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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로빈 Jan 31. 2021

1월의 인턴 일기

자리는 진짜로 사람을 만든다


1월의 인턴 일기

자리는 정말로 사람을 만든다


동료로서 함께 일하는 것과 상사로서 함께 일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동료로서 일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서로 동등한 위치에 있음을 전제로 한다. 일의 배분과 처리과정, 그리고 결과까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 없이, 또는 침범하더라도 서로의 양해 하에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진다. 하지만 상사와 하사의 관계는, 그야말로 위계질서를 전제로 굴러간다. 상사의 메리트는 일을 '시킬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는 점이다. 일을 시킨다는 것은 그것의 책임을 전가시킬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비록 그 일이 하사보다 본인에게 더 중요한 무게를 지니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다시 말하면, 상사는 자신의 일의 중요도가 너무 높거나 자신 스스로 그것을 해 나갈 여력이 되지 않을 때 아랫사람에게 그것을 돌리고, 그 일의 결과물에 대해서 그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권력을 가진다. 그것은 도의적으로 보기에는 비겁하나 사무적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 한 가지, 상사로서의 권력을 가진다는 것은 일정 부분 하사에 대한 전유를 과시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유를 과시한다는 말이 좀 어려울 수 있어 쉽게 말하면, 요컨대 상사는 하사에게 감정노동을 시킬 수 있는 파워를 지닌다. 쉬운 이치다. 하사는 상사가 잘 해내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일을 그런 식으로 해요?'라고 물어볼 수 없지만 상사는 하사에게 '일을 그런 식으로 해요? 그런 식으로 할 거면 하지 마세요.'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말을 들은 하사가 기분이 상했음이 느껴지면, 그 하사의 기분을 자신의 마음대로 풀 수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사무적으로 보았을 때는 기분을 풀어준 것으로 칠 수 있는 이벤트를 열 수도 있다. 가령, '아까 그렇게 말했다고 화났어요? 술 한잔 하죠.'라고 말한 뒤 몇 시간의 수다와 농담과 술값 계산 치레로 자신이 시킨 감정노동을 없었던 일로 하는 방법이 있다.)


사람을 부릴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 도취해 있는 사람은 다르다. 자신이 타인에게 일을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전가할 수 있음을, 그 전가한 것에 대해서 감정적으로까지 상대방을 휘두를 수 있음을 인지하고 그 권력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만끽하는 사람은 사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인간으로서는 그다지 좋게 느껴지지 않기 마련이다. 1월의 내가 인턴으로서 느낀 것은, 생각보다 자신의 위치에서 하는 업무의 내용보다 자신이 있는 위치 그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는 꽤 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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