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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면 아는데 말로는 안나온다

내 영어는 왜 이럴까




    영어 공부 상담을 굉장히 많이 한다.

    학원에 등록하러 온 손님과는 당연히 상담을 하고, 요즘은 블로그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문의를 하기도 한다. 상담을 할 때 맨 처음 하는 것은 '레벨테스트'이다. 근데 레벨테스트가 무슨 의미가 있나? 내가 영어 레벨 1이다, 2이다, 3이다.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물론 레벨별로 공부방법이 조금씩 다르긴 하다. 그런데 영어 공부의 가장 근본적인 것에 대해서 알려주기 위해서는 이 레벨테스트가 정말 필요하다.


    시험지를 주고 문제를 풀어보세요.

    이렇게 안한다. 


    입시학원이면 그렇게 할 수 도 있겠다. 몇점을 맞느냐에 따라서 반 배정을 다르게 하면 되니까. 그런데 내 영어 강의의 목적은 이 사람의 영어 실력을 올리는 것이지 영어 점수를 올리는게 아니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간단한 한국어 문장을 말해본다. 그리고 이걸 영어로 말해보라고 한다. 정말 간단한 것들. 예를들면

    "나는 학교에 간다"


    대답을 하시는 분들도 있고 못하는 분들도 있다. 사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여기에 더 나아가 몇 가지 문장을 더 물어본다.


    "나는 학교에 갔다." "나는 학교에 갈 것이다." "나는 학교에 갔었어야했다." "나는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다." "나는 어렸을 때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다." "나는 어렸을 때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보내주지 않았다."


    난이도는 조금씩 높아진다. 그런데 어찌 되었든 어느 지점부터(본인의 실력에 맞는 지점에서) 말을 더듬기 시작하고 어느 지점부터는 아예 말문이 막혀 버리곤 한다. 이 방법의 목적은 "당신의 실력은 이것밖에 안돼!"하고 찍어 누르려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실력에 불만족하니까 상담을 받겠지. 그걸 도와주는게 내 일이고. 찍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신기하게도, 더듬기 시작한 지점, 말문이 막히는 지점에서 내가 그 문장을 영어로 말해주면 "아~"라고 한다. 무슨 의미인가? 알고 있다는 말이다. 영어로 말하면 그 문장을 알아듣는다는 말이다. 그러면 나는 여기서 다른 질문을 한다. "왜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는데 말로 안나왔을까요?"


    사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레벨테스트를 한 것이다. 당신의 레벨이 어느정도인지는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나는 현재 실력이 어느 정도이고, 다음 레벨로 가기 위해서는 돈이 얼마, 시간이 얼마 필요한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싶지 않다. (사실 내담자들은 이런 정보를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런 이야기도 해 줘야 하지만, 그보다 더 하고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포석을 깔아둔 것이다. 


    정말로. 왜 머릿속으로 알고 있는 것인데 말로는 안나왔던걸까?

    별로 어려운 질문은 아니다. 머릿속에만 가지고 있는 지식과 실제로 내가 그 지식을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별개이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 사이가 너무 멀기 때문이다.


    머릿속에만 가지고 있는 지식을 "이론적 지식"이라고 하고,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을 "실전적 지식"이라고 하겠다. (어디서 들은게 아니라 그냥 내가 그렇게 편하게 부른다.) 이 둘 사이의 갭을 줄일 수 있는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 사실 새로운 지식을 쌓아 나가는 것도 좋지만,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을 활용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영어 실력을 높이는데 훨씬 더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보자. 자전거는 바퀴가 두개이다. 그런데도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게 무슨 원리일까? 과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중고등학교 시절 과학 시간에 열심히 들은 것도 아니지만 대강은 알고 있다. 관성 때문이 아닌가? 어떤 물체는 계속 나아가려는 힘을 가진다. 그래서 처음에 힘을 주어 패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면, 중심을 잡지 못해 넘어지기 이전에 바퀴가 계속 굴러가는 것이다. 자전거는 그렇게 앞으로 나아간다.

  

    문제는 이걸 아는 것과 자전거를 실제로 탈 줄 아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주변에 입축구를 좀 하는 녀석들이 있다. 쇼파에 누워 과자를 씹으면서 "저렇게 하면 되겠냐", "저기서 저걸 못 넣냐"하는게 이 친구들의 취미이다. 말만 들으면 이미 프리미어리그 우승팀 감독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 친구들의 실력은 프리미어리그는 커녕 K리그 4부 5부도 못들어갈 정도이다.


    머릿속으로 아는 것과 실제로 그걸 제대로 해 내는 것은 다르다. 이론적 지식을 쌓는 것과 실전적 지식은 다른 문제이다.


    당신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한국에서 20년 이상 살아왔다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든 영어에 대해서 수 많은 지식들을 가지고 있다. 이론적 지식의 양이 크지 않더라도, 있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실전적 지식으로 "전환"하는 연습을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러니 이론적 지식과 실전적 지식 사이에 "갭"이 생기는 것이고, 그 갭이 바로 당신이 아까 전에 "아~"라고 했던 이유이다.


    레벨테스트를 거친 내담자들이 "아~"라고 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Q.들으면 아는데 말로는 못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A. 이론적 지식을 늘리는데 포커스를 맞추지 말고, 가지고 있는 이론적 지식들을 실전적 지식으로 전환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한다. 


    질문과 대답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는 포인트에 도달했다. 여기까지 성공적으로 왔을 때, 내담자는 계속해서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실전적 지식으로 전환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여기에 대한 대답을 하면, 또 거기서 질문이 이어지고, 대답이 이어지고, 질문이 이어진다.




    "물건을 살 생각하지 말고 집에 있는거나 잘 써"


    언젠가 아버지가 나에게 해주었던 충고이다. 이 말이 영어공부하는데도 적용이 될줄 누가 알았겠는가. 우리는 생각보다 가지고 있는게 많다. 그걸 잘 활용하는 연습부터 한 다음에 새로운 것을 배우는게 훨씬 지혜롭고 효과적인 영어 공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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