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한장

by 순백 상선

전화기를 놓은 지 얼마 안 돼 고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번호를 잘못 누르셨나 봐요,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시길 바랍니다."


하고 멘트가 나오자 수화기 너머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확인했슈.”

그 한마디에 온 가족이 빵 터졌다.


무뚝뚝하기만 한 줄 알았던 아버지에게 그런 농담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날의 웃음은 오래갔다.


생각해보면 우리 집 웃음의 중심에는 늘 아버지가 계셨다.

말수는 적었지만, 한마디로 분위기를 바꾸는 힘이 있었다.


운전면허 시험에 떨어진 날,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하소연을 했다.

괜히 서럽고 분해서 눈물이 쏟아졌다. 세상이 나만 빼고 잘 돌아가는 것 같아 억울했다.

그때 아버지는 말했다.

“또 하면 되지. 세상 다 산 것처럼 우냐. 별것 아니야.”


툭 던진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이상하게도 단단한 힘이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더 크게 엉엉 울었다. 혼난 것도 아닌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위로를 받았다.

위로는 등을 토닥이는 게 아니라, 다시 일어설 자리를 내어주는 거라는 걸 그때 알았다.


첫 월급을 탔던 날, 나는 제일 먼저 아버지 양복을 샀다.

평생 번듯한 양복 한 벌 없이 사신 것 같아 내내 마음이 쓰였기 때문이다.


양복을 건네드리던 순간, 아버지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거울 앞에 서서 몇 번이나 옷매무새를 다듬으시더니, 마루로 나가 어린아이처럼 이리저리 걸어 보셨다.

아니, 거의 뛰다시피 하셨다.


그렇게 신이 나셨던 모습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웃다가도 울컥했다.

누군가에게 대접받는 삶보다 가족을 위해 내어주는 삶에 더 익숙했던 분.

세상 앞에 당당히 설 때 입으실 옷을 이제야 해드렸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어느 장날, 아버지는 컨디션이 좋다며 고추 나르는 품일을 다녀오셨다.

붉은 고추 자루를 어깨에 메고 오르내렸을 그 하루를 나는 짐작도 못 했다.


돌아오시더니 내 손에 천 원짜리 지폐를 한 움큼 쥐여주셨다.

“과자 사 먹어라.”

구겨진 지폐에서는 땀 냄새와 맵싸한 바깥 공기 냄새가 났다.

그 돈이 그렇게 귀한 것인지, 나는 그때 몰랐다.

다만 손이 따뜻했다.

그 따뜻함이 오래 남았다.


비가 오면 출근길 내 구두에 흙물이 튄다며 아버지는 큰길까지 벽돌을 한 장 한 장 깔아주셨다.


물을 머금은 흙 위에 벽돌을 눌러놓는 소리가 아직도 귀에 남아 있다.

눈 오는 날이면 또 큰길까지 눈을 다 쓸어두셨다.

이른 새벽, 아직 해도 뜨기 전이었다. 나는 그 길을 아무렇지 않게 걸어 나갔다.


세상 모든 아침이 원래 그렇게 정돈되어 있는 줄로만 알았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길을 만들어두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고3 때였다.

새벽 기차를 타고 집에 온 날, 역까지 마중 나오셨던 아버지를 따라 아스팔트 길을 걸었다.

가방을 메고 뒤따라가는데, 무심히 앞서 가는 아버지의 등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처음으로 그 등이 휘어 있다는 걸 알았다.

언제 저렇게 굽었을까.

벽돌을 나르던 날들 때문이었을까, 고추 자루를 메던 장날 때문이었을까.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그 등을 바라보며 걸었다.

그날 이후로 아버지의 등은 나에게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슬프고도 든든한 풍경.


나는 베토벤 곡을 틀어놓는 걸 좋아했다. 웅장한 음악이 커질수록 가슴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 음악이 싫다며 “또 튼다, 또” 하며 몸서리를 치셨다.

그때마다 집 안 공기가 잠시 흔들렸다.

그 작은 소동 속에서도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듣고 계셨다.


좋다는 말도, 싫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 같기도 했다.

어쩌면 아버지는 소리보다 마음을 먼저 듣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야 생각하니 아버지는 한 번도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대신 벽돌을 깔아주셨고, 눈을 쓸어주셨고, 천 원짜리를 쥐여주셨다.

그리고 내가 사드린 양복을 입고 아이처럼 기뻐하셨다.


또 하면 되지, 라는 말로 나를 일으켜 세워주셨다. 사랑은 거창한 말이 아니었다.

반복되는 수고였고, 묵묵한 준비였고, 조용한 어깨였다.


나는 아직도 비 오는 날이면 벽돌을 떠올린다.

눈 오는 날이면 누군가 먼저 쓸어두었을 길을 생각한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또 하면 되지.

이제야 안다. 내가 밟고 걸어온 그 벽돌 한 장 한 장이,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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