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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밥 May 09. 2021

의대생이라서?… ‘한강 실종’ 호들갑이 불편한 이유

2019년 대한민국에서 신고된 실종 사건 가운데 미해결 건수는 1400건을 넘는다.

지난 2019년 기준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18세 이상 실종자(가출인) 가운데 미발견된 사람 수는 1436명이다. 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이 239명으로 가장 많고, 경기도(남부+북부)에선 모두 240명의 어른이 실종됐다가 집으로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 실종자 수는 2015년 이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데, 2015년 338명, 2016년 489명, 2017년 671명, 2018년 809명이다. 2019년에는 유달리 많은 사람이 실종 신고가 됐으나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는 경찰에 접수된 실종 신고 건수를 기반으로 작성된 경찰청 통계이기에 미신고 건수를 포함하면 실제 실종자의 수는 숫자로 드러난 통계치보다 더 많을 수 있다.

올해 4월 25일 새벽, 한강 세빛 둥둥섬 인근에서 두명의 대학생(A=실종자. B=친구)이 술을 마시다가 한 명이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건 발생 전후 상황을 종합하면, B가 4월 24일 밤 10시30분께 A에게 ‘술을 마시자’고 제안했고 A는 이를 받아들여 한강 둔치에서 술을 마셨다. 이후 새벽 3시께 B는 A씨를 놔둔 채 홀로 귀가했고, CCTV에는 B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녹화됐다. 문제는 A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점인데, 인근에서 발견(4월 30일)된 A의 시체에선 두부 자상 흔적 2곳이 확인됐다. 다만 두곳의 자상은 직접 사인이 아니라는 국과수의 결론이 나왔다. 9일 현재 경찰은 사고를 직간접 목격한 목격자 8명의 진술에서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고 발표했으나, ‘일치하는 지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고 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한강 실종 대학생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을 부탁드린다. 이 학생의 죽음은 사고가 아닌 사건인 듯하다. 숨진 학생과 남아있는 부모님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글이 올라왔고,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청와대는 사건 수사가 마무리 되는대로 행안부-경찰청 등을 통해 사건 전모를 설명해야 할 상황이다. 재밌는 지점은 ‘사고가 아닌 사건’이라는 추정이 게시글에 담겼다는 점이다. 살인 사건인지 아닌지, 현재까지 드러난 증거들만으론 가늠키 어려운 것이 진실이다. 내가 보기엔 술먹은 대학생의 실족사 가능성이 가장 크지만, 이미 20만명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 사고를 ‘사건’으로, 그리고 그 가해자는 친구 B일 것이라 가정하고 접근한다.

사건을 접하는 다수의 국민들이 느끼는 상황 인식은 매우 단정적이다. 사고 가능성을 높이는 증거는 배제하고 이미 친구 B는 촉망받는 친구 의대생을 죽인 범인이 돼 버린 상태다. 확보된 증거들 가운데 '사고 가능성'을 높이는 증거는 동영상이다. A와 B는 4월 24일 밤부터 25일 새벽까지 서로의 휴대폰으로 서로를 찍어줬다. 그 동영상에는 술을 마시고 나무에서 뛰어내린 뒤 비틀 거리는 장면이 녹화돼 있다. 그들이 마신 술의 양도 소주 2병이고, 맥주까지 하면 그 이상을 먹었으며 청하도 음주 주종에 들어가 있다. 미주취 상태라면 하지 않을 ‘용감함’이 그들이 서로를 찍어준 영상에 남아있는 것이다. 4월 24일 저녁 11시께부터 새벽 3시까지 휴일을 앞둔 젊은 20대 남자가 한강 둔치에서 술을 마셨다. 적게 마셨다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다.

