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열만 한 '문'이 필요하다.
나의 풋살시대
"형님, 저 풋살 시작했어요"
오랜만에 만난 형님과 '풋살'로 대화의 물꼬를 틀었다.
"그래, 들었어. 어땠어?"
형님의 관심에 남편이 슬쩍 끼어든다.
"아라가 풋살 시작하고 나선 실컷 먹어도 살이 안 찐대, 그래서 풋살 하는 거 같아"
"맞아요, 형님, 살이 빠지진 않았는데 실컷 먹어도 찌진 않더라고요"
그러나 내가 풋살을 시작한 목적은 다이어트가 아니다.
이른 나이에 당뇨 진단을 받은 터라 건강에 대한 경각심이 일었고,
이왕 하는 운동 '여성적'이라는 틀에 가두지 말고 한 발짝 더 나아가잔
나름 나의 직업과 신념에 부응하려는 실천적 의미도 있었고,
신체적 유능감이 떨어진다는 말에 까짓것 극복해보자_는 심리적 요인도 있었고.
여하튼 그런 복합적인 요구들 틈에
'당근 마켓'에서 우리 동네 풋살팀을 발견한 것이다.
남편이 끌어간 이야기의 방향을
나는 다시 내 쪽으로 틀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형님, 풋살 해보니. 이거 너무너무 좋은 운동이더라고요"
사실이었다.
풋살 첫 수업을 앞두고 나는 엉망진창 얼렁뚱당 얼레벌레 어리바리한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민망함과 묘한 수치심 98%,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 2% 즈음을 안고 갔더랬다.
온통 나의 감정에 매몰되어서 풋살이라는 운동 그 자체에 대한 생각은 크게 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코치님의 지도하에 두 발을 동시에 뛰거나 옆으로 뛰거나, 앞으로 뛰거나, 혹은 공을 인사이드, 아웃사이드로 차며 걷고 뛰는 훈련을 하며 나는 스텝이 꼬이지 않도록, 일정한 속도가 유지되도록 집중하는 내 모습을 보았다.
공을 조금만 세게 차도 저 멀리 데구루루 달아나버리고
살살 차면 공이 기껏 2-3센티 움직이다 마니
적절한 힘으로 차기 위한 조절력도 상당히 필요했다.
내가 이토록 온 정신을 내 몸에 집중해서
내 신체를 조절하며 움직인 적이 있었나 싶은 순간이 계속 이어졌다.
이런 나의 수업 소감을 형님께 줄줄이 간증(?)하며
"형님, 저 진짜 태어나서 풋살 처음 해보는 거거든요.
학창 시절에 체육수업 때도 해본 적이 없어요"라고 하니 형님도 맞장구를 치셨다.
"맞아, 나도 한 번도 해본 적 없어"
정말 그랬다.
내가 하기 싫어서 내 뺀 게 아니라 단 한 번도 축구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수업시간에도 피구가 주를 이루었고
가끔 수비 없는 농구골대를 향해 골을 넣는 수행평가가 있었을 뿐이다.
주의력, 집중력, 체력, 협동심까지 기를 수 있는 이 좋은 운동을 12년의 학창 시절 동안 단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다니.
경험해보지 않아 미숙한 영역인지
미숙했기 때문에 경험케 해달라 요구조자 하지 않은 건지 전후를 명료하게 구분할 순 없지만
아동, 청소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성장의 기회가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렇게 세월이 훌쩍 흐른 지금에서야
아니 지금이라도
그 기회의 문을 내 스스로 열었음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풋살 첫날, 잘했던 아니던
그 문을 열고 들어간 내가 스스로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었다. 들뜨고 자랑스러웠다.
그러다 문득 나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깨달았다.
문은 내 스스로 열었을지언정 그 문을 열기 위해서는 애초에 열만 한 '문'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예능 '골때리는 그녀들' 방영 이후로 여성 풋살팀이 전국적으로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골때녀들이 수많은 문을 만들어낸 것처럼 나의 이 글 또한 누군가에게 열 만한 문이 되길 바란다.
'풋살' 해보니
이거 너무너무 좋은 운동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