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저는 사람>, 김기택
다리 저는 사람 / 김기택
꼿꼿하게 걷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춤추는 사람처럼 보였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그는 앉았다 일어서듯 다리를 구부렸고
그때마다 윗몸은 반쯤 쓰러졌다 일어났다.
그 요란하고 기이한 걸음을
지하철 역사가 적막해지도록 조용하게 걸었다.
어깨에 매달린 가방도
함께 소리 죽여 힘차게 흔들렸다.
못 걷는 다리 하나를 위하여
온몸이 다리가 되어 흔들어 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기둥이 되어 우람하게 서 있는데
그 빽빽한 기둥 사이를
그만 홀로 팔랑팔랑 지나가고 있었다.
이 시는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찬 지하철 역사 안에서 다리를 절며 걸어가는 한 사람을 묘사한다. 화자는 그가 걸어가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다리를 절지 않는 다른 사람의 경직된 모습과 대비하고 있다. 다리 저는 사람의 걸음걸이를 춤추는 모습으로, 생동감 있고 생명력 넘치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시를 처음 본 순간 작은아버지가 떠올랐다. 작은아버지는 다리 저는 사람이었다. 선천적인 장애는 아니었고 어릴 때 다친 것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작은아버지는 잘생기셨다. 난 우리 할머니보다 더 예쁘게 생긴 할머니는 본 적이 없는데 작은아버지는 7남매 중 유일하게 할머니를 닮았다. 그리고 작은아버지는 책을 읽는 사람이었다. 농사에 관한 실용서가 아니라 소설책을.
아홉이나 열 살 때쯤이었을 거다. 누구네 집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동네에 잔치가 있었다. 아마도 며칠 계속되는 환갑잔치였던 거 같다. 동네에 잔치가 있으면 엄마들은 그 집에 가서 일을 했고 남자 어른들과 노인들은 밥때가 되면 그 집에 가서 밥을 먹었다. 아이들도 흥성거리는 마을 분위기에 들떠서 뛰어다니곤 했다. 나도 그 속에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뒤에서 무언가를 내 입안으로 쓱 넣어 주었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작은아버지가 웃으며 “먹어 봐.”라고 했다. 씹으니 씁쓸한데 고소했다. 호두였다. 처음 먹어본 음식이었다. 작은아버지가 걷느라 기울었던 몸을 뒤로 젖히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곤 다시 휘청이며 가셨다.
작은아버지는 잔칫집 술상에 올라온 땅콩이며 잣이며 호두를 한 줌 주머니에 넣고 가다가 어린 조카를 보고 주었을 것이다. 그냥 불러서 손에 쥐여줘도 됐을 텐데 작은아버지는 몰래 뒤로 와서 나를 놀라게 했고 눈이 동그래진 나를 보고 소리 내어 웃으셨다. 별다른 사건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작은아버지가 생각나는 일이 있을 때면 늘 저 장면이 떠오른다.
돌이켜 보면 그때의 작은아버지는 가난과 장애와 가정불화 속에 있었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상황이 크게 나아진 거 같지도 않다. 장애가 있는 작은아버지에게 농사는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농기계를 다루지 못해 중요한 농사일을 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처지는 얼마나 기죽고 위축되었을까. 작은엄마와 잦은 부부싸움에 마음은 얼마나 피폐했을까. 작은아버지는 너무 힘들고 외롭지 않았을까.
나는 작은아버지의 삶이 무겁고 외로웠다고 기억한다. 그런데 작은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나에게 장난을 치고 환하게 웃어주던 모습이 떠오르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김기택의 <다리 저는 사람>을 보고 그 이유를 알 듯했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앉았다 일어서듯 다리를 구부렸고 그때마다 윗몸은 반쯤 쓰러졌다 일어나는 춤추는 사람’처럼, 삶의 무거움을 그렇게 건너가는 작은아버지가 좋아서였다. 그 시절 나에게 장난을 치고 환하게 웃어주던 어른은 작은아버지뿐이었다. 모두가 현실의 무거움을 경직되고 꼿꼿하게 견딜 뿐이었지만 작은아버지는 혼자 팔랑팔랑 갈 줄 아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