또 술을 마신 공간은 반포대교 하단으로 4월 24일 밤은 꽤나 따뜻해 야외 활동에 큰 무리가 없는 날이었으며, 25일은 일요일로 다음날이 휴일이기에 마음 높고 술을 마실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말하자면 주말 한강변에서 술을 마신 뒤 실종된 대학생 사건이 이 사건의 본질이고 정의다. 그런데 무슨일인지 이같은 단순사건에 다수 국민들이 A군 아버지 말에 하나하나 동감과 동의를 표하며, 아버지의 아픔을 풀기 위해선 B가 범인이 돼야 한다는 확신을 가진 상황이 되고 있다. 경찰마저 ‘일치된 진술’에 대해 발표를 미룰만큼 뜨겁다. 비정상적인 사태다. 한해 1000명이 넘는 실종자들 가운데 유달리 A군 실종 사태에만 관심이 깊다.

A군이 의과대학 대학생이 아니었더라도 이같은 관심을 받았을까. 최초 보도된 기사들의 제목도 ‘의대생 실종사건’, ’실종 의대생 미스터리’ 등으로 그가 의대생이란 점에 초점이 맞춰졌다. 의대생은 술마시고 실족할 가능성이 없는걸까. 아니면 의대생이란 장래 촉망받는 젊은이를 둔 아버지의 아픔은, 의대생이 아닌 자식의 실종·사망 사건을 겪은 아버지의 아픔보다 더 클 것이란 가정이 가능하기 때문인가. 의대생이건 아니건 모든 실종 사건과 미심쩍은 사고·사건의 진실은 규명돼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A군 아버지의 아픔에 과잉 투사된 대중의 공감은 B군이 범인이 아니어선 안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A군의 아버지는 함께 술을 마신 B군을 거의 범인으로 단정하고 있다.

실종된 A군의 시신은 실종 5일만인 지난 4월 30일 음주 지점 인근에서 발견됐다.

A군 아버지의 현재 상태는 ‘분노’다. A군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고, A군이 실족사했을 가능성은 낮으며, B군이 신발을 왜 버렸는지가 의심스럽고, B군이 다시 한강변을 찾았을 때 왜 옷을 갈아입었는지에 대해서도 의혹의 시선을 보낸다. 또 B군이 왜 A군의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는지, 왜 A군의 부모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는지도 원망스럽다. A군의 장례식에 나타나지 않은 이유도 분노의 원인이 되고, B군이 ‘미안하다’는 얘기가 없었다는 점도, 최면수사에 참가하면서 변호사를 대동한 것 마저도 A군의 아버지 눈에는 B군이 범인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왜냐하면 A군의 아버지는 아직 A군의 죽음을 못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같은 A군의 아버지의 분노에 다수 국민들까지 과잉공감 하게 되면 또다른 피해자가 생겨날 가능성이 커진다.

하나 더 보태자. 공권력이 한 사건에 과잉하게 수사력을 집중시키면 그 외의 사건에선 수사 공백 사태가 빚어진다. 수사력은 한정된 자원이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 역시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며, 특정 사건이 이슈화될 경우 여타 사건은 소홀하게 처리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졌을 때, 여타 질병·사고 처리에 병원의 대처가 느려지게 되는 이치와 같다. A군 아버지의 아픔에 상당부분 공감하면서도 A군 사건 때문에 가볍게 다뤄질 수 있는 또다른 수백건의 실종 사건들이 생겨나선 안된다고 믿는다.

A군이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는 밝혀져야 한다. A군 시체에서 발견된 2곳의 후두부 자상의 이유와, A군의 뺨에 있던 근육이 파열된 이유도 확인이 됐으면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또다른 피해자가 생겨나서는 안된다. A군이 의대생이라는 이유로 과잉 이슈화 되는 것 역시 나는 불편하다.


▶4월 22일 20대 이선호씨가 300kg 철판에 깔려 숨졌다. 그러나 이 사건은 크게 보도되지 못했다. 평범 대학생 20대와 의대생 20대의 죽음은 값어치가 다르다.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21050924907


▶'착함 증후군’은 엉뚱하게 발현된다. B군이 범인이란 A군 아버지의 단정적 상황 인식은 네티즌들에 의해 여러 루머로 재확산됐다. 세브란스병원이 나서서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12372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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