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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점 책방지기 May 15. 2021

비오는 월요일

내리는 비따라 서러움이 흐르는 책방지기

아침 출근길부터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내리는 비는 몸을 무겁게 만든다. 가라앉은 습한 공기. 폐부로 들어오는 차가운 비내음.  가뜩이나 큰 대로변에 위치한 매장 입구를 타고 찬바람이 매섭게 들어온다. 습한 공기는 책방지기에게 늘 고민거리가 된다. 실제로 습기 때문에 옆지기의 강변쪽 매장의 경우 여름 내내 제습기를 달고 살기도 했다. 


다행히 현재 내가 있는 소담서점은 대로변이지만 입구쪽 2층 아래 공용면적 부분이 통으로 트여있는 구조라 입구 꽤 멀리까지도 비가 들이치지는 않는다. 덕분에 아이들 스티커북류가 입구 유리쪽으로 진열 될 수 있었다. 

서점 운영의 천적이라고 할 만한 건 습기 말고도 태양이다. 나처럼 해바라기가 삶의 중요도를 차지하는 책방지기에게도 태양은 어쩔 수 없는 강적이 되곤한다. 


기본적으로 종이책은 종이에 인쇄를 한다. 표지의 경우 다양한 색상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거나 금박 은박으로 고급스러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책들에 직사광선이 그대로 꽂히게 된다라. 곧 인쇄된 책의 색들이 모두 바래져 버린다. 심지어 열악하게 인쇄된 노란색의 경우 그저 실내 조명만으로도 색이 빠져 우중충해진다. 

이쯤 되면 무슨 땅파서 짓는 농사도 아니고 그저 하늘만 바라보는 입장이 되어버리기 쉽다. 


아침에 일어나서 처음 하는 일과가 일기예보 확인이다. 아무래도 비가 오면, 필요한 책도 좀 미루어 구입하게 되는 경향이 강해진다. 대신 전화벨은 연신 울린다. 날이 맑으면 산책삼아 드라이브삼아서라도 서점으로 향해 책을 구입하게 되지만 비가 오는데 헛걸음 할지도 모르는 서점에 일부러 오기는 쉽지 않다. 


대형 서점이 주는 서비스 중 하나가 그래서 매장별 재고 확인이라는 거 아니겠는가. 


물론 대형 서점에도 전화는 온다. 하지만 직원이 많은 대형서점과 나처럼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심지어 판토마임까지 해야하는 1인 책방지기에게 전화는 때로 공포를 주는 대상이다. 


특히 비오는 날 오는 전화란 정말이지 꺼놓고 싶을 정도일때도 많다.


"무슨무슨책 있어요?"


"잠시만요."


컴퓨터로 전산재고를 확인해본다. 하지만 영세한 우리가 사용하는 전산프로그램이 정확할리가... 


나는 부랴부랴 좁은 통로를 지나 책장앞으로 간다. 눈알을 바삐 굴리며 전화 속 미지의 고객이 불러주는 제목의 도서가 무엇인지 찾기 시작한다. 그나마... 목소리가 크거나 또박한 발음은 알아듣기가 양호하다. 하지만 대체로 본인도 무슨 책인지 잘 모르고 문의하는 경우가 많기 떄문에. 


특히나 요즘처럼 유튜브를 통해 잠깐 소개받은 책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떄로 무슨무슨 유튜브에서 소개한 책이에요. 그 유명한 그 유튜버 있잖아요. 흠... 솔직히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와 비스무리하다. 


그럴때면 잽싸게 머리를 굴려야 한다. 


첫번째, 목소리로 듣는 고객의 연령대나 직업군을 유추해야한다. 일반전화 지역번호로 전화를 주는 경우 주로 업무 중 잠깐 짬을 내서 전화문의를 하거나, 업무에 필요한 도서를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단어하나를 알아듣고 검색을 시작한다. 물론 거래처 온라인 유통망을 통해서. 그러면 비스무리한 책들의 목록이 뜬다. 거기서 하나를 특정지어야 한다.


