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발맞추기
어제 방학식을 하고 12시도 안 되어 귀가한 아이는 갑자기 닥친 여유에 뭘 해야 할지 몰라 들락날락하더니 함께 영화를 보자고 졸라댔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10분 정도 보여 주셨는데 그걸 마저 보고 싶다고 했다. 그게 뭔데? 요즘 전 세계가 난리인데 이것도 모르냐고 타박하더니 케이팝 아이돌이 주인공인 애니이고 아이돌이 악령을 잡는 데몬 헌터들이라고 어쩌고 저쩌고. 딱 보기 싫은 장르겠군 싶었다. 애니도 아이돌도 관심 분야 밖이고, 게다가 악령이라니 아 진짜 별로겠다 생각하며 아이의 성화에 플레이를 시키고 같이 앉았다. 휴대전화를 들고 슬쩍슬쩍 영화를 보는 건지 전화를 보는 건지 대충 보고 있다가...
잠시 후 전화기를 던져버리고 영화에 푹 빠져버렸다. 영상이 화려하고, OST가 끝내주고, 스토리는 다소 뻔하지만 작은 감동이 있다. 배경, 음악, 문화까지 이토록 깨알같이 한국적인 애니라니. 아이는 옆에서 학교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한국계 감독이 만든 작품이고, 귀마 목소리를 잘 듣고 누군지 맞춰 보라고도 하고, 남자 주인공인 '진우' 얼굴이 차은우랑 닮았다니 차은우와 남주혁을 섞어 만들어낸 캐릭터라고 아는 체를 한다. 앞부분을 대충 보느라 계속 언급되는 '혼문'이 도대체 뭐냐고 질문했더니 "그러니까 영화를 처음부터 집중해서 봤어야지" 라며 꾸지람을 했다. 아이와 상황이 역전된 기분이 우스웠다. 혼문은 악령을 막아내는 장벽 같은 거라고 했다.
모처럼 아이와 함께 재밌게 영화를 보고 나니 마침 뉴스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열기를 보도하고 있었다. 영화 제목을 줄여서 '케데헌'이라고 하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케데헌 뮷즈'가 대히트 중이라 요즘 사람들이 오픈런을 한다는 거였다. 뮤지엄 굿즈를 '뮷즈'라는 신조어로 부른다고. 그 뉴스를 보면서 오픈런에 신조어에 세상 유행 따라가기 참으로 힘들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저게 다 무슨 소린가 싶었을 것이다.
OST는 진짜 중독성 있다. 처음 듣는 음악인데도 찰떡같이 귀에 들러붙었다. 특히 '소다팝' 이거 뭐냐? '사자보이즈' 팬 되겠네. 몰랐는데 나, 아이돌 취향이었다. BTS 정국의 뉴욕 타임스퀘어 게릴라 콘서트만큼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 영화의 OST들이 빌보드를 싹 쓸었다고 한다. 요즘 사람들의 취향에 여러모로 부합하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세상에 발맞추어 살아가기 위해 이런 영화도 제때 봐주고, 음악도 들어야 한다. 남들 다 열광한 뒤지만 뒤늦게 아이덕에 발맞췄다.
영화의 전체 주제를 보여주기도 하는 'Free'란 노래의 가사가 아름답다.
"You got a dark side, guess you're not the only one.
네 안의 어둠, 네게만 있는 게 아닐 거야.
What if we both tried fighting what we're running from.
우리가 도망치던 것들과, 함께 맞서 싸워보면 어떨까?
We can't fix it if we never face it.
대면하지 않으면 결코 그것들을 바로 잡을 수 없어.
What if we find a way to escape it,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는다면
we could be free
우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야.
Free
자유
We can't fix it if we never face it.
마주하지 않으면, 바로잡을 수 없어.
Let the past be the past 'til it's weightless.
과거는 과거이게 두고 가벼워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