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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밥 Apr 26. 2021

몽골 여성들의 ‘길거리 모유 수유’


몽골, 길거리 모유 수유 보편화… 한국도 70년대까진 일반적

韓, 분유 시장 확대 모유 수유 도태… ‘숨어 수유’ 상징 수유실


몽골을 여행하면서 봤던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아이를 안고 다니는 여성들이 스스럼 없이 젖을 꺼내 아이들에게 물리는 장면이었다. 길거리 모유 수유였다. 그들은 버스에서도 공원에서도 상가나 벤치에서도 젖을 꺼내 아이를 먹였다. 나에겐 어색했던 그들의 수유 장면은 그러나 그들에겐 당연한 듯 보였다. 어쩌면 내가 이상한 것일까. 수유실이라는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그곳에서 은밀히 어린 아이의 밥을 먹여야 하는 불편함이 그들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여성들에게 보편화된 ‘남이 보면 불편하다’는 생각 역시 한국의 문화·사회가 개인에 남긴 유산이다.

수유실은 편의 시설이지만 그런 공간이 왜 ‘편의’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됐는지에 대해서도 다시한번 생각해 볼만하다. 누구에게 제공되는 ‘편의’냐다. 불과 수십년 전엔 길거리에서 할 수 있었던 수유를 이제는 ‘편의시설’에서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질문은 이어진다. 여성의 젖은 누구의 것인가. 태초엔 노상에서 먹이는 것이 당연했을 수유가 이제는 문명이란 이름과 편의란 이름으로 숨어서 해야할 일이 됐다. 젖의 원래 주인은 아이건만, 문명 세계에서의 젖의 주인은 아이가 아니게 됐다.

▶코앞에서 ‘불쑥’… 눈 둘 곳?= 몽골에서 처음으로 길거리 수유를 하는 여성을 본 것은 시내버스 안이었다. 아이를 안고 있었으나 여전히 앳돼 보이는 20대 초반으로 보였던 그 여성은 아이에게 젖을 물리기 위해 셔츠를 위로 벗어올리고 버스 좌석에 앉아 수유를 했다. 아이는 젖을 물고 눈을 감았다. 아이는 편안해 보였다. 여성은 버스에서 내리면서도 계속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버스에서 내린 그는 버스정류장에 잠시 앉아 모자른 수유를 계속 이어 나갔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수유하는 분을 본 것은 울란타바르에서 흡스글까지 가는 푸르공 버스 안이었다. 앞뒤로 마주 앉은 좌석에서 내 맞은편에 앉은 아주머니는 아이가 칭얼대자 가슴을 꺼냈다. 쪼물쪼물과 쪽쪽을 번갈아 했다. 아이는 눈을 감고 젖을 누르면서 잠이 들었다. 실제로 젖에서 모유가 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 아주머니의 나이가 꽤 많아 보였고 아이는 젖을 떼고도 남을 3~4살 정도였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아이는 젖을 만지며 편안해 했고, 곧이어 잠에 들었다.

몽골에서 만난 길거리 수유는 신선했다. 처음엔 눈을 어디다 둘 지 몰랐고, 두번째엔 모유를 수유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고, 그 다음엔 꽤 편해보였던 그들의 수유 방식에 익숙해졌다. 그리곤 그같은 길거리 수유가 사실은 원본, 그러니까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역시 불과 수십년전에는 데리고 다니던 아이가 울면 밥을 주기 위해 길거리 수유를 하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란 생각에 가서 닿았다. 당연히도 그랬을 테다.

길거리에서 수유하는 몽골 여성들을 봤을 때 어색해 했던 것은 나뿐이었다. 주변 누구도 수유에 대해, 공공장소에서의 가슴 노출, 젖 노출에 대해 이상히 여기지 않았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몽골에서 본 수유하는 여성은 전혀 야하지 않았다. 아이가 젖을 물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표정을 짓는다. 아이는 편안해했고 그런 장면을 바라보는 나 역시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색하고 눈둘 곳을 찾던 나야말로 ‘음란마귀’가 씌인 것임이 분명했다.

▶수유실은 ‘숨어서 먹일 것’ 상징= 국내 대형 마트나 백화점엔 대부분 수유실이 마련돼 있다. 지하철 역사나 도서관 공공기관 등에도 수유실이 있는 곳들이 많고, 회사에 수유실을 마련한 직장들도 적지 않다. 모성 보호를 위한 인식이 개선되면서다. 일하는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이자 역대 최악의 출산률 저하가 더 많은 육아 비용을 사회 전체가 떠안아야 한다고 믿는 인식이 보편화 된 것이 오늘이다.

