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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늬 May 11. 2022

내가 한국에 살면 어떨 것 같아?

내가 너희 나라에 가서 살면 어떨 것 같아?


응? 너는 진정한 폴리글롯이자 세계시민이잖아ㅎㅎ

그리고 친화력도 좋으니까 어디에서든 잘 적응할 수 있을 거야!


음… 아니, 내 말은 흑인이고 가나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미군이며, 독일에서 자라난 내가 한국에서 살면 어떻게 살 수 있을 것 같냐는 말이야.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음 글쎄,,,

한국의 길거리에서, 회사가 많은 강남, 종로 일대에서 나는 정장 차림의 말쑥한 흑인을 본 적이 있었던가?


이 물음에 대한 일본인 친구의 답

일본인들은 기본적으로, 외부인에 대한 적대감이 강한 것 같아. 네가 흑인이어서가 아니라, 우리는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들어와서 사는 것에 대해서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래서 아마 살기 어려울 거야...


중국인 친구의 답

음, 중국 영어학원에서 흑인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어. 

정말 수업을 잘했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클레임을 받았고 결국 수업을 하지 못하게 되었지.

하지만 흑인들이 모여사는 지역이 잘 만들어져 있어. 아마 거기서는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분리되어서 사는 게 정말 함께 사는 걸까? 

너희 말은 결국 아시아에서는 내가 그 사회의 일부로 살기에 어렵다는 거구나?

유럽 여행하는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 정말 많잖아.

그들은 여기에서 무얼 보고 무얼 느끼고 가는 걸까?

세상은 정말 많이 바뀌었는데,,, 아직도 바뀌지 않은 것들이 참 많아.


맞아…

있지, 수업할 때 그 아프가니스탄 친구와 터키 애들 이랑 있었던 일 말이야. 

너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네가 정말 좋은 선생님이자, 친구였다고 생각해.


아! ㅎㅎ 내가 수업하면서 정말 많은 학생들을 만났었고, 그런 경험은 처음이 아니었어.

내가 흑인이며 어린 여자이기 때문이겠지.

그렇지만 나는 애들에게 너희의 생각이 틀렸고,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더 나은 방법이 있다고 직접 말해줄 수는 없어. 내가 그 이야기를 하면, 그들의 세상이 흔들리잖아. 시간이 지나고 직접 그것을 느낄 때 변화의 기회가 올 것이고, 나는 그냥 여기서 내가 독일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나의 일을 성실히 다하는 것이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기를 바랄 뿐이야.





그녀는 나의 두 번째 독일인 선생님이었다.

원래 선생님이 갑자기 펑크가 나는 바람에 갑자기 등장한, 작고 어리지만 열정적인 흑인 여자 독일어 선생님. 이렇게 단순하게 그녀를 정의하고 싶진 않지만, 그녀와 겪은 많은 일들을 설명하려면 이러한 배경을 이야기해야만 설명이 가능하다. 크리스타는 미군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가나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고, 12살에 아버지가 주독 미군으로 배치를 받아 함께 독일로 왔다고 한다. 그녀는 현재 이러한 배경 덕분에 미국어와 독일어를 모국어로 쓰는 바이링구어다. 게다가 독일에 살며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며 추가로 약 5개의 언어를 공부하여, 7~8개 정도의 언어를 구사하는 폴리글롯(Polygolt)이 되었다.


이런 그녀와 대화를 하다 보면 정말 많은 생각이 든다.

지난 1년 동안 독일에 살면서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도 괜히 아시안 여성이라는 이유로 위축되던 순간들이 있었는데, 흑인으로 살면서 그녀가 경험한 세상은 어떠한 것들인지. 그녀는 늘 내가 상상도 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물었다.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상황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그녀에게 뭐라고 답해야 할지 난감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코로나 이후로 한국에서는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의 수가 현저히 줄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한국 언론을 통해 아시안 혐오범죄가 많이 보도되었고,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이것이 큰 불안요소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나도 독일에 살면서  아시안에 대한 의도적인 혹은 무의식적인 차별들을 느낄 때가 있다. 처음에 길을 가다가 "히나(차이나)" 혹은 "곤니찌와"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참 충격적이었다.

왜 나의 국적을 너희 맘대로 정하는 것이냐!


