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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Apr 06. 2022

모호함을 견디는 능력

나의 풋살시대



34,900원 결재, 띵똥~ 품절로 주문자가 취소하였습니다.

39,500원 결재, 띵똥~ 품절로 주문자가 취소하였습니다.

29,000원 결재!


몇 분 간격으로 카드 사용 알림이 띵똥띵동 거리니 남편이 뭘 그렇게 사냐고 묻는다


"풋살화"


자기가 물어놓곤 정작 대답이 없다.


사실 내가 풋살을 하겠다 했을 때 긍정적 반응을 보인 건 건강을 생각해서 잘 선택했다는 엄마와, '우와 엄마 재밌겠다'며 부러워한 큰 아이 두 사람뿐이었다.  작은 아이는 엄마가 저녁에 운동을 하러 간단 말에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눈과 코가 빨깨지고 얼굴이 납작해져서는 '가지 마' 하고 내 다리에 조롱조롱 매달렸다.

남편은 반대하진 않았지만 긍정하지도 않았다. 언급 자체를 피했다.

기분 탓이겠거니 했지만 남편은 운동 갔다 돌아온 내게

"재밌었나? 할만했나?' 정도의 기본적인 안부조차 묻지 않았다.


소 뒷발에 쥐 잡은 격으로 첫 골을 넣은 날

남편에게 "여보, 나 오늘 골 넣었어"라고 말을 건네봤지만 남편의 반응은 "어" 한 글자뿐이었다.

다음날 아침을 먹으며 한 번 더 골을 넣은 역사적 순간을 떠들어댔지만 남편은

부지런히 젓가락만 놀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반대하는구먼, 나쁜 놈.


차마 운동하지 말란 소리는 못하고, 마음속으론 꿍해있는 게 확실했다.

뭐를 사길래 띵똥 거리냐 물어놓곤 풋살화라고 하니 대답조차 없는 거 봐봐.


서운하고 화가 났다.

내가 운동 좀 하겠다는데 일-집-일-집 오가다(물론 가끔 카페도 들림)

처음으로 내가 나를 위해 운동 좀 하겠다는데

그걸 하나 마음 편하지 못하게 저렇게 살살 긁나 싶었다.

들이박고 한번 대차게 싸우고 싶었다.


그때 또다시 작년 상담을 받았을 때, 저장해 두었던 상담 선생님의 말씀이 슬그머니 올라왔다.


"아라 씨는 모호한 걸 견디는 게 어렵죠?"


"네, 저는 확실한 게 좋아요. 모호한 걸 잘 견디는 게 좋은 건가요?"


"세상이 늘 분명한 건 아니니까요. 오히려 모호할 때가 훨씬 많죠.

  남들이 볼 때는 아라 씨가 딱 부러지고, 똑똑해 보이겠지만.

  모호함을 못 견디는 아라 씨는 일상 속에서 불편함이 많았을 것 같아요"


견디자, 모호함을 견디자

남편이 확실하게 '네가 풋살을 해서 좋아, 네가 풋살을 해서 싫어'라고 하지 않아도

그 모호함을 견디자_고 생각했다.

남편이 긍정하던 부정하던 나는 이미 풋살을 시작했으니

남편의 응원까지 바란다면 그건 내 욕심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또한 남편이 마음으론 싫어도 명분이 없으니 뱉지 않는 것일 테고

그럼 이내 스스로 싫어하는 마음을 가라앉힐 터이니 기다림이 필요했다.


그런 나날을 보내기를 며칠

드디어 남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라야, 풋살화 이왕 사는 거 좋은 거 사지 왜 그걸 샀어?"


그렇게 풋살은

이제 남편과도 공유할 수 있는 나의 일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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