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거친 과거와, 불안한 현재와, 그걸 지켜보는 미래.
얼마 전에는 소설을 읽었다. 이동진 작가의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이동진 저, 위즈덤하우스) 추천 목록에서 봤던 책이고, 오로지 제목만을 보고 고른 책이라 기대하는 바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늘 그렇듯,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에너지를 쓰며 몰두하는 모든 것들에는 다 이유가 있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을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인생을 대신 살아보려는 시도로 여길 수 있다. 오늘이 끝나기도 전에 내일이 찾아오는 바쁜 사회에서, 소설을 통해 다른 삶으로의 여행을 다녀오는 것은 돌아오고 나서도 남아있는 우리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의 등장인물들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며 느낀 바를 정리하고자 한다.
내가 아까 우리 중에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죠?
그런데 현재를 제대로 보는 사람도 많지 않아요.
그가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시간 개념과 밀접한 관계를 갖기 때문에, 책에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자주 언급된다.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몇년 몇월에 일본에 큰 지진이 난다거나 하는 예언에 귀를 기울이기 쉽다. 인간의 입장에서 미래는 불확실하기 때문에,근거 없는 소문을 통해서라도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럽다.
하지만 현재는 확실한가? 애초에 현재란 무엇인가? 가만히 앉아 1초 뒤의 미래를 정의해놓고 1초만 기다리면 그 시간은 고스란히 현재가 되어 우리를 지나가고 과거가 되어버린다. 현재를 정의할 수 있겠는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재인 편이 좋을 지 생각해보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내다보려는것 만큼이나 어색하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그렇게 과거와 현재, 미래를 나누어 놓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통해 책의 디자인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읽은 책은 연분홍색, 연보라색, 하늘색이 파스텔톤으로 칠해져 신비하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표지를 가지고 있다. 살면서 몇번 볼까말까 하는 이른 새벽의 하늘과 닮은 표지는 책의 분위기와도 닮아있다. 과연 이 책의 표지가 무채색이었어도 이 책의 분위기가 연분홍색, 연보라색, 하늘색과 닮아있다고 느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
주인공은 과거에 살인을 저질렀다.
죗값을 치른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비단 죄책감 뿐만은 아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으로 주인공을 대하는 인물인 아줌마의 행동 하나하나는 모두 어딘가 어색하기만하다. 아줌마가 주인공에게 연락하고, 찾아오고, 대화하는 방식 등 모든 것이 어색하지만, 그보다 더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그에 대한 주인공의 반응이다. 아줌마는 다름 아닌 주인공이 과거에 죽인 학생의 어머니다.
주인공이 과거에 잘못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다.
현재의 주인공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아줌마의 말과 행동에 대부분 수긍한다.
그의 이런 태도가 앞으로 지속될 수 있을까? 그가 다른 마음을 먹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걸까?
만약 앞으로도 아줌마의 말과 행동에 크게 저항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아줌마가 바랐던 모습일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둘을 바라봐야 하는 부담감은 우리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등장인물인 여자에게도 찾아온다. 그녀 또한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거나 편하게 해준다기 보다는 사소한 불편함을 남기는 존재에 가깝다. 그렇게 느낀 대표적인 대목은 다음과 같다(p85).
말을 하면서 여자는 생각했다.
내가 왜 이렇게 투정을 부리지? 어린애처럼.
실제로는 기분이 좋았다.
영화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기분은 좋았다.
아마 이렇게 투정을 부린 적이 너무 없어서일거야.
사는 동안 그런 적이 거의 없었어.
투정을 부리는 것은 일상적인 감정에 속한다고 본다.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누구나 불현듯 투정을 부릴 수 있다.
하지만 여자는 어른스러운 성찰로 투정 부리는 자신을 발견하자마자 투정의 이유를 가져다 붙인다.
심지어 그 이유는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어서'와 같은 미래에 대한 의지나 욕심보다는, 사는 동안 그런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는 과거의 결핍에 가깝다. 결국 그녀는 과거의 결핍으로 인해 있는 그대로의 감정이 아닌 또 다른 감정을 표현한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이 아닌, 또 다른 감정을 내비치는 것.
이것 또한 일상적인 감정과 행동이라고 봐줄 수 있다. 하지만 책 전체에 걸쳐 여자는 이렇게 '봐줘야하는' 말과 행동을 자주 한다. 과거의 결핍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 방향이 생산적인 방향이 아니라는 점이 안타깝다. 사랑과 결핍에 민감한 여자는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있다(p93).
그냥 이거 쓴 누나가, 부모님한테 되게 사랑받는 사람인 거 같다.
사랑없는 집이라는 게 어떤 건지 모르는 것 같아.
여자아이는 남자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았다.
사랑에 약삭빠른 여자는 주인공 곁을 서성인다. 그의 편의를 봐주고, 나서서 도와준다.
그녀가 선택한 그는 결핍으로부터 거리가 먼가? 그런 것 같다.
말재주도 뛰어나지 않고, 자신감도 부족해보이는 주인공으로부터 그녀가 찾아냈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시간의 흐름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 그리고 결핍을 가진 여자와 그런 그녀가 선택한 주인공의 곁.
이 시간/공간적 배경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은 다음과 같다(p127).
과거와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재만 보는 사람이 더 유리할 때도 있어.
여자가 말했다.
과거를 잊을 수 있으니까.
과거를 잊을 수 있기 때문에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어.
그러니까, 내가 널 지켜줄게.
그녀는 결핍을 해소하고자 다짐하고, 행동 수칙을 세워 실천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앞으로의 해결책을 위해 잊었던 과거를 돌이켜 볼 필요도 없었고, 미래를 내다볼 필요도 없었다. 주인공이 그녀에게 어떤 말과 행동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스스로를 구하고 성장시켰다.
그와 그녀, 그리고 아줌마의 이야기의 대부분은 후반부에 다다라서야 설명된다.
빛의 선에는 시작도 끝도 없었고 잠시 뒤에는 방향도 없어졌다.
오직 패턴만이 있었다.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미래로.
빛의 선에는 시작과 끝이 없었고, 응당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흘러야 한다는 방향도 없다.
'과거의 결핍이 있으니까, 내가 지금 이렇게 행동하고, 앞으로의 나는 이렇게 살고 싶어'와 같은 본격적인 문제 해결 의지도 없다. 빛의 선에 패턴만이 있던 것처럼, 또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도 스스로를 구하고 사랑했다.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