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다녀올게
- 엄마 잘 다녀와 엄마 올 때까지 기다릴게
- 아라야 잘하고 와
- 엄마, 안아주고 가
- 엄마, 나는 뽀뽀해줘
시끌벅적 한 인사를 뒤로하고 차에 올랐다.
의식을 치르듯 버튼을 누르고, 그곳에 갈 때면 늘 듣는 노래를 오늘도 찾아 튼다.
전주가 흐르자 녹아내린다.
한 여름의 저녁 8시,
밝지도 어둡지만도 않은 어스름의 한 조각.
그 조각들 사이를 차로 가로지르며
starlight를 크게 튼다. 가슴이 쿵쿵 튄다.
설렘인지 긴장인지 후회인지 막 뒤섞인 감정이다.
난 지금, 풋살장을 향해 가는 중이다.
풋살장 향하는 길을 뭘 이리 거창하게 적었냐 싶지만 이상하게 내겐 그렇다.
나에게도 첫사랑이 있다.
단 한 번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그런 첫사랑이 있다.
그 시절의 나는 내가 그 친구를 사랑하는지조차 몰랐다.
그 친구를 보면 가슴이 뛰고, 같이 있으면 즐겁고, 그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해 봤던 영화를 처음인것마냥 또 보고
그 친구의 아픔에 혼자 베개에 얼굴을 묻고 수많은 날을 울었지만 난 그게 사랑인 줄 몰랐다. 그 친구만이 나를 사랑하는 줄 알았다. 사랑받는 자의 포지션을 차지한 나는 그래서 더 안전했고 더 들떠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친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죄책감이다.
함께 식사를 하고 그 친구는 내게 편지를 내밀었다.
'지금 읽어볼까?'
'아니, 절대'
'왜? 지금 읽어야지~'
'안돼, 집에 가서 읽어'
'지금 읽어볼거지롱'
당황하며 만류하는 녀석의 반응이 재밌어
한참을 더 골려댔다.
'알겠어, 집에 가서 읽어볼게'
마치 큰 은혜를 내리듯 잘난 체하며 나는 편지를 가방에 쏙 집어넣었다.
집에 가서 편지를 뜯어보고서야 알았다.
그날 내가 뜯은 건 편지만이 아니라 그 친구의 심장이었음을.
나는 왜, 무슨 근거로 그 편지가 나에게 보내는 세레나데라고 생각했을까. 그 편지는 세레나데와는 명왕성만큼이나 먼 거리의 것이었다.
그 힘든 시간들을 어떻게 견뎌냈으며, 그 속에서 또 어떤 일들이 벌어졌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 시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해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힘든지 알아봐 달라고, 괜찮은 척하는 나를 알아봐 달라고 터지듯 나오는 울음이었다.
살면서 나의 가벼움이
그토록 부끄럽고 죄스러웠던 날이 없었다.
그건 지금까지도 깨어지지 않고 있다.
이딴 신기록은 가지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덜 된 인간이라서 그랬을까
첫사랑의 미숙함이라서 였을까
그 시절 우린 늘 함께 있었지만
대부분 헛다리를 짚거나 핀트를 못 잡았고 노력했으나 우왕좌왕하는 탓에 서로에게 제대로 가 닿지 못했다.
풋살장에 향할 때면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설레고 잘하고 싶지만 아직은 그게 다다.
흠뻑 땀에 젖어 뛰고 있지만 내가 속한 팀은 나 때문인지 승리를 거머쥐기 어렵고 꼴에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통에 체력은 금방 동이 난다.
이 와중에 이건 또 무슨 욕심일까
저 공을 한번 뺏어봐야지 설레발을 치다 오늘은 급기야 보기 좋게 넘어졌다. 무릎은 까지고 발목은 접지르고 엉덩이는 바닥에 쿵-하고 안착. 실력은 안되는데 마음은 앞서니 부상이 생길 수밖에.
어스름했던 하늘이
돌아가는 길엔 온전히 깜깜하다
오늘도 땀에 절어 냄새를 풍기며 차에 올랐다.
창문을 열고 음악을 틀었다.
starlight
녹아내린다.
한 여름 낮의 아스팔트나 가스불 위의 냄비같은 뜨거움이 아니라 빗물에 젖어들듯, 거친 흙바닥에 스며들듯. 추적추적하게 마냥 설레는 것도 아닌,
그러나 피할 도리도 없는채로...
나의 풋살은 나의 첫사랑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