두번째, 요즘 휴대폰의 기능이 좋아져서 전화가 울릴때 해당번호로 이전에 통화했거나, 문자를 주고받은 기록이 힌트처럼 짧게 표시되고는 한다. 그럴땐 머릿속을 다 뒤집어 어떤 책을 구입했던 고객인지 기억해내려고 노력해보아야 한다. 아무래도 연관성이 있을지 모르니까. 


세번째, 일단 다시 전화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는 차분히 무슨 책인지 고민한 후 거래처 전산망과 우리 책장을 매칭시켜 재고 여부를 확인한다. 


결론... 우리 서점의 도서검색기는 바로 사장인. 나! 바로 나인것이다.


"혹시 도서 검색은 어디서 할 수 있어요?"


도서관 또는 대형서점들이 들여놓은 도서검색기에 익숙한 동네서점 초보고객분들이 내게 묻는 질문이다. 그러면 나는 웃으며 답한다. 


"저요. 인간 도서검색기입니다. 무슨 책을 찾으실까요?"


그러면 열에 열은 모두 눈으 커다래 진다. 18평의 작은 서점이지만 꽂혀있는 도서의 권수는 거의 만여권에 육박한다. 아니 문제집까지 하면... 이만여권일지도. 사실 나도 잘 모른다. 그저 책장 한칸에 들어가는 도서의 권수가 두께에 따라 20권~40권 정도이고, 우리 매장의 책장이 12칸짜리 책장으로 30개정도 되니까 단순계산으로도 만권이 넘는다. 거기에다가 여기저기 진열되어 있는 책들과 숫자로 세기 힘든 스티커북 종류까지 따지자면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권수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더구나 우리 서점의 경우 같은 책을 여러권 구비하지 않고 거의 1~2권 정도 구비한 채 판매되면 재입고되는 시스템이다. 그야말로 다양한 종류의 책으로 그 권수를 채우는 것이다. 그러면 동시에 내 머릿속에도 그 만큼의 도서의 목록이 존재해야 도서검색기로서의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혹여 머리 좋다고 자랑하느냐고 묻지는 말아 주길. 1인 책방지기가 주로 비오는 날 하는 일을 보면 이해가 될 지도 모른다. 비가오면 일단 방문 고객은 적다. 비를 뚫고 방문하는 고객은 정말로 꼭 필요한 책을 구입하려고 급히 오는 분들과 비를 피해 잠시 구경할 거리를 찾는 지나가는 손이기 마련이다. 나부터 비오는 날 우산을 쓰고 걸어다니기는 그닥 내키지 않으니까. 


더구나 빗길 운전은... 안개가 자주끼는 세종에서 그닥 내키는 일은 아님이 분명하다. 비가 오는 한가한날. 특히나 먼지가 적게 일어주는 때가 되면 부지런히 책을 뺀다. 그리고 위치를 바꾼다. 지금이 아니면 복작거리는 서점에서 손님이 책을 고르는 동안 도서 재배치를 해야할지도 모르니까. 


도서 재배치라니. 그저 출간되서 도착하는 대로 꽂아놓으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분들. 

서점은 그야말로 육체노동의 산실이다. 


갓 출간되어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들은 최신간 매대로 향하거나 관련 도서들 중 아무래도 제일 눈에 잘 띄는 곳에 두어야 한다. 왜? 그래야 고객들이 "아~ 이책이 신간이구나" 라고 흥미를 갖게 되니까. 그러려면 일단 최신간 매대에서 일반 책장으로 옮겨져야 하는 책들이 자리를 비켜주어야 한다. 


최신간일때 아직 홍보가 미진해서, 또는 이 지역 고객들의 취향에 맞지 않아서. 또는 진짜 너무 최신간이라서. 또는 이미 여러권 판매되어 재입고 된 도서거나. 다양한 이유들로 최신간 매대에 꽂혀있는 책을 옮겨 꽂아야 한다. 그리고 일반 책장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있던 책방지기가 선정한 나름의 베스트셀러 칸에서 옮길 책을 골라 내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수북히 책이 한가득 여기저기 쌓이기 마련이다. 그럼 이 책들은 또 어딘가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마치 도미노처럼 하나가 다음 하나를 밀어내는 상황이 자연스레 발생한다.