대부분의 수유실은 내부가 보이지 않게끔 차폐된 공간이며 문이 열리더라도 바깥에선 안쪽을 볼 수 없도록 커튼이나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다. 가끔은 너무 대충 만든 탓에 수유실이 수유실 역할을 제대로 못할만큼 엉망인 곳도 있지만, 그래도 대형마트 편의시설로 마련된 수유실 공간은 꽤 깔끔하게 차려져 있다. 다만 이같은 수유실의 선한 의도와는 별개로 그곳에서 유축을 해야만 하는 사회 분위기, 아이에게 젖을 물리기 위해선 나만의 공간에 숨어서 해야하는 것이란 인식은 다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수유실이 마련된 이유는 여성의 가슴 노출이 사회적으론 ‘야한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때엔 출산을 한 산모가 자랑스럽게 가슴을 꺼내고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고는 하나, 이미 기백년 전 이야기다. 지금은 가슴을 내놓고 다녔다간 때에 따라 경범죄로 처벌 받을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선 한 여성 연예인의 ‘브래지어 미착용’ 이야기가 뉴스가 된다. ‘여자도 웃통 좀 벗자’는 페미니스트 운동이 때마다 뉴스에 등장하는 것도 ‘젖·가슴·유방’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상징한다.

사실 한국 사회도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아기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길거리에서 수유하는 모습은 익숙한 모습이었다. 길거리 수유가 많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70년대 모유 수유율이 90%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산모들이 모유 수유를 했다. 수유 문화가 극적으로 바뀐 것은 1980년대 들어서다. 분유산업이 발달하면서 분유 시장이 커지고 모유수유율은 낮아졌다. ‘모유수유를 하면 가슴이 쳐진다’는 르네상스 시대 때 주장이 분유산업자들에 의해 한국에 수입되면서 모유 수유율은 1990년대 13%대로 떨어졌다. 불과 20년만의 변화다.

이후 여성의 가슴은 남성들의 ‘성적 대상물’이 됐다. 유방이나 젖이 아니라 ‘가슴’이란 말이 좀 더 고상하게 들리는 이유는 단어에서 ‘성(性)’ 연상 부분이 삭제됐기 때문이다. 가슴은 여자나 남자나 모두 가지고 있으니. 이후 여성의 젖은 아이들의 먹을 꺼리에서 음란물로 지위가 뚝 떨어졌다. 수유실이 엄폐·차폐가 확실하게 된 나홀로 공간이 된 것도 이같은 사회 문화적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다.

▶따가운 시선... 공공장소 모유수유= 우리 사회에선 공공장소에서 모유를 수유하는 행동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강하다. ‘다른 곳에 가서 하면 안되냐’, ‘보기에 불편하다’는 글들이 온라인 상에도 적지 않다. 모유 수유가 유별난 행동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 근저에는 여성의 젖을 음란물로 바라보는 인식이 깔려있다. 그같은 인식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가리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모유 수유를 하려면 불가피하게 화장실에 가서 먹였다는 사연들이 넘쳐난다. 화장실이라는 비위생적인 환경보다 더 무섭고 견디기 힘든 것이 ‘유별난 행동’으로 낙인 찍혀버린 공공장소에서의 모유 수유에 대한 비뚤어진 인식이다. 불과 40~50년 전에는 한국에서도 일반적이고 보편화됐던 행위였는데도 말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공공장소에서 모유수유를 하자는 캠페인도 벌어진다.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자는 일환에서다. 관건은 이미 성적 대상물이 돼 버린 여성의 젖에서 어떻게 ‘음란성’을 분리 추출해내느냐다. 정치인들도 호오가 분명한 캠페인에 대해선 쉽사리 나서지 못한다. 결국은 뜻이 맞는 시민들이 먼저 나서야 할 듯 하다.

▶엉덩이 대신 유방?= 사람의 유방은 특이한 점이 있다. 수컷의 경우 대부분의 동물들은 젖꼭지가 없는데 비해 유달리 인간 남성에겐 젖꼭지가 꽤 큰 크기로 달려 있다. 여성보다는 강도가 덜하나 사춘기때 남자들도 젖몽우리가 지는 점도 특이점이다. 암컷의 경우 침팬지나 고릴라는 수유를 위해 새끼를 낳았을 때에만 유방이 부풀지만 인간의 경우엔 출산과 무관하게 지방으로 가득찬 유방이 상시 부풀어 있다. 이상한 일이다. 또 대부분의 동물들은 유방이 배에 있다. 인간만이 심장에 가까운 곳에 유방이 생긴다.

유독 인간 여성의 유방만이 가지는 특성에 대해 현재까지 나온 가장 그럴 듯한 설명은 ‘성기 대체설’이다. 네발로 다니는 암컷 짐승들은 자신의 성기를 수컷들에게 보여주고 냄새를 맡게 함으로써 수컷들을 유혹했다. 그러나 인간 여성은 직립 보행 습성으로 자신의 성기가 수컷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적어졌다. 이 때문에 인간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기 위해 성기를 대체할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유방이 발달했다는 설명이다. 유방이 클 수록 수컷과의 교미 횟수가 늘어났고, 유방이 큰 암컷이 자손을 낳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오늘에 이르게 됐다는 설명이다. 진실이든 아니든 설명은 그럴싸 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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