 다해 부딪쳐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충분히 견고했다. 만약 엄마가 그렇게 견고하지 않았다면 크리스틴은 일찍 어른이 되었겠지만, 그 어른 안에는 울지 못한 어린아이가 평생을 갇혀 살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크리스틴도, 엄마도 완벽함이나 훌륭함과는 거리가 먼 딸과 엄마였지만 최소한 서로의 자리에서 굳건하게 버텨냈다. 덕분에 서로 가장 취약하고 고약한 부분을 내어놓을 수 있었다.
진정한 성숙은 그 안전한 울타리를 완전히 벗어난 '떠남'의 지점에서 시작된다. 뉴욕이라는 낯선 공간, 누구도 자신을 '레이디 버드'로 불러주지 않는 냉혹한 타지에서 그녀는 비로소 결핍을 통해 충만함을 재발견한다. 술에 만취해 응급실에 실려갔다 깨어난 순간 옆 병상의 아픈 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를 보며 자신이 고향에 두고 온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깨닫는다. 마침내 고향을 긍정하게 되고, 자신의 이름 크리스틴을 긍정하게 되고, 부모님의 사랑을 긍정하게 되었다. "나예요, 크리스틴. 두 분이 참 좋은 이름을 지어준 것 같아요." "엄마도 새크라멘토 거리를 처음 운전할 때 감상에 젖었었어? 난 그랬어.(...) 평생 지나다니던 그 길들, 가게랑 건물들이 너무 정겨웠어."
그녀는 이제 '레이디 버드'라는 가짜 이름을 던져버리고, 부모님이 지어준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으로 뉴욕의 거리에 발을 내딛는다. 나를 억압한다고 믿었던 엄마의 잔소리가 사실은 나를 향한 끈질긴 관심이자 사랑이었음을, 내가 도망치려 했던 그 초라한 배경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단단한 대지였음을 깨달은 것이다. 엄마 역시 딸이 멀리 떠나버림으로 인해 그동안 미처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고, 서로 아프게 할퀴며 살았던 지난 시간이 미안하고 아쉽고, 그리고 진심으로 그리워할 수 있다. 두 사람은 멀어짐으로써 가까워질 수 있었다.
떠남은 결별이 아니라, 더 깊은 이해를 위한 거리를 확보하는 일이다. 멀리서 보아야 비로소 산의 전체 모습이 보이듯, 크리스틴은 엄마와 고향으로부터 멀어짐으로써 자신을 온전히 껴안을 수 있게 되었다. "고마워요, 엄마, 사랑해"라고 메시지를 남기는 크리스틴은 진정한 어른이 되는 길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