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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리조트로 이동

가족과 떠난 느린 시간들(9화)

by 몽쉐르 Feb 1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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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다른 리조트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떠나기 전에 이곳에서의 기억을 더 많이 남기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나중에 이 사진들을 보면, 여행 당시의 감정이 다시 떠오를 것 같았다. 아름다운 배경을 살려 가족들의 인생샷을 남겨주고 싶었다.


부모님의 사진 촬영

먼저 아빠께 사진을 찍어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사진을 찍어 드린다는 말이 어쩐지 낯간지러웠지만, 용기를 내어 말하니 아빠는 흔쾌히 응하셨다. 운동을 꾸준히 하셔서 몸이 좋은 아빠는 사진을 찍는 것도 자신감 있게 임하셨다. 다양한 포즈를 자연스럽게 취하시며 "몸 좋아지지 않았어?"라고 물으셨지만, 나는 부끄러워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때 더 솔직하게 표현할걸 싶어 아쉬운 마음이 든다. 아빠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몸에 힘을 주셨고 다양한 포즈에도 흔쾌히 응해주셨다. 다행히 사진은 잘 나왔고, 아빠도 만족스러워하며 SNS 배경화면으로 설정하셨다.

부모님 사진

엄마께도 사진을 찍어 드리겠다고 했더니 "첫날엔 무슨 사진이냐"라며 손사래를 치셨다. 그러나 이내 부끄러워하시면서도 여러 포즈를 취해 주셨다. 부모님께서 아들 앞에서 사진을 찍는 순간, 몇 초간 카메라를 응시한다는 것은 부끄럽고 어색한 정적이 흐르는 시간지도 모른다. 하지만 멋진 배경 속에서 남겨진 사진을 보고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니, 나와 같은 마음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가족사진과 아이들의 반응

아내의 예쁜 모습을 남겨주고 싶었지만, 독사진은 별로 찍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아이들 사진

 이유는 묻지 못했다. 추측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아이들은 사진 찍는 시간이 길어지는 걸 참지 못했다. 아빠가 원하는 사진 한 장을 빨리 찍어주고 다시 물놀이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원하는 장면을 얻기가 어려웠다. 아이들이 사진 찍기를 귀찮아하는 걸 알기에 마음이 조급해졌고, 그 조급함이 사진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 순간에는 화도 나고 짜증도 났지만, 여행이 끝난 후 사진을 보면 결국 좋은 기억만 남는다.


걱정과 안도

그때 예온이는 갑자기 춥다며 타월을 감싸고 누웠다. 

몸이 안 좋아진 둘째

혹시 피곤해서 몸이 차가워진 걸까, 감기에 걸린 건 아닐까 걱정이 밀려왔다. "머리 아프니?" "몸이 아파?" 계속해서 물었다. 아이가 "괜찮아"라고 말할 때까지 멈출 수 없었다. 내 안의 ‘완벽한 여행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조용히 누워 있는 아이를 보며 나도 옆에 누워 여유로운 척했지만, 속으로는 초조했다. 한 시간쯤 지나자 예온이는 다시 물속으로 뛰어들겠다고 했다. "정말 괜찮아?"라고 다시 묻자, "이제 괜찮아졌어"라며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이들은 회복하는 속도가 다르다. 그제야 내 마음도 놓였다.


예상치 못한 변수

뜨거운 햇볕 아래 수건과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누워 있었다. 너무 더워지면 물에 들어가 식히고, 다시 나와 광합성을 하듯 햇볕을 쬐었다. 까만 내 얼굴이 점점 더 익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때 경연 삼촌에게 전화가 왔다. 삼촌은 12시에 체크아웃하고 호치민공항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지만, 10시 30분에 이미 체크아웃을 하고 공항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게다가 예약된 기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다. 당연한 일이었다. 기사님과의 약속은 12시였으니까. 나는 여유롭게 웃으며 삼촌께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며 기다리시라고 말씀드렸지만 삼촌의 급한 성격 때문인지, 내 마음도 덩달아 조급해졌다. 계획대로라면 11시 30분쯤 이모와 영권 삼촌 가족이 호치민에 도착해야 했지만,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면서 예상보다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원래 3시에 무이네에 도착해 여유를 즐길 계획이었지만, 조금씩 늦어지면서 6시쯤 도착할 것으로 보였다. 나는 이모 삼촌 가족을 초대하고 여행을 계획했지만, 상황이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 마음이 불안해졌다.


새로운 리조트로 이동

12시가 되어 우리는 체크아웃을 하고 그랩으로 택시 두 대를 불렀다. 짐을 싣기 위해 SUV 한 대, 나머지 가족이 타기 위해 소형차를 불렀지만, 두 대 모두 SUV가 도착했다. 아내와 아이들, 짐을 싣고 한 대에 나누어 타고, 부모님과 나는 다른 차를 타고 출발했다. 작년에 묵었던 판다누스 리조트로 향했다. 이곳은 바닷가 해변이 바로 앞에 있고, 오래된 리조트라 코코넛나무와 꽃나무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도착하자마자 따뜻한 바닷바람이 나를 맞아주었고, 작년과 변함없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치 고향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재방문으로 받은 바우처

체크인하면서 직원에게 "나 또 왔어요"라고 말했다. 그가 내 이름을 확인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반가워했다. 예상치 못한 환대에 기분이 좋아졌다. 게다가 서비스로 칵테일 두 잔과 음료 두 잔을 마실 수 있는 바우처까지 건네주었다. 내심 기록이 남아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기에,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진심 어린 환대가 느껴져  미소가 나왔다.

또 다른 기다림

열쇠를 받기 전까지 바닷가 카페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기다렸다. 

용과 칵테일

따뜻한 바람, 부드러운 파도 소리, 예쁜 과일이 올려진 칵테일. 모든 것이 완벽한 순간이었다. 엄마와 아이들은 바닷가로 게와 조개를 잡으러 갔고, 나는 카페에 앉아 글을 썼다. 한 시간이 지나자 예준이는 지겨운 듯 빨리 물놀이를 하고 싶다고 졸랐다. "체크인 후에 짐 풀고 수영하자"라고 달래 보았지만, 예준이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기다림이 힘들었을 것이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바로 앞 물놀이장 앞에서 기다려야 하는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니 이해가 되었다. 다그치면서도 어떻게 하면 예준가 더 빨리 물놀이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예준이는 그런 내 속마음을 알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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