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우유는 누군가의 성장의 영양분이겠지만
나에게는 선명한 결석의 이유였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무렵, 반에서 우유를 신청해서 먹던 시절이었다.
60명 남짓한 아이들 중 겨우 일곱여덟 명만이 우유를 마셨다.
쉬는 시간마다 책상 위에 놓인 우유에 빨대를 꽃는 아이들의 모습을 나는 자주 훔쳐보곤 했다.
그 평범하고 당연해 보이는 풍경 속에 나도 끼어들고 싶은 부러운 마음이었다.
언젠가 나도 엄마를 졸랐다.
나도 먹고 싶다고, 딱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신청해달라고 떼를 썼다.
엄마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뒤, 내 책상 위에도 우유가 놓였다.
작은 종이팩 하나였지만, 그날만큼은 나도 교실의 중심에서 그리 멀리 비켜나 있지 않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한달 뒤, 우유값을 내는 날이 오자 하안우유의 설렘은 공포로 변했다.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며 돈을 걷자 다른 아이들은 준비해 온 지폐를 당당히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아무것도 내놓지 못했다.
“집에 가서 가져와.”
짧은 말이었지만, 교실 안의 모든 공기가 한순간에 나를 향해 쏟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와 말을 꺼내자, 엄마는 힘겹게 입을 뗐다.
“다음 주에 일 나가서 품삯 받으면 줄게.”
'다음 주'
그 말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나에게는 너무 먼 시간이었다.
다음 날,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아프다는 핑계조차 대지 못한 채 그저 도망치듯 집에 머물렀다.
몸은 방 안에 앉아 있으면서도 마음은 온종일 교실에 가 있었다.
혹시 내 빈자리가 너무 도드라져 보일까 봐, 선생님이 다시 내 이름을 부르며 돈을 찾을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
월요일, 늦게 마련된 우유값을 손에 꼭 쥐고 학교로 갔다. 교실 문 앞에서 한 번 멈춰 섰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 앉아야 했지만,
그 며칠 사이 나는 내가 얼마나 무력하고 작은 사람인지 배운 것 같았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업료를 내지 못해 서무과로 불려 나갈 때마다 복도를 걷는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문 앞에 서면 이유 없이 숨이 가빠졌고
“아직 안 냈니?”
라는 무심한 질문 앞에서 나는 늘 죄인 처럼 작아졌다.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서류 위에 적힌 내 이름만 바라보던 기억은
흉터처럼 남았다.
그 기억들은 지금까지도 나의 일상 곳곳을 붙잡았다.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사도 되는지, 정말 필요한지 검열하듯 되묻고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다가도 비용부터 계산하는 습관이 생겼다.
선택하는 기쁨보다 포기하는 안도감이 더 익숙해졌다.
나는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좁은 틀 안에 가두며 살고 있었다.
그러다 영화 '미 비포 유'를 보았다.
영화 속 죽음을 앞둔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돈을 남긴다.
그 돈은 단순한 유산이 아니었다.
그것은 익숙한 곳을 떠날 수 있는 용기이자,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 즉 ‘가능성’ 그 자체였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한참을 울었다.
내게 돈은 늘 모자란 것이고, 실수하면 안 되는 족쇄였으며
없으면 숨고 싶어지는 부끄러움이었다.
그런데 그날, 처음으로 다른 생각이 들었다.
돈은 사람을 묶어두는 밧줄같은 것이 아니라, 어딘가로 나아가게 하는 날개일 수 있겠다는 생각.
가난은 참 많은 것을 앗아간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보다,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먼저 가르친다.
꿈꾸기 전에 계산기를 두드리게 하고, 도전하기 전에 포기의 근거를 찾게 만든다.
나는 여전히 돈을 쓰는 일이 어렵고 무언가를 사려다가도 몇 번이나 망설인다.
하지만 예전과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 망설임의 뿌리가 어디에 닿아있는지 안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하얀 우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온몸으로 겪어내야 했던 그 서글픈 감정 때문이라는 것을.
돈이 없다는 것은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홀로 서는 일이다.
그곳의 공기는 살을 에듯 매섭고 차다.
나는 그 공기의 감촉을, 그리고 그때의 나를 여전히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