반면 한국에 사는 외국인의 수는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한국의 경제적 성장과 세계화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K-Drama와 K-Pop이 한국과 아시아의 이미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외국인이 살기에도 정말 어려운 나라로 악명이 높다. 한 한국계 독일인의 말씀에 따르면, 한국과 독일 이중국적을 소유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한국의 주민등록증이 없으면 한국에 거주하는 것이 정말 힘들고, 심지어 독일인들이 한국 대학에서 초청장을 받고 초청 교수로 수업을 하러 오는 경우에도 외국인청에서 비자를 받는 것이 정말 어렵다고 한다. 한국의 외국인청이 얼마나 공평한지, 그 어떤 나라에 대한 우대주의 혹은 사대주의도 아닌 '한국인 제일주의'라고 한다. 그 한국인들의 "서비스 정신"이란 것이 얼마나 배타적인지 한참을 토로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한국에 장기간 거주하려면 한국인과 결혼을 하거나 시험으로 귀화를 해야 한다고 한다. (단기 거주비자도 받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라고)


독일로 오기 전 급하게 한국에서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학원을 다녔다. 일을 그만두고 평일에 몰아서 학원을 다니다 보니 낮에 조금은 한산한 시간에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 나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한 필리핀 언니(아.. 생각해보니 언니가 아닐 것 같기도 하다)와 도로 연수 수업을 같이 들었다. 그때 그 언니가 한국어와 한국 귀화시험이 너무 어렵다고 이야기했는데, 나이가 50세는 넘어 보였던 한국인 운전면허학원 선생님은 너희가 결혼하고 한국에서 좋은 혜택만 받고 도망가기니까 그렇다고 대답하며, 너에게 면허시험을 볼 수 있게 해 준 남편과 시댁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일장연설을 해주셨다. 그 후에도 한국 남자와 결혼한 필리핀 또는 동남아 여자에 대한 비하 발언이 이어졌다. 아무 짓도 하지 않은 그 필리핀 여성분은 남편을 뒤통수 칠 범죄자로 인식하고 한 말들이었다. 그 상황에 필리핀 언니는 아무런 답을 하지 못 했다. 그때 나는 내가 그 필리핀 언니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외국에 나가서 동양 여자로서 그들에게 비추어질 모습이 그녀와 과연 무엇이 다를까.




왜 한국은 우리 땅에서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이 사는 것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걸까.

얼마 전 유튜브를 통해 지리적 특성이 그 이유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큰 유라시아 대륙의 시작점이자 끝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다양한 민족이 섞이지 못한 이유라는 것이다. 반면 대륙으로 연결된 유럽과 과거 유목민족들은 끊임없이 교류하고 이동하게 되어 현재까지도 다른 민족들과 공존하며 사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단일민족주의는 동아시아, 특히나 섬나라인 일본과 반도인 한국에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있다.


우리는 이제 외국인들이 한국의 문화에 대해 가지는 호감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국뽕'이라고 자조하긴 하지만, BTS와 오징어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흥미롭게 보고 뿌듯해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한국이 아직 이러한 관심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 한국에서 생산해낸 작업물들의 가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효율성의 민족답게 시간 대비 작업물의 완성도와 가치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그 관심을 긍정적으로 연결을 시키려면 그 외국인들이 한국에 직접 와서 경험하는 단순한 '호의' 이상의 것을 느껴야 할 텐데, 그러한 준비가 되었을까? 내 자식이 외국에서 손가락질받는 것은 두려운데, 한국에서 우리가 타국에서 온 남의 자식을 손가락질하는 것은 아무렇지 않다니. 이것이야 말로 내로남불이다.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나는 이제는 모두에게 '다문화'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독일에 살면서 세계 문화 그리고 외국인들이 가진 다양한 시선에 대한 배움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방법에 대한 배움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배움은 서로를 이해하는 폭을 넓혀준다. 왜 그들이 한국에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인간적으로 생각한다면 그러한 차별이 줄어들지 않을까. 스스로를 아시아 문화권에 속해있다고 단순히 생각했던 나는 독일에 와서 보니 나는 동아시아 문화권, 그중에서도 중화권에 대한 경험이 없는, 미국발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한국어 문화권'에 속해 있는 사람이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으니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객관적으로 우리의 문화권을 인식하고 또 그 차이에 대해서 배웠다면 어땠을까에 대한 그런 아쉬움이 있다.


모두가 인정한다. '다양성'이라는 것이 미래 발전의 기반이라는 것을.

그래서 회사에서는 "인터내셔널 하고 크리에이티브한 인재"를 미래의 인재상으로 뽑으며 방송에서는 외국인이 출연하는 방송들을 쉽게 볼 수 있고, 아이돌 그룹마다 외국인 멤버들이 필수로 존재하는 것일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표면적인 해결방안이 아니라 근본적인 의식의 변화를 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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