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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늬 Sep 28. 2023

독일 대학원, 1년간의 변화의 기록

22년 10월부터 23년 2월까지 한 번의 겨울학기와 23년 4월부터 7월까지 한 번의 여름학기를 보냈다.


그 사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지나가는 햇빛과 살랑이는 바람에 행복한 하루도 있었고, 모든 것이 잘못된 것만 같은 두려움에 휩싸이는 하루도 있었다. 덕분에 많은 것들이 변화했다. 앞으로 또다시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생각의 변화들을 기록으로 남겨보려고 한다.





1. 해외 생활의 목표

독일에 오기 전에는 막연하게 외국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내 생각을 나누며 일하는 내 모습을 꿈꾸었다. 

더 나은 워라밸을 쫓아 이곳에 온 것은 아니다. 그저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환경에서 이런 문화적인 성장을 이루었는지가 궁금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답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아쉽게도, 이제는 그런 해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런 답은 내 환상 속에 존재할 뿐이었다. 특히나 '독일'은 명석한 답을 내려주는 곳은 아니었다. 내가 답을 찾을 시간을 주는 곳이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이곳에서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는 것이 내 목표가 되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 안에서 내 나름의 옳고 그름의 기준을 찾는 것. 이게 내 목표가 되었다. 왜 한국이 아니고 머나먼 타지에서 그 기준을 찾느냐고 묻는다면, 이곳에서 지구의 60억 인구 속에 존재하는 더 다양한 인간상들을 만나볼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답하려고 한다.




2. 석사학위의 의미 / 그래서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 걸까

앞의 해외생활의 목표와도 연관되는 내용인 것 같다. 

처음엔 일단 해외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해외의 학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이유를 말하자면, '내 작품'에 대한 작은 소망이었다. 내가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쌓고 싶었다. 학사 졸업을 할 때, 이것이 내 이름으로 하는 마지막 자유작업이니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기분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


석사과정을 진행하면서, 나는 내가 옳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자꾸만 확인받고 싶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이게 맞아?" 처음에는 표현에 인색한 독일인들에게 뭔가 작업에 대한 반응을 체크하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내 나름대로 그들의 방식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의 일종이었다. 그런 나에게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너를 이 석사학위 과정의 학생으로 뽑았다는 것은 이미 너를 한 명의 Künstler(Artist)로 인정한다는 의미야, 그러니 다른 사람 혹은 교수들의 피드백보다는 너 스스로의 의견이 중요해. 넌 뭘 말하고 싶어?"라고.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즉석에서 말하는 것보다는 시간을 들여 글을 쓰는 편이 편한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공간디자인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넓은 공간 속에서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내 의견을 담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짧은 순간의 영감을 통해 즉석에서 제한된 한 가지 방법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기간 동안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여러 매체들을 이용하여 진득하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 또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조율해야만 한다는 것. 그것이 내가 공간을 다루는 사람으로 일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한국에서 나는 공간을 다루는 디자이너로 일했고, 대중을 상대로 한 공간을 디자인하며 내가 디자인한 공간을 누군가가 즐기고 공감하는 것에 만족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자면, 어찌 보면 껍데기가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누가 봐도 유능해 보이는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척'을 한 적은 많았지만,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인지, 내가 무엇에 움직여지는지 진심을 다해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만족시키는 작업에 익숙했던 내가 스스로 만족하는 방향성을 가지는 것.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아는 것. 

그래서 누군가를 위한 디자인과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클라이언트를 위해 작업하고 이를 통해 내 삶을 부양하는 디자이너임과 동시에 내가 원하는 작업을 진행할 줄 아는, 내 세상을 가진 아티스트가 되는 것. 

그 목적이 무엇이든 공간을 통해 이야기를 하고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아마도 이것이 내 석사 학위의 의미이자 내가 되고 싶은 무엇인 것 같다.




3. 언어란 무엇일까

지난 1년 동안 언어의 벽에 참 많이도 부딪혔다. 

독일어로 친구들과 대화하고 수업을 듣고 생활하지만, 종종 독일어가 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튕겨져 나간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나 체력적으로 힘들고 심리적으로 불안할 때는 그 증상이 더 심해진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는 독일어를 더욱 붙잡아보려고 노력했다. 다시 대학교 독일어 수업을 수강하고 피드백을 받았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디어, 한계를 제대로 인식했다. '오! 이게 내 독일어의 한계구나. 이 수준에서 그저 즐기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즐긴다'라는 말에는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는데, 더 이상 배우고, 이해하고, 아는 것만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어디에선가 찾아보니 언어 학습과 습득은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아마 나는 언어 학습의 한계를 제대로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동시에 영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남을 원하고 감정의 교류를 원하는 것이라면 영어를 (잘) 해야 할 것 같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외국인에게 제한된 가능성을 구현하기 위해서 영어는 어쩔 수 없이 올라야만 하는 산이라는 걸 받아들였다.


'나 한국말은 잘하는데, 너네 왜 한국말을 못 하니...!'라고 더 이상은 그들을 원망할 수 없다.




4. 내 인생의 정착지는 어디일까

회사에 다닐 때 한 연금보험사에서 나와서 인간 평균 수명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우리 세대의 평균 수명은 120살일 거라고. 흠... 120살은 너무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내가 한 100살까지는 살 거라고 생각했다. 내 인생이 참 길거라고, 그래서 아직 나에게 기회가 많다고. 그렇게 치면 나는 지금 인생의 3분의 1 지점정도 온 것 같다. 독일에서는 고령화되는 사회를 고려해서, 만 70세 정년 연장도 논의되고 있다. (실현 가능성은... 글쎄?) 70세 할머니가 되었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사이에 나는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까? 독일에 더 오래 머무르게 될까 한국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한국도 독일도 아닌 그 어딘가에서 새롭게 적응하게 될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적응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곳이 어디든 간에.




적어놓고 보니, 이 모든 이야기가 연결되는 것 같다.

23년 여름학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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