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을 마치고 예약해 둔 식사 시간에 맞춰 식당으로 갔다.
멋들어지게 한 상 차려진 일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충분히 맛깔난 신선한 회와 해산물, 각종 튀김들로 가득한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모처럼 편안한 자리와 고급진 음식들로 맛있는 식사를 즐긴 것 같다.
이래서 맛집맛집 하는구나, 료칸이 이래서 좋구나! 료칸이 다른 호텔보다 몇 배는 비싸긴 해도 전통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사우나 시설과 일본전통 고급요리를 맛볼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아내는 비싸더라도 웬만하면 료칸에 가자면서 식사 중에 귀띔까지 했다.
밤 9시!!
아이들을 방에서 놀게 하고 아내와 나는 밖으로 나왔다.
다음날 에코 뮤지엄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야경이라도 즐기고 싶어서였다. 바깥 온도는 영하 13도를 가리켰지만 체감은 더 추운 것 같았다. 내린 눈이 얼어붙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경쾌한 소리가 따라왔다. 가와유 온센에 흐르는 물들이 전부 온천수라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는데 마을이 온통 수증기와 유황냄새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하수구 구멍에서도 수증기가 뿜어져 나온다. 순간 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으면 대박 났을 텐데...
온천길을 따라 걷다가 드문드문 촛불로 밝힌 길이 숲 속 어딘가로 이어진 것을 발견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이벤트라도 하려는 듯 길 가장자리에 가지런히 이어진 촛불들이 아기자기하면서 예뻤다. 누가 언제 그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촛불이 흰 눈에 반사되어 포근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아무도 없이 그저 촛불이 이끄는 숲길을 따라갔더니 에코 뮤지엄 건물이 나타났다. 밤이라 건물은 닫혀 있었지만 숲 주변을 촛불로 계속 밝히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 살아온 10년 넘는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면서 아름답고 조용한 야간 산책하며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보험까지 깨고 홋카이도에 오길 정말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밤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동네였다.
숙소로 돌아온 아내는 이 시간, 이 공간에서 잠을 자기 너무 아깝다며 먼저 자라고 했다.
쇼운코 온천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타기 위해 우체국 앞에서 기다렸다.
학생들이 버스에 오르는 것을 보고 여긴 겨울 방학을 안 한 건가? 생각을 했다.
교복차림의 일본 학생들이 웃고 떠들고, 정겨워하는 모습이 우리나라 아이들과 똑같아 보였다.
근데 일본에는 겨울방학이 없나?
7시 45분 기차를 타고 가미카와로 갔다. 그곳에서 버스로 다시 갈아타야 한다.
눈 덮인 바다를 조용히 관람하며 한 량짜리 기차에 매달려 달리고 또 달렸다.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오호츠크해 아침 해변은 그야말로 예술 그 자체였다. 말로만 듣던 북해도 열차, 바다가 다르게 보이고 자연이 만들어 낸 예술품처럼 아름다웠다.
간간히 바다 위를 떠 다니는 유빙을 볼 수 있었는데 바다에 얼음이 떠다니는 걸 보니 춥긴 추운가 보다.
나에게 이런 인생이 있다니... 이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눈발이 점점 거세졌다.
홋카이도의 북쪽은 삿포로나 노보리베쓰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여기서는 온 천지가 설국이며, 세상이 얼어붙어 버린 것만 같았다.
기차가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는데 유리창에 붙어 있던 눈이 녹더니 물이 되어 빗물처럼 유리창에 흘러내렸다. 젠장 이 것도 아름답다니 도대체 홋카이도라는 곳이 얼마나 더 아름다운 감성을 내 안에서 끌어낼 요량인지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터널 저편에는 또 다른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며 어두운 터널을 즐기는 시간도 나쁘지 않았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낮은 기온 탓에 흘러내리던 물방울이 그대로 멈춰 서 버린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리고 눈보라.
하얀 눈이 세상을 지워 버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