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싹한' 며느리 & 'F1 더 무비'
주말에는 도무지 글이라는 걸 쓸 여유가 없다. 세 남자와 복닥대느라 그렇다.
월요일 아침이 되어 모두가 일터로, 학교로 돌아가면 그제야 노트북 앞으로 돌아온다.
한동안 텅 빈 화면을 바라다보고 있노라면 머리도 빈 화면처럼 텅 빈 것 같다.
블로그를 방치해 둔 2년간 절필 중으로 알고 있는 가족들에게 다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걸 알리지 않은 상태라, 나는 가족들이 있는 공간에서는 노트북을 펼치지 않는다. 왜 이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왜 나를 아는 사람이 이 공간을 알지 않기를 바라는지, 정작 낯 모르는 이들에게 이토록 내밀한 속마음을 다 내놓고 있는 건지.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낮은 조회수, 무응답인 댓글창,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 구독자 수, 그래도 소수의 누군가는 보고 있다는 라이킷. 보는 사람이 적어도, 반응이 없어도 '괜찮아, 나는 계속 쓰면 돼'라고 자위하지만 또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읽히지 않는 글을 뭣하러 쓰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 여전히 나는 갈팡질팡이다.
나의 기록을 가장 많이 읽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기록하지 않은 날들에 대한 기억이 흐지부지 사라져 버려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것도 나 자신이다. 그러니 누가 보건 말건 나를 위해 남겨놓는 일상의 기록이다.
토요일에는 근처에 사시는 큰 시누 내외분과 점심 식사와 티타임을 가졌다. 예전에는 만나면 좀 불편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편해졌다. 가족으로 묶인 지 25년이라는 세월이 주는 편안함이다. 남편의 잦은 음주와 코골이에 대해 실컷 험담할 수 있는 분들이다. 오랜만에 남편 험담을 시댁 식구들 앞에서 해보았다. "형님, 이 사람 좀 혼내주세요." 남편에게는 타격 1도 없었겠지만, 나는 하소연을 하기만 했는데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
형님은 얼마 전 본 조카며느리 칭찬에 여념이 없었다. "애가 얼마나 싹싹한지 몰라." 형님의 말에서 '싹싹하다'는 형용사가 훅 치고 들어왔다. '싹싹한'의 사전적 정의는 '눈치가 빠르고 사근사근한'이다. 영어로 뭐라고 표현할 수 있나 검색해 보니 'sociable', 'agreeable', 'approachable'이라고 하는데 우리말의 '싹싹한'에는 영어의 이 단어들이 대신할 수 없는 뉘앙스가 있다. '싹싹한'에는 어른의 비위를 잘 맞추고 어른을 편안하게 해 준다는 뜻이 숨어있다. 그러니까 어른들 보기에 흐뭇한 것이다. 새 조카며느리의 싹싹함을 입이 닳도록 칭찬하는 걸 보면서 싹싹하지 못했던 나의 초보 며느리 시절이 떠올랐다. 결혼 초반, 내가 싹싹하지 못해서 시댁과의 관계가 그토록 어려웠었나를 떠올리니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젊은 사람의 싹싹함을 칭찬하는 나이 든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큰 아이는 주말에도 바빠서 얼굴 보기 힘들었고, 셋이서 영화 'F1 더 무비'를 봤다.
영화는 시끄러웠지만 시원했고, 한 순간도 졸리거나 피곤하지 않았다.
그리고 63년생 브레드 피트는 여전히 멋졌다.
취향이 제각각인 우리 가족이 함께 보기에 좋은 영화였다.
반드시 스크린이 큰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영화이다.
F1 쥐뿔도 모르는 나도 제법 재미있게 봤지만, F1 마니아인 큰 아이가 보면 정말이지 환장할 것이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브래드 피트와 "부앙~~~"사운드만 기억날 테지만
대사 하나는 남겨 본다.
"It's not about the money."
소니 헤이스를 움직이게 한 건 돈이 아니었기에 그의 선택, 그의 삶이 그토록 빛나 보인다.
도파민의 향연을 만끽하고 상영관을 나와 휴대폰을 확인하니
친구 시아버님의 부고장이 도착해 있었다.
최근 들어 장례식장 갈 일이 잦아졌다.
애들은 자라서 떠나고, 부모님은 세상을 떠나고
세상살이가 점점 외로워질 일만 남았다.
그러니 곁에 있는 사람에게 더욱 마음 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