그때 또한번의 고민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어떤 이유로든 서점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은 내가 팔고 싶은 책이란 뜻이다. 그런데 그 아이들을 반짝반짝 윤이나게 진열했다가 뒤로 밀어내기란 여간해서는 하고싶지 않은 일이기 떄문이다. 

이런 이유들로 서점의 첫 오픈 당시 책장 갯수는 적었으나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책장이 빼곡히 들어차게 된다. 나는 그래서 아예 기성 책장을 주문해서 고정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고는 한다. 언제 또 책장이 늘고 줄지는 신간 출간량에 딸서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내 주머니 사정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여하튼 그러다보면 뺴놓은 책들과 꽂아야 할 책이 어느정도 구분이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 출간일이 오래되었거나, 어쩔 수 없이 인기도가 하락한 책들의 경우는 안타깝게도 매장에서 나갈 준비를 시켜야한다.

이런 일들을 하다보면 어느틈에 추위도 잊고 헉헉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아픈 손목과 팔을 주물러 가며 책과 씨름을 하기 마련이다. 


서점진열에서 탈락한 도서들은 어떻게 되는지 아마 꽤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대체로 서점의 경우 현매와 위탁 두가지 방법으로 도서를 판매하게 된다. 현매란 도서의 대금을 미리 지불하고 책을 가져 오는 것이다. 반품이 되는 곳도 있고, 무반품 조건일때도 있다. 대체로 출판사 직거래의 경우 소규모 동네서점의 경우 무반품이 원칙일때가 많다. 위탁판매의 경우는 거래처로 다시 책을 돌려보내야한다. 이때 발생하는 물류비는 당연히 서점이 부담하게 된다. 그나마 책을 받을때 내는 물류비가 적은게 위안이랄까. 거래처로 돌려보내지는 책들은 대부분 다시 다른 서점으로 보내지거나, 해당 출판사로 반송된다. 그러니 곱게 예쁘게 포장해서 보내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품기한을 넘기거나 애초에 반품 불가 조건으로 구입해온 도서들은 고스란히 내 책장으로 넘어올 수 밖에 없다. 그러면 나는... 조용히 그 책들을 내 책 창고로 보내어 놓는다. 혹여나 절판되거나 급히 필요해진 고객이 나중에 찾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그렇게 모아둔 도서가 가끔 대박을 터뜨리기도 한다. 희귀 절판도서가 된다거나(이건 정말 오래 묵히거나, 전문서적을 잘 골라 사두었을때 이야기이다.) 온라인에서 핫하게 뜨거나 하면 다시 빛을 보고 고객에게 전달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이런 식으로 두었던 도서가 다른 서점의 요청이나 고객의 요청으로 빛을 보고 판매가 되면 왠지 더 뿌듯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책방지기의 마음일 것이다. 그러니 이쯤에서 서점을 방문하시는 잠재 구매고객분들께 제발 부탁드리길. 살살 살펴보시고 구매해주시길. 요즘은 미리보기로 볼 수 있는 책들도 많으니 굳이 종이를 구겨가며 넘길 필요는 없지 않은가. 뜯어진 채 진열된 과자를 사먹고 싶지 않듯이 구겨진 도서를 구입하고 싶은 사람은 드물기 마련이니까. 


책장 재배치가 얼추 끝나면 이제 나도 한숨 돌릴 타임이다. 이때 비가 그치고 해가 나오면 속으로 나는 쾌재를 부른다. 준비된 책장을 볼 고객이 올 것이기에. 비온 뒤 맑고 깨끗한 하늘과 청명한 공기를 맡으며 거리를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서점을 향할때가 있지 않은가. 책내음이 고파질때 말이다. 


하지만 저녁까지 비가 오게 되면 그날은 그냥 정리의 날이다. 맛있는 걸 먹거나 주전부리를 하며 그동안 못읽었던 책들을 읽다보면 어느덧 매장 문닫을 시간이 다가온다. 매출은 높지 않은데 왠지 몸은 무겁고 무지 피곤한 날. 바로 비오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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