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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스키 Dec 29. 2021

<단편소설>오지납전

- 옆 동네 살인사건 ③

사건 현장은 예상과는 달리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엄청난 인파였다. 여기저기 카메라에,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한 달이나 지난 사건인 데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지 그리고 요즘은 뉴스에서 나오지도 않았는데. 참 이상하다. 많은 카메라를 보니 더욱더 어떻게 여자를 잡아야 할지 고민이 된다. 바로 앞에 있으니까 잡는 일쯤은 식은 죽 먹기겠으나, 방송에 보여줄 만한 증거가 없다. 일단 오늘은 여자의 집이 어디인지 까지만 따라가 보는 게 좋겠다. 그다음은 잠복과 주변 조사…… 족적! 그래 여자가 범행에 신었던 신발이 지금 내 가게에 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내 손안에 있는 것이다. 여기는 기자도 많고 하니 일단 여자를 잡아서 경찰에 넘기는 게 좋겠다. 여자가 범행 현장을 구경하는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서둘러 아침에 구둣방에 왔던 경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 저기…… 오늘 아침에 제 가게에 오셨었는데 기억하세요? 호심 상가 앞 구둣방 사장 오지납입니다. 그 화재 사건 범인 아직 안 잡혔죠? 제보 좀 드리고 싶은데."

"아 사장님 안녕하세요. 아직 뉴스가 안 나갔나? 삼십 분 전에 용의자가 현장 근처에서 잡혔어요. 지금 현장에 기자도 엄청 오고 해서 죄송해요. 일단 지금은 전화를 끊어야 할 것 같고요. 이따가 제가 다시 이 번호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어? 여보세요? 여보세요!"

'뚜. 뚜. 뚜. 뚜'

진범이 저렇게 뻔뻔하게 돌아다니는데 용의자가 잡혔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멍하니 서 있는데 누군가 나에게 인사를 한다.

"오! 안녕하세요! 구둣방 사장님을 여기에서 보네요!! 밖에서 만나니까 기분이 또 새롭네요!"

인파 속에서 나를 알아본 사람은 구둣방 단골이다. 십 년 정도. 하지만 만날 때마다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 안녕하세요. 그러게요 이런 데서 다 만나네요. 근데 여기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요?"

"조금 있다가 진범이 현장 검증하러 온다고 하더라고요. 나쁜 놈한테 계란 하나 던져 주려고 나와서 벼르고 있었어요. 어! 왔다 왔다 다음에 봐요!"

이내 차 한 대가 멈추더니,

'드르륵'

차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우락부락한 모습의 남성이 수갑을 찬 채로 내렸다. 그는 곧바로 경찰들과 기자들에 둘러 쌓였다. 인터뷰를 하려는 기자들과 구경꾼인지 뭔지 중간중간 욕설을 하는 사람들로 순식간에 현장은 아수라장으로 바뀌었다. 계란을 던지러 왔다는 단골손님도 인파에 떠밀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저 남자가 범인이라고? 그럴 리가!"

나는 바로 인파 속으로 들어가서 눈에 불을 켜고 여자를 찾았다. 그 족적 은 분명히 여자 신발이다. 경찰이 실적을 위해 가짜 용의자를 만든 게 틀림없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더는 경찰도 믿을 수 없다.

"정의가 죽었어. 정의가 죽었다고."

작게 읊조리며 인파 속에서 여자를 관찰했다. 여자는 경찰이 만들어낸 용의자를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여자는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는 눈이 마주쳤고, 나는 놀라서 반대쪽으로 홱! 얼굴을 돌려 버렸다.

'내 얼굴을 알아보면 곤란해.'

그 사이 여자는 인파 속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도 놓칠세라 사람들을 밀치며 여자를 따라 나갔다. 여자의 걸음은 아까보다 훨씬 빨랐다. 나는 기를 쓰고 따라갔다. 물론 최대한 몸을 사리면서.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나는 못 속이지."

여자는 횡단보도를 건넜다. 내가 건너려고 하자 신호가 바뀌었다. 그때 마을버스 한 대가 왔고 여자는 그 버스에 타려고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어쩔 수 없다. 나도 무조건 저 버스를 타야 한다. 무단횡단까지 하며 떠나려는 마을버스를 붙잡아 탔다. 버스를 타니 앞 좌석에 앉아있는 여자가 보였다. 들키지 않기 위해 멀찌감치 뒤에 앉아 여자를 관찰하기로 했다. 두 번째 정거장은 내 가게가 있는 곳이다. 여자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세 번째 정거장에 마을버스가 멈추고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내리지 않을 것처럼 앉아 있던 여자가 후다닥 뛰어내렸다.

"에이 씨 저……."

여자의 돌발행동에 놀란 나머지 입 밖으로 소리가 나와 버렸다. 내가 덩치는 있어도 꽤 유연하고 빠른 편이다. 매일 밤 공원에서 운동한 게 이제야 발휘되는 것 같다. 점프하듯이 버스에서 내려 여자를 쫓았다. 여기라면 구둣방까지 걸어서 십오 분이다. 멀지 않아서 조사, 아니, 수사하는데 편리할 것 같다. 여자는 정류장에서 내려 십 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아파트로 들어갔다. 나는 여자가 들어간 아파트의 동과 호수를 수첩에 적고 주변을 관찰했다. 삼십 분 정도가 지났을까 피곤하기도 하고 내심 가게 걱정도 들어서 구둣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상가 근처에 도착하니 이 씨가 밖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부동산에서 일을 하기는 하는 거요? 왜 또 밖에 있어?"

