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만 원에 사람이 죽었다.
병신….
죽긴 왜 죽니. 왜 죽냐고.
T가 자살했다.
그의 영정사진 앞에서 나는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장례식장 바닥에 앉아 그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처음에는 울지 않았다. 감정이라는 것이 단번에 찾아오는 게 아니라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눈물이 아닌 빈속처럼 뻥 뚫린 감각이 먼저 들었다. 멀쩡하던 사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걸 실감하지 못한 채, 이내 영정사진이 되어버린 증명사진 속 짧은 머리의 또렷한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자꾸 되뇌었다. 병신, 정말 왜 죽었냐고.
빚이 삼천이라 했다. 투자로 잃었다고. 그날 새벽 걸려온 전화를 나는 받지 못했다. 자고 있었다. 혹은 자는 척했다. 다음날 일찍 약속이 있었고, 마음이 좀처럼 일지 않아 전화를 외면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마지막이라는 건 그렇게 뒤늦게야 밝혀지는 것이다.
다음날, T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아침의 공기가 지금도 떠오른다. 차갑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방 안에 오래된 먼지 냄새 같은 게 떠다녔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전화를 쥔 손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한참을 떨었다.
그는 자신의 스물여덟 번째 생일을 하루 앞두고 목숨을 끊었다.
그가 남긴 부채는 전역을 앞두고 무리하게 투자를 하다 잃은 돈이라고 했다. 그는 군인이었고, 홀어머니를 모시는 가장이었으며 항상 무거운 책임을 자기 몫처럼 짊어진 사람이었다.
나는 그걸 잘 안다. 밤낮없이 병사들 일과를 챙기고, 월급을 알뜰하게 모아 어머니께 용돈을 부치던 사람. 그런 그가 고작 삼천만 원이라는 금액 앞에 무너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그걸 감당할 수 없다고 느낀 마음의 무게가 그를 무너뜨렸을 거라는 걸 나는 뒤늦게야 알았다.
세상과 조금은 단절된 군대라는 집단 안에서, 홀로 감당해야 했던 두려움과 절망이 고작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는 걸 눈치채고 나는 더 크게 울었다.
상실은 그렇게 내게 찾아왔다. 예고도 없이 어떤 전조도 없이 말이다. 내게 남은 건 한 통의 부고와 그날 아침의 정적.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들리던 냉장고의 진동 소리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떠난 이후에도 계절을 살아야 했다. 익숙한 길을 걸어도 발끝이 허공을 디디는 것 같았고, 사람들 틈에서 웃다가도 목구멍으로 가시가 치밀었다. 장례식장의 휘황한 조화들과 나무 무늬가 그려진 장판 위에서 잠든 사람들 사이로 나는 마치 이 모든 일이 내 일인 것 같지 않다는 기이한 분리를 느꼈다.
그의 어머니가 울었다. 사실 울었다는 말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사람에게서 저런 소리가 날 수 있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심장을 쥐어뜯는 것 같았고, 듣고 있으면 금세 미쳐버릴 것 같은 울부짖음이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비로소 그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내가 그를 살릴 수 없었다는 사실을, 내 한 통의 응답 없는 전화가 그를 혼자 죽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끔찍하게 들이켰다.
죄책감은 후회와 달랐다. 후회는 기억을 후비지만, 죄책감은 몸을 망가뜨린다. 잠들 수 없었다. 먹을 수 없었다. 마치 몸이 벌을 받듯 나는 점점 무너져갔다.
목젖 뒤로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고, 잘 먹던 국물조차 메스껍게 느껴졌다. 가슴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썩어가는 기분. 그리움이라는 말로는 어림도 없는 감정들이 한데 엉켜, 무너지기보다 고여 있는 상태로 계속되었다.
나는 상실을 안다. 그건 단순히 누군가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앞으로 어떤 순간에도 그 사람이 다시는 함께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눈에서 멀어진다고 해서 마음에서 멀어지는 건 아니다. 상실은 도망치려 할수록 더 가까워진다. 괜찮아지는 게 아니라, 그냥 더 익숙해지는 거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애도하는 일은 생각보다 잔인하고, 생각보다 길다.
때로는, 내가 이렇게까지 무너져야 할 이유가 있는가 싶은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부서져 있다는 증거였다. 상처 입은 동물처럼 웅크린 채, 나는 끝없이 나를 놓치며 살았다.
그의 마지막 새벽이, 마지막 생각이, 마지막 말이 무엇이었을지 상상할수록 내 마음도 같이 그 새벽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지금도 그를 떠올리며 숨을 고르고, 천천히 말을 고른다. 그리고 이렇게 말없이 나의 상처를 들여다본다.
이 고통은 끝나지 않았지만, 나는 마침내 그것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상실 이후에도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이자,
다시 사랑하고 다시 숨 쉬려는 한 사람의 기록이다.
글, 편집 | 유옥(瑜)
@0k.Y00