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대관식인가, 잠시 쉬는 것인가
신의 장난일까, 혹은 신의 뜻일까. 다른 시대에 태어났으면 당당히 시대를 홀로 풍미했을 선수들이지만 신은 이 둘을 동시에 내려보내며 축구사 최고의 라이벌을 만들었다. 흔히 메호대전이라 불리는 두 선수의 라이벌 구도는 축구를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고 그들의 플레이는 다른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팬들에게 늘 충격을 주던 두 선수도 어느새 30살이 넘은 베테랑 선수가 되었다. 젊었을 때의 폭발적인 모습은 잃어버렸으나 연륜이 더해져 더 노련한 플레이를 하는 두 선수를 두고 우리는 ‘아직 축구 황제는 메시와 호날두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 역시 우리의 바람이었나 보다. 언제까지나 영원할 것 같던 두 태양이 서서히 지고 있는 듯하다.
축구계에서 지난 10년, 아니 그 이상을 휘어잡고 있던 두 선수, 메시와 호날두의 하락세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30대 중반을 향해가고 있는 그들의 나이를 감안한다면 아직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들의 이름이 메시와 호날두이기 때문에 요즘의 모습은 조금 아쉬움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그들의 후계자가 누구인가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유력한 후보로 꼽혔던 네이마르는 파리로 넘어가 거친 태클로 인한 부상에 시달리며 조금 내려온 느낌이 든다. 황제의 칭호를 넘겨받을 자, 누구인가. 어느 순간 음바페와 홀란드가 치고 나왔다.
개인적으로 지난 한 해는 유망주들의 춘추전국시대였다고 생각한다. 도르트문트에서 어마어마한 활약을 보여왔던 제이든 산초,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줬던 레버쿠젠의 카이 하베르츠, 부상에 시달렸지만 경기에서 마법사와 같은 모습을 보여줬던 아틀레티코의 펠릭스, 이제 막 검증이 시작된 홀란드, 가장 앞서있던 파리의 음바페까지, 메시와 호날두의 뒤를 이을 선수에 대한 구도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음바페가 유력한 후보로 점쳐졌다. 그러나 이번 시즌 홀란드의 득점력이 폭발하기 시작하면서 메시와 호날두의 라이벌 구도처럼 음바페와 홀란드의 라이벌 구도가 이어질 것이라며 메호대전을 이용해 ‘음란대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경기, 황제의 대관식이 펼쳐졌다.
캄노우에서 펼쳐진 파리와 바르셀로나의 16강 1차전 경기, 네이마르와 메시의 대결로 초기에 이목을 끌었으나 네이마르의 부상 이후 음바페와 메시의 대결로 바뀌었다. 시즌 초 흔들렸던 바르셀로나지만 최근 안정적인 경기력으로 흔들림을 바로잡은 모습이었고 아무리 무관중이라지만 스페인 원정은 모든 팀들이 어려워하기에 막상막하의 대결이 펼쳐질 것이라 예상되었다. 그러나 실제 경기 양상은 파리의 독무대였다. 부스케츠와 메시의 기동력 저하, 페드리의 경험 부족, 수비 불안은 파리에게 좋은 먹잇감이었고 베라티를 필두로 한 중원은 바르셀로나를 압도했다. 음바페와 퀴르자와는 데스트를 집요하게 공략했고 불안한 바르셀로나의 수비라인은 실수를 연발했다. 후반에도 이러한 양상은 바뀌지 않았고 메시가 먼저 페널티킥 득점을 올렸으나 모이세 켄의 1골과 음바페의 해트트릭으로 파리가 바르셀로나에게 4대 1로 대승을 거뒀다. 물론 이런 큰 점수차를 바르셀로나가 뒤집은 적이 없는 것은 아니나 1차전 바르셀로나의 경기력, 원정 득점을 고려하면 파리가 8강 진출의 9부 능선을 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선수단 구성이 다르긴 하지만 공격의 선봉장이었던 음바페와는 다르게 메시가 조금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팬들은 이제 진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이냐며 기대를 모았다.
메시가 먼저 좌절을 맛봤다면 호날두는 다음날 좌절을 맛봤다. 포르투와 유벤투스의 16강 1차전, 호날두가 침묵하며 유벤투스는 포르투에게 2대 1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물론 안정적인 바르셀로나와는 다르게 유벤투스는 초보 감독인 피를로와 함께 기복 있는 모습을 보인다. 불안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으나 그래도 상대적 약팀으로 꼽히는 포르투에게 덜미를 잡힌 것은 충격적이다. 또한 공격의 선봉장 역할을 해줘야 하는 호날두가 막히며 아쉬운 경기력을 보여줬다. 이때 사람들의 관심이 다른 경기장으로 향했다. 또 다른 신예가 불을 뿜었기 때문이다. 세비야와 도르트문트의 16강 1차전, 홀란드는 두 골을 뽑아내며 팀의 3대 2 승리를 이끌었다. 오스트리아 리그에서 황희찬과 함께 주목을 받은 홀란드는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도르트문트에 합류했다. 그의 득점력은 변방 리그에서 보여준 것이기에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홀란드는 팀에 합류하자마자 적응이 필요 없는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주며 레반도프스키의 강력한 공격수 라이벌로 떠올랐다. 그리고 시작된 이번 시즌, 그의 득점력은 완전히 물이 올랐다. 이는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이어졌는데 최근 분위기가 좋은 세비야와의 대결에서 홀란드가 날아오른 것이다. 물론 음바페와 메시처럼 직접 맞붙은 것은 아니기에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호날두가 침묵할 때 홀란드가 불을 뿜는 모습이 파리와 바르셀로나 경기에서 메시와 음바페의 모습과 비슷해 사람들은 메날두의 시대가 지고 음바페 홀란드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오는 것 아니냐며 신예의 탄생을 반겼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축구 역사에 남을 위대한 두 선수를 동시에 보는 호사를 누렸다. 메시와 호날두의 대결은 모든 축구팬들이 주목할 만한 일이었고 축구를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항상 영원할 것 같던 그들도 어느새 나이가 들었다. 여전한 기량을 보여주고는 있으나 이전의 폭발적인 모습은 사라진 듯하다. 이제는 조금 쉬어도 되는 때가 온 것 같다. 이 라이벌 구도를 홀란드와 음바페가 이어받으려 하고 있다. 새로운 쌍두마차의 등장을 환영하듯 석양이 그들을 비춘다. 메시와 호날두라는 두 석양이 지고 있으니 새로운 태양을 맞이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