"지납이 가게에 안 붙어있고, 어딜 쏘다니는 거야?"

"일이 좀 있어서."

"뉴스 봤어? 잡혔대 그 있잖아 옆 동네 사건! 아침에 경찰 왔었던 거."

"아. 근데 내 생각엔 그거 가짜 범인이야 가짜."

"집주인이 연락 두절됐다 그랬잖아. 그게 다 이유가 있었어. 범인이 집주인이고 죽은 사람은 집주인 동거녀라지 뭐야. 나이가 열 살 차이나 나더구먼, 싸우다가 욱해서 밀었는데 죽었다나. 범행 숨기려고 불 질렀대."

"숨기려고? 발자국은? 족적은 어떻게 설명할 거야?"

"아니 그걸 내가 설명해야 하나?! 아무튼 뉴스 속보에서 그러는데 불 지르기 전에 동거녀 신발을 하나 빼 뒀다가 제대로 다 탔는지 확인하러 들어갈 때 일부러 그 작은 걸 신고 들어갔다지 뭐야. 어휴 무서워. 현장 근처에서 잡혔다더라고 차에서 그 구두도 확인됐고."

"확실해?"

"확실하지 않을 게 뭐가 있어? 뉴스에 다 나왔다니까. 지금도 TV 틀면 나올 걸? 아! 지납이.  손님 온 거 같은데? 구둣방 앞에 사람들이 서 있네."

"아이고, 그렇네. 나중에 얘기합시다."

구둣방 앞에는 건장한 남자 두 명과 여자 그 여자 진범 -아니 진범이라고 생각했던- 여자가 있었다.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남자 두 명은 자신들이 경찰이라고 했다. 아까 나와 통화했던 담당 경찰이 보낸 것 같다. 여자가 진범인 걸 알아차린 걸까?

"이 사람이에요. 그 변태!"

여자는 거의 소리를 지르는 듯이 말하며 손가락으로 나를 지목했다.

"잠깐, 어? 네?"

나는 너무 놀라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멀뚱멀뚱 여자를 쳐다보기만 했다. 옆에 있던 경찰 두 명은 이미 주변 CCTV도 다 확인했다며 경찰서에 가자고 한다. 이 셋은 내 얘기는 듣지도 않고 나를 무작정 경찰차로 끌고 갔다. 동네 사람들이 다 보는 곳에서! 그것도 나의 구둣방 앞에서 말이다.







***

경찰서에 다녀온 지도 삼 주가 지났다. 경찰서로 끌려간 나는 옆 동네 화재 사건 범인을 쫓고 있었다고 한참을 설명해야 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침에 구둣방에 왔던 담당 경찰이 나를 알아봐 준 것, 그리고 사건에 관해 날짜와 시간까지 있었던 일을 빼곡히 적어 놓은 수첩이 있었다는 것이다. 경찰의 회유 끝에 여자는 오해를 풀었고 저녁 열한 시가 되어서야 겨우 나올 수 있었다. 나를 데리러 온 이 씨를 보자마자 억울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야옹'

"왜 자꾸 찾아와 성가시게."

구둣방 구석에서 고양이 캔 사료 하나를 깠다. 이제 새끼들도 제법 오동통하게 살이 올랐다. 어미는 여전히 삐쩍 마르고 사람을 경계하지만 이제는 내가 있어도 먹이를 먹는다.

방정맞은 이 씨 덕분에 나의 바보 같은 이야기는 동네에 소문이 쫙 퍼졌다. 경찰에게도 마을 사람에게도 모두에게 탐정놀이는 이제 그만하라며 비웃음을 샀다. 이 씨는 비꼬며 나를 오지랖 탐정이라고 부른다. 아무리 그만하라고 해도 변태로 소문나는 것보다는 바보로 소문나는 것이 낫다며 도와주는 건지 놀리는 건지 만나는 사람마다 말하고 다닌다. 그리고 여자는 아직까지도 신발을 찾으러 오지 않았다. 억울하기도 하지만 내가 잘못한 것도 있으니 미안한 마음에 고급 재료를 써서 신발도 전부 고쳐놨다. 받은 수리비도 돌려줄 생각으로 기다리고 있다. 여자가 어디에 사는지 알고 있지만 변태로 오해받았는데 찾아가면 안 될 것 같아서 마냥 기다리고 있다.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밥 먹다 말고 구둣방 안으로 들어간다. 나도 서둘러 따라 들어갔지만 한 발 늦었다. 새끼가 한 번 들어갔다 나오니 가게 안이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아이고 저놈 새끼."

바닥 여기저기에 널브러진 물건들을 다시 제자리에 정리한다.

"고양이 덕분에 청소도 하네. 아주 눈물 나게 고맙구먼."

쓰레기인 줄 알고 집은 구겨진 종이 한 장. 족적 사진이다.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올라서 억울함에 화가 솟구쳤다.

"하아."

여자가 찾아가지 않은 신발이 눈에 거슬린다.

"진짜 아닌가……?"

나는 족적 사진을 펼쳐 두고, 여자의 수리한 신발 밑창에 물을 묻혀 신문지 위에 찍어 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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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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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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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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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상하게 똑같단 말이지."


(오지납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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