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떠난 느린 시간들 7화
전통 의상을 입고(호의에 대한 경계)
해가 저물어가자 물은 차가워졌다. 저녁은 무이네 시장으로 가서 먹기로 했다. 우리 가족은 작년에 베트남에서 샀던 전통 의상으로 갈아입었다. 옷을 갖춰 입고 리조트 정문으로 향하는 차량을 기다리는데, 멀리서 다가오던 기사님이 갑자기 차에서 내렸다. 우리의 모습을 보고 예쁘다고 말씀하시며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정중히 거절했다. 혹시 사진을 찍어주고 팁을 기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기사님은 환하게 웃으며 진심으로 찍어주고 싶다고 하셨다. 결국 우리는 휴대폰을 기사님께 맡겼고, 그는 단순히 몇 장의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동영상까지 촬영하며 우리에게 저쪽으로 걸어가 보라고 했다.
차량타고 이동중에도 예쁜 장소가 있으면 멈춰서 우리 가족의 모습을 담아 주셨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이분이 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의 모습을 아름답게 기록해 주고 싶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뜻밖의 친절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충분한 정보를 찾지 못한 터라 어디에서 식사를 해야 할지 몰랐다. 예약한 그랩 차량을 타고 무이네 중심가로 향했다.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면 실패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일요일이어서인지 문을 닫은 가게가 많았고 깨끗한 레스토랑을 찾기 어려웠다.
가족끼리만 왔다면 현지인들이 가는 작은 음식점에서 먹었겠지만, 부모님이 계시기에 위생적인 곳을 찾기로 했다. 결국, 처음 내렸던 곳으로 돌아와 길거리 음식점 중 하나를 선택했다. 네 군데의 가게가 줄지어 있었고 사장님들은 우리 가족을 바라보며 본인들의 가게로 방문해주길 바라는 눈빛이였다. 우리는 빠르게 주변을 스캔하며 가장 깨끗해 보이는 곳을 골랐다. 엄마, 아내, 나 모두 같은 곳을 선택했다. 사람보는 눈은 다 똑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간단하게 쌀국수, 아이들을 위한 고기밥, 계란이 올라간 요리를 주문했다. 이곳은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곳이라 간단한 영어조차 통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휴대폰 번역기를 이용해 주문을 마칠 수 있었다.
음식이 나왔다. 쌀국수는 단맛이 강했고, 먹을수록 후추 맛이 점점 더 강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기대했던 맛은 아니었지만 사장님에게 '맛있다'는 표현을 하고 싶어서 싹싹 긁어먹었다. 부모님도 입맛에 맞지 않으셨을 텐데 아무 말 없이 드셨다.
우리가족은 시장에가서 과일을 사기로 했다. 음식점 사장님께 이곳의 재래시장에서 망고와 포멜로의 가격을 미리 물어보았다. 혹시나 바가지를 쓰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막상 시장에 가 보니 내 걱정은 기우였다. 상인들은 모두 동일하게 1kg당 3만 동이라고 말했다.
나는 아직까지 베트남에서 정직하지 않은 상인을 만나 본 적이 없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큰돈을 내밀어도 늘 정확하게 거스름돈을 주었었다. 이런 작은 부분에서 선함과 따뜻함이 느껴지는것 같다.
우리 가족은 전통 의상을 입고 있어서인지 시장의 상인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예쁘다'라고 해 주었다. 아마도 아이들이 함께 있어서 더 예쁘게 봐주신 것 같았다. 나 혼자 시장을 둘러보았을 때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오니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이곳에서는 덜 익은 초록색 망고를 주로 먹기 때문에 한국에서 흔히 보던 노란색 망고를 찾기가 어려웠다. 초록색 망고의 새콤한 맛이 엄마의 입맛에 잘 맞는 듯했다.
다시 시장을 둘러보며 노란색 망고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추가로 구입했다. 선크림을 발랐음에도 불구하고 물놀이 후 강렬한 햇볕 탓에 얼굴과 몸에 화상을 입은 아이들을 위해 오이를 사러 마트에도 들렀다.
이곳 마트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을 할인 판매한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오이와 포멜로를 반값에 구매할 수 있었다. 작은 절약이지만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숙소로 돌아와 노란 망고를 잘라 보니, 우리가 평소에 먹던 그 말랑하고 달콤한 맛이었다. 내가 씻고 나온 사이에 아이들이 거의 다 먹어버렸지만, 아내가 "아빠도 맛 좀 보게 남겨 둬"라고 말한 덕분에 조금 남아 있었다. 포멜로는 아내가 특히 좋아했지만, 아이들도 맛을 보더니 금세 다 먹어 버렸다. 다음번에는 더 많이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피부를 진정시키기 위해 오이를 마사지를 했다. 슈퍼에서 사 온 오이를 얇게 썰어 뜨겁게 달아올랐던 피부에 붙여주니 시원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처음 경험해 보는 오이 마사지에 재미있다는 듯 깔깔 웃었다. 여행지에서의 이런 소소한 순간들이 묘하게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이렇게 하루가 저물어 갔다.
내가 베트남 여행을 간다했더니 조카를 믿고 내일 새벽에는 두 삼촌과 이모가 한국에서 이곳으로 오기로 되어 있었다. 3박 5일 일정으로 여행을 함께 하기로 했다. 비행기 체크인을 도와드리고, 입국 절차까지 상세히 안내해 드렸지만 걱정이 되었다.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라 늘 여행사를 통해 해외여행을 다니셨는데, 이번에는 스스로 오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여정을 걱정하며 침대에 누웠다. 내일 무사히 도착하시기를 바라며.... 조금은 뒤척일 것 같은 밤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