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은 바람을 타고

by 순백 상선

살아오면서 수많은 소문을 접하며 살아왔다.

소문은 대게 사실인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은 과장되거나 사실의 빛깔조차 흐릿한 경우가 더 많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소문을 만들고, 퍼뜨리고, 소비한다.

나 또한 그 바깥에 서 있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 부끄럽다.


초등학교 6학년,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 큰오빠가 결혼을 하고 새 식구를 맞이한 해였다.

어린 나이에 시집온 올케는 낯선 살림이 서툴렀고, 아침잠이 많아 시어른의 식사를 제때 챙기지 못하곤 했다.


며느리의 도리가 엄격했던 그 시절, '사정'보다는 '당연함'이 앞서던 때였다.


그 작은 틈을 비집고 동네에는 소문이 독버섯처럼 피어올랐다.

놀이터로 향하던 길, 빨래터에서 들려오는 수군거림이 발목을 잡았다.


“순백이네 며느리를 시어머니가 떠받든다며?”


“밥상을 방문 앞까지 갖다 준대. 쯧쯧, 난 그렇게는 못 살지.”

물소리 사이로 뾰족하게 스며든 말들이 어린 가슴에 박혔다.


얼굴이 화끈거려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를 질렀다.

“남의 집 일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아요! 사실도 아니면서!”

그날의 나는 어렸지만, 적어도 타인의 삶을 함부로 난도질하는 것이 얼마나 비겁한 일인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토록 단호했던 정의로움은 세월이라는 파도에 깎여 조금씩 무뎌져 갔다.

소문에 상처받던 아이가 어느덧 소문을 소비하는 어른의 자리에 앉아 있게 된 것이다.


어느 날 지인이 건넨 말,

“우리 언니가 엄마 돈 삼천만 원을 또 가져갔대.” 라는 말에 나는 너무도 가볍게 말을 보탰다.


“세상에, 그 큰돈이 다 어디로 증발했대? 언니 보기보다 씀씀이가 무서운 사람이었네.”

그 질문은 깃털처럼 가벼웠으나, 담장을 넘어가자 돌덩이가 되어 돌아왔다.


다음 날, 지인의 언니는 나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말 좀 조심해 주세요. 남의 속사정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 말고요.”

내가 던진 무심한 추측이 어떤 일그러진 얼굴로 상대의 가슴에 박혔을지 깨닫는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한 번 시작된 부끄러움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의 비겁함을 비추었다.

내가 궁금해했던 것이 진실이 아니라 '자극적인 이야기'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사건이 있었다.


댄스동호회 회장 부부가 별거한다는 이야기가 돌 때였다.

바람이 났느니, 돈 문제라느니,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살을 붙여 굴러다녔다.

어느 순간 나 또한 그 자극적인 서사가 궁금해져 지인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결국 이혼했대?”

돌아온 대답은 날카로운 죽비 같았다.


“언니는 내가 궁금한 게 아니라, 여기 없는 사람 이혼 얘기가 더 궁금해? 부부 일은 알아서 하게 두지.”

한참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람의 삶이 아니라 남의 사정을 안주 삼아 소비하고 있던 나의 저급한 호기심이 민낯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소문에 맞서 소리를 지르던 아이는 간데없고, 소문의 파도를 타고 즐기는 어른만 남았다는 자책이 들 무렵, 또 하나의 사건이 내게 침묵의 무게를 가르쳐주었다.


좋아하던 회사 언니가 퇴사를 했다.

나는 그녀가 떠난 진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서글픈 사정이었다.


하지만 복도에 떠도는 소문은 잔인했다.

관리자와의 갈등, 부적절한 관계... 사람들은 단순한 진실보다 복잡하고 자극적인 가공을 택했다.


실체를 아는 나는 끝내 입을 다물었다.

진실을 말하는 순간, 그 진실조차 또 다른 소문의 재료가 되어 변질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진실을 지키는 일은 때로 침묵보다 무거웠다.


소문은 마른 풀밭에 떨어진 불씨와 같다.

시작은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고 가벼웠으나,

사람들의 입김이라는 바람을 만나는 순간 순식간에 들불로 번진다.

불길이 지나간 자리에는 타버린 진실의 재만 남고, 처음 불을 지핀 손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나는 두 자리에 서 있었다.

소문에 상처받던 자리와 소문을 만들어내던 자리.


소문은 바람처럼 가볍게 떠돌지만, 그 바람에 닿는 마음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제는 안다.

소문은 바람처럼 가볍게 떠돌지만,

그 바람에 닿는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떠도는 말 앞에서 한 번 더 멈추기로 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 입술 끝에 매달린 이 말이,

정말 그 사람의 이야기인지. 아니면 나의 비겁한 심심함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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