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힌 질문들

by 순백 상선

칠판을 채우는 분필 소리보다 내 심장 소리가 더 크게 들리던 시절.


그때의 나는 ‘분수탱이’라고 불렸다.

제 분수를 모르고 나댄다는 뜻이었을까,

혹은 넘치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해 뿜어내는 분수 같다는 뜻이었을까.

그때는 그 말이 참 듣기 싫었다.


어느 가을날이었다.

운동장에서는 뽀얀 흙먼지를 일으키며 가을 운동회 연습이 한창이었다.

뙤약볕 아래 줄을 맞추는 아이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때, 나의 엉뚱한 의문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운동회는 왜 꼭 가을에만 해요? 봄에도 하면 좋잖아요.”

봄, 가을 소풍은 두 번이나 가면서 왜 운동회는 단 한 번뿐인지, 나는 그게 못내 아쉬웠다.


선생님은 짐짓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또 순백이야?”라며 헛웃음을 터뜨리셨다.

아이들은 웃었고, 선생님은 점심 먹고 운동장에서 가을 운동회 연습을 한다고 말씀하셨던게 기억이 난다.

교실은 금세 웃음바다가 되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조롱이 아니라 그저 일상의 환기 같은 것이었다.

그때까지 나의 질문은 부끄러움이 아닌, 교실을 깨우는 작은 소란이자 나의 생명력이었다.


하지만 그 생명력은 이내 서늘한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어느 날, 선생님은 내 옆자리에 체구가 크고 주먹이 매운 친구를 앉히며 서늘한 농담을 던지셨다.

“순백이가 오늘 세 번 이상 손을 들면, 네가 주먹으로 한 대씩 때려라.”

친구는 낄낄거리며 주먹을 쥐어 보였고, 나 역시 얼떨결에 따라 웃었다.

교실의 공기는 평소와 다름없이 유쾌해 보였지만,

그날 이후 내 마음속의 문은 조금씩 삐걱거리며 닫히기 시작했다.


들려던 손이 허공에서 멈칫거렸고, 혀끝까지 차올랐던 문장들은 비릿한 침과 함께 삼켜졌다.

질문을 삼키는 일이 반복될수록 가슴 밑바닥에는 대답을 얻지 못한 질문들이 진흙처럼 무겁게 쌓여갔다.


왜 이 장면이 마음 한편에 답답하게 남아 있는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조금 알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가난은 내 등에 보이지 않는 짐을 지웠다.

그렇게 나의 눈부셨던 호기심은 눈치를 보는 습관으로 대체되었다.

가만히 앉아 있으려 했고, 말을 줄이려 했고, 떠오르는 질문들을 꾹 눌러 담는 연습을 했다.


수업 시간에 손을 드는 횟수를 줄이려 애썼고, 궁금한 것이 생겨도 참고 넘기는 날이 많아졌다.

질문을 삼키는 일이 반복될수록, 마음속에는 말하지 못한 것들이 하나둘 쌓여갔다.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질문들은 사라지지 않고 안쪽에 남아 있었다.

묻기보다 참는 것이 먼저였고,말하기보다 숨기는 것이 익숙해졌다.


그 시절의 나는 그렇게 조금씩 나를 접으며 자라고 있었다.

튀지 않는 것이 안전한 것이고, 숨기는 것이 어른스러워지는 것이라 믿으며

나는 스스로를 구부리고 접어 작은 상자 안에 밀어 넣었다.


이제야 나는 깨닫는다.


그때의 나는 고쳐야 할 아이가 아니라,

세상이라는 거대한 신비 앞에 가장 정직하게 반응하던 넘치던 아이었음을.

내가 애써 교정하려 했던 것은 나의 단점이 아니라, 나의 가장 빛나던 본성이었음을.


접힌 것은 내 질문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음을 말이다.


‘분수탱이’라 불리던 아이는

어느 순간 말이 적은 아이가 되어 있었고,

조용히 눈치를 보는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지금은 비록 침묵이 편한 나이가 되었지만, 나는 이제 내 안의 ‘분수탱이’를 다시 불러내려 한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풀려나, 봄에도 운동회를 하고 싶다던 그 천진한 당당함을 되찾고 싶다.


멈춰버린 질문들을 다시 꺼내놓는 일.

그것은 길을 잃어버린 나 자신을 다시 찾아가는, 가장 눈부신 복